화천 간동교회 담임목사

우리가 흰 옷을 입으면 다른 색깔의 옷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조심하게 됩니다. 흰옷에 김치 국물 튀면 안 되고, 짜장면 국물이 묻으면 안 됩니다. 까만 옷을 입으면 아무데서나 뒹굴어도 티가 나지 않지만, 흰옷을 입으면 늘 조심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죄라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많았고,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내면을 감찰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게 되면, 내 모습이 추악한 죄로 가득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내 삶에 죄가 아닌 것이 없다는 절망에 이르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자유를 얻고 해방되었는데, 왜 나는 아직도 죄에 묶여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결벽증이 걸린 것처럼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고, 말과 행동에도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죄에서 해방된 사람이 분명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고,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되었습니다.

나의 자아와 무기력함과 죄악은 용서 받았고, 실패와 절망과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생명과 능력과 승리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믿고 고백하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하여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우리는 더욱 죄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의 더러운 옷을 벗고, 의롭고 새롭고 깨끗한 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합니다. 죄에서 분리되기 위해서 더욱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죄에 대해서 민감해야 자기를 지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 무뎌있고 무감각하던 모습에서 깨어나 양심이 되살아 난 사람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루터는 사람은 “의로우면서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실상은 죄인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소망 안에서는 의인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아프지만 호전되어 가는 병자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되는 중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강건’입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자신의 실상을 깨닫고 고민하며 주님 앞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 십자가 외에는 아무 대답도 얻을 수 없는 사람, 그가 살아 있는 신앙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요한복음 13장). 그러자 베드로는 ‘선생님께서 제 더러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게 하겠습니다!’라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한술 더 떠서, “주님 이왕 씻어주시는 거,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세요.” 부탁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사랑하셔서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우리는 발만 씻으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매일 발을 씻으시지요? 그러면 발을 씻을 때마다 주님께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나의 더러운 발, 나의 더러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소서!”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