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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솔칼럼】기독교인과 정치
나사렛대학교에서 교수로 섬기다가 이제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치유상담교육연구원 원장일을 보고 있으며 여러군데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늘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일에 관심이 있으며 어려운 문제 함께 의논하고 상담하기를 좋아한다. 미 공인상담사및 코칭 자격을갖고있다.

사회윤리와 관련해서 세 유형의 복음주의자가 존재한다.

첫째는 이원론적 복음주의자이다. 이들은 신 플라토니즘의 영향으로 이원론자이며 현세에 무관심하다.

둘째는 개인주의적 복음주의자인데 이들은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 없이 인간을 전적인 개인적 존재로 파악한다. 개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 평가하며 사회가 개인에 끼치는 영향은 과소평가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단위가 자족적 개인이자 사회문제는 개인문제의 집합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사회문제의 해결 방식도 사회문제 - 개인문제 - 마음의 죄 때문 - 복음전파 - 개인 구원 - 개인문제 해결 - 사회문제의 해결 순으로 정리한다.

그러나 이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개인 변화만으로 사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에 놓여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극단적 결론으로서 구조변화를 위한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펴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개혁주의적 복음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복음전도가 개인변화에는 효과적이나 사회개혁에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사회의 구성요소가 개인이 아니라 소규모 그룹에 의한 대규모 집단이며 인간은 개인적 삶이라 할지라도 집단적 개인의 삶이라고 얘기한다.

이들은 이원론자들의 인간관을 부정하며 인간은 '영혼만도, 육체만도, 사회만도 아닌 그 전부이다'라고 강조한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영혼만이 아닌 전인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의 범위를 제한하지 말아야 하며 진정한 복음전도란 우리가 이웃을 향해 사랑을 전달하는 것과 동시에 그 사랑의 원천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조 악에 대해서도 이들은 경제적 착취, 정치적 억압과 같은 사회적 악도 죄악이라고 본다. 사회적 불의와 악은 그 뿌리에 실재가 있는 재생적 실체이다. 구조악은 개개인의 악의 총합과 다르다. 개인의 악이 모여 사회에 악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사회의 구조 악이 개인의 악을 조장하기도 한다.

사회와 개인의 악에 대한 접근은 유기적이며 동시적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현대의 사회문제들이 정치적 문제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강조한다. 한 예로서 미국은 제3세계에서 개혁적 정부가 출현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 이유는 미국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지속 증대시키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들의 대응방식은 구조 악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방법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그렇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악에 대해 대처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정치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도 정치의 권력성과 조작 성을 인정하나 그것은 정치의 본질이 아니라 정치의 타락된 형태일 뿐이다. 본질적 정치는 집단생활의 질서를 위해 공동의 의견을 수렴해 집행하는 과정이었다. 즉, 대화, 토론, 조정, 의견수렴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토론할 시간을 정하기 위해서는 의견을 수렴하고 대화하며 일치시키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며 그것 자체가 바로 정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굴복에 대해서도 재세례파의 주장처럼 교회적으로 힘없는 처지를 받아들인 고난을 감수하는 종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십자가를 지라는 주장에는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조정, 억압, 힘 등을 사용하는 정치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들만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지 말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정치를 깨끗이 하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창녀에게 매춘을 깨끗이 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힘의 사용을 정죄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독생자의 소명이기 때문이었다. 힘 자체에 대한 정죄보다는 힘의 바른 사용에 대해 논해져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정치는 구조적인 수준에서 문제를 직면하고 악한 구조를 뒤엎어 선한 구조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권위를 가진 기관이라고 말한다. 구조 악을 해결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힘의 전위가 정부에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정부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사회의 구조 악을 바꾸고 정부의 올바른 기능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들의 방법론은 기도, 자선, 정치참여로 분류된다.

이들은 기도 없는 사회운동은 인도주의적 사회운동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기도만능주의는 또한 중요한 사회참여의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필요하나 완전한 방법은 될 수 없다.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보다 많은 선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치참여로서는 지방의정 감시, 격려, 항의, 바른 선거자, 평화시위 등 시민으로서의 참여와 특정 정당이나 시민운동단체에서 적극적 활동수행 등 시민으로서의 행동, 공동정책에 미칠 수 있는 즉각적, 직접적 방식 등 직업적 행동가로서의 참여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도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도 사회가 변화하리라 호언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하늘의 비전에 순종하기 위해 이러한 정치적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인다.

남서호 목사  voheas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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