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자살 예방 센타로 세우는 기획 칼럼(10)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3. 자살의 전염

자살이 전염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오늘날 미디어가 자살 전염의 중요한 매개체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살문제 및 현상을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미디어의 광범위한 자살보도는 모방자살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왔습니다.

우선 모방자살과 관련된 이론으로 반두라(Bandura)의 인지적 학습이론을 들 수 있는데, 그는 공격행동은 직접적인 강화에 의하지 않고도 모델의 행동을 관찰하여 모방함으로서 학습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강화와 모방은 공격행위의 표출방법에 대한 지표(index)를 제시합니다. 일반적으로 모델과 학습자간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행동을 모방할 가능성이 큽니다. 즉 모방자살은 모방으로부터 일어나 일종의 자살이라는 것의 학습이라 할 수 있는데, 자살을 한 모델과 학습자 자신을 동일시하여 학습하고, 행동을 모방하여 외부로 표출시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문이나 웹 검색을 통해 학습을 모방할 때 자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자살권고안의 발표와 사회 각층의 자살예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후 특징적으로 자살률이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독일에서는 베르테르증후군을 발견할 수 없었는데, 이는 아마도 자살보도가이드 라인이 이미 마련되어 있고 자살방지를 위한 사회적 장치가 이미 시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2004년 자살보도권고안이 발표되었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자살보도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즉 자살보도메세지에 영향을 받는 연령, 성별, 보도를 접할 당시 사람들의 기분상태나 상황 등에 의해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텍(S.Stack)은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자살보도에 대해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페루지(Peruzi)와 방가르(Bongar)의 연구를 통해 우울한 사람들이 주변인의 자살사건에 노출되었을 때 모방자살이 증가한다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자살에 대한 8개의 위험요인(우울증, 자살시도경험, 자살생각, 무망감, 죽음에 대한 끌림, 가족의 자살이력, 알코올중독, 이별이나 상실 등)을 가진 사람이 외적 자극에 영향을 더욱 받아 자살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분장애는 그 자체로도 자살위험이 큰데, 다른 외적 자극에 영향을 받아 자살하게 되기도 합니다. 기분장애 중에서도 특히 우울증이 심한 사람에게 외적 자극은 자살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베르테르 효과를 증명하기 위한 기존 연구들은 단지 모방자살의 경향성만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뒤르켐도 모방자살과 사회적 자살률의 연관성에 관해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했으며, 모방자살은 자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즉시 영향을 미칠 뿐 일반인들의 자살수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소수의 자살은 유명인의 자살로 인해 촉진되기도 하지만 그런 암시가 없었더라도 결국 자살은 발생되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살로 인한 사망자 또는 자살 시도자들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제안이 대두되면서 자살과 미디어의 관계, 나아가 미디어가 자살보도에 대해 가지는 책임과 윤리성 등 민감하고도 중요한 사안들이 연구주제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대중매체의 자살보도가 만연되어 있는 현실에서 자살보도를 본 후 자살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가 형성되는지를 측정하여 자살보도와 개인의 자살위험성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살은 “나와 상관없는 일”, 혹은 “특정한 누군가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4. 미디어와 자살낙인

낙인은 특정 사회의 가치 혹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정상(주류)과 비정상(비주류)의 차이를 인식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대상에 불명예를 주는 속성입니다. 고프만(Gofman)은 미디어를 사회적 가치의 재현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미디어는 곧 낙인을 찍는 준거를 마련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상징적 텍스트로 가득한 미디어와의 상호작용은 낙인을 자연스럽게 학습시키는 보편적인 과정 중 하나입니다. 반두라(Bandura) 역시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을 통해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사회의 가치와 이를 이해하는 방식을 학습시킴을 증명했습니다. 즉, 개인은 미디어와의 상호작용에서 습득한 정보로 사회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지각하며, 기대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에 조화롭게 적응한다는 것입니다. 귀인이론(Atribution Theory)과 정체성이론(Identity Theory)은 미디어가 재현하는 소수자들의 모습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적 틀을 제시합니다. 먼저, 미디어가 주입한 메시지를 통해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학습하고 이들을 향한 태도를 형성하는 것은 귀인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귀인이란 개인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로써, 사건이나 행동의 원인을 지각하고 추리를 통해 판단을 내리는 과정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는 정보처리과정으로, 추후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많은 사람이 문제나 행동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를 개인 스스로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지와 관련해 판단하며, 이러한 통제성은 고정관념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는 차별, 즉 낙인을 인식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노력은 개인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지 않고 얻게 된 결과에 대해서 사람들은 비난과 배척 등과 같은 부정적인 평가를 하게 됩니다. 대체로 귀인을 통한 평가 과정은 정교한 정보처리과정이 아닌 휴리스틱(heuristics:의사결정을 할 때 오래 생각하지 않고 빠르고 쉽게 판단하기 위한 태도)적 처리 과정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평가할 때에는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인식과 고정 관념화된 사고에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적 판단(심적으로 나약하고, 무능력하다)이 사회적 차별을 일으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더욱이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결국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낙인을 형성하게 하며, 이들을 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게 만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낙인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자신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평가와 역할이 어떠한지 학습하게 되며,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로부터 멀어지려 합니다. 소수자들의 고립은 주류 담론이 마치 옳은 것처럼 만들어버리고, 결국 소수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별다른 저항 없이 순응하게 됩니다. 이는 사회적 낙인을 규범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며, 소수자 문제를 그들의 문제로 치부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입니다.

결론적으로, 일반인과 소수자를 구분 짓는 미디어의 이분법적 전개와 이러한 메시지의 반복적 제공은 자살자들을 사회적 약자로 고정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는 사회가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자살자 또는 자살시도자로 구분되는 사람들에게까지 작용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 절하시킵니다. 즉, 미디어가 자살 시도자들에 대한 무능력함 혹은 개인적 노력의 부재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면, 수용자들은 자살 시도자들을 향한 부정적인 태도를 형성하고, 차별과 거센 비난을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살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 인식시킴으로써, 사회 구조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결과를 감안하면, 자살 및 자살 시도자들에 대한 미디어의 재현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가 전달해주는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자살을 향한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을 확인하는 것을 가능케 합니다.

문제의 개인화는 자살을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우리’의 문제보다는 각자 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그들’의 문제로 확정 지어버립니다. 특히 자살위기를 극복한 조력자들의 등장은 주인공들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현재의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스스로가 이겨내는 수밖에 없음을 강조시킵니다.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공중보건의 문제인 자살을 개인 스스로의 의지로 이겨내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안녕을 위한 국가적 책임과 노력은 회피해버리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낙인화는 매우 위험한 사회적 장치입니다. ‘무능력함’, ‘나약함’, ‘의지의 부족’과 같이 자살 시도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사회적 낙인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고프만(Gofman)은 사회적 낙인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지만, 낙인으로 인해 구성원들이 구별되고 부정적인 가치평가가 주어지는 것은 사회적 차별의 시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회적 낙인은 자살 시도자들에게 사회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로 인식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자기 낙인을 야기할수 있습니다. 사회적 낙인이 자기 낙인으로 이어지게 되면, 낙인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낙인찍힌 대상에 대한 개인적 문제가 됩니다. 또한 그 해결방안도 낙인화된 대상의 내적 역량강화로 귀착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사회적 낙인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근원을 간과한 채, 낙인화된 대상을 비난하고 이들의 변화만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역할 정체성이 고정되는 것이 아니며,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결의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주류담론을 생산하고 주입하는 미디어의 역할이 큽니다. 앞으로 미디어 콘텐츠 제작 시 사회적 낙인이 대상의 특징을 선택하여 구별하고 범주화하며 명명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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