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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최원영칼럼] 새 것은 새 것으로 담아라낡은 가죽부대를 버려야 창조적 새 날을 열어간다

예수님의 말씀에 생배 조각 비유와 새포도주 부대 비유가 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새' 것은 '새' 것으로 담으라는 의미이다.

로마서의 인간이해는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죄인이 의인되는 길을 하나님이 만드셨다. 두 가지 길이 있다. 율법으로 의로워지는 길이다. 이것은 행위이다. 그런데 이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또 다른 의의 길을 제시했다.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길이다.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길은 바로 말씀을 믿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복음은 차별이 없다.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함의 은혜가 있다. 복음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 복음은 곧 말씀이요, 말씀은 곧 예수그리스도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진통은 과거의 아픔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념적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진보와 보수, 이념적 선을 긋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배척하고 적과 동지만이 있을 뿐이다. 이념적으로 호불호가 분명한 양극단에 속한 분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중도좌우에 속한 분들의 생각과 가치가 파묻혀있다. 중도좌우에 속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시민이 아닌 듯하다. 아니면 좌우에 속한 사람들이 너무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때로는 불쾌하기도 하다. 좌우에 속한 사람들만 나라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땅에 말없이 조용히 묵묵히 자신의 삶을 매일같이 성실하게 감당하는 중도의 백성들이 있기에 나라는 안정감과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투쟁만하는 나라는 곧 망한다. 사방이 막힌 담벼락 안에서 수없이 실험을 반복하면서 인내의 세월과 싸우는 연구자들이 있기에 미래가 있는 것이다. 정치와 무관한 백성들이 논밭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태양과 싸우며 일하는 분들이 있기에 이 땅은 희망으로 채워져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투사만 있다면 누가 일하고, 누가 세금내고, 누가 사회망을 파괴하는 범인을 잡고, 누가 지친 영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울어줄 것인가?

웃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일반대중들의 순수한 바람과 마음을 읽어내는 지도자가 많으면 좋겠다.

발왕산

역사인식은 필요하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이념이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념을 뛰어넘어 창조적인 새역사를 써가야 한다. 대다수의 중도층에 속한 분들의 걱정은 역사를 바로 잡고, 나라의 경제가 후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모든 에너지를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하고 있다.

길고 긴 법정 싸움을 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게임이 있다. 법에서 이겼는데, 자신의 성품이 무너진다면 사실은 다 잃는 것과 같다. 마음이 파괴되고 가시덤불이 되고 나면 다시 회복하는데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좌우갈등으로 인한 진흙탕 싸움으로 인해 민족의 성품이 무너진 다음에 다시 추수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민족은 세상에서 처참한 아픔을 경험한 나라이다. 처참한 가난과 전쟁의 참혹과 이산가족의 애환과 무시를 당한 민족이다. 더 이상 이런 아픔을 후손들에는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일본과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역사학자들의 몫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한다. 역사학자들의 리그에서 치열한 논쟁을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한쪽분들의 소리만 듣지 말고, 좌우의 소리들을 듣고,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전문가에게 맡기라. 비전문가가 판치는 사회는 곧 자멸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성경이 주는 교훈은 참으로 명답이다. 생베는 새 옷에 다가 기워야 하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한다. 그래야 망가지지 않는다. 성경에서 생베와 새 포도주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인생에 조용한 혁명이 찾아오기 위해서는 생베와 새포도주가 되신 주님을 받아들여야 한다.

발왕산 둘레길

◐ 낡은 가죽부대를 버려야 창조적 새 날을 열어간다.

새 천을 낡은 천에 붙이는 자가 없다. 왜냐하면 새 천이 낡은 천을 잡아당기기에 처음보다 더 망가지기 때문이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게 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온전해 진다. 성경이 주는 말씀의 요지는 아주 간단하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버릴 때는 과감하게 버려야한다. 그래야 새것이 들어온다. 낡은 천, 낡은 가죽 부대를 과감하게 버려야 새것이 들어오게 된다. 이것이 진리이다.

민족해방을 맞이한 후 벌써 74년이다. 어떤 분들에게는 아직도 아픔이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가 그분들의 마음을 위로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가 과거의 역사에 몰입하여 분노하고 모든 관계를 다 파괴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는 그리 좋은 명답은 아니다. 과거는 마음에 되새기고, 현재와 미래를 개척하고, 더 낳은 에너지를 국민들의 정신에 심어주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이제는 나 홀로 사는 시대가 아니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었고, 조직화 되었고, 전문화 되었다.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이것이 성경적인 관점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정신이며 예수의 정신인 듯싶다.

문제는 ‘나’이다. ‘일본’이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아니다. ‘중국’이 아니다. 내가 낡은 가죽부대를 버릴 용기가 있는가? 내가 큰 생각을 품기로 마음먹었는가? 내가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살기로 작정했는가? 원대한 비전을 가로막고, 앞을 가로막는, 낡고 부정적인 가죽부대를 버릴 용기가 있는가? 지도자들은 욕을 먹더라도 국민들에게 낡은 것을 버릴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창조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도자는 국민들의 파괴적인 감정을 자극해서는 곤란하다. 감정은 또 다른 파괴적인 감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서로 사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지도자이다.

문제는 ‘나’이다. 내가 변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비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생각이 변할 때 가정도 세워지고, 인생도 세워지고, 자녀들도 세워지고, 사업도 세워지고, 민족도 세워진다. 나는 대한민국의 정신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혁명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21세기에 맞는 정신혁명, 열방의 모든 민족을 마음에 품고 갈 수 있는 탁월한 민족정신이 심겨지면 좋겠다.

◐새 것은 믿음의 기대치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 가정은 희망이 있다",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다",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다."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희망을 품어야 하고, 희망을 말해야 하고, 희망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의 신앙의 특징은, 지나간 과거는 감사로, 현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미래는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미래는 희망을 갖는 것이다. 성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했다.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 현재는 그분의 사랑에, 미래는 그분의 섭리에 맡겨라."

미래는 안보이고 오직 현재의 아우성만 가득한 답답한 현실을 보면서, 나는 외치고 있다. "주님의 섭리에 맡겨라." "나는 예수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다. 희망의 사람이다. 나에게는 불행이 없다. 나에게는 절망이 없다. 우리 민족은 잘되는 민족이다."라고 외친다. 오늘 나의 삶과 공동체와 민족의 혼란을 주님께 맡긴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우리는 낡은 가죽부대를 버리고 창조적인 새 날을 기대하며 믿음의 기대치를 높일 때 행복하다. 또한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국민들에게 갈등이나 원한이나 분열을 만들지 않고 편안함과 안정감과 미래를 위해 힘찬 창조적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리더들을 기대해본다.


 

발행인 최원영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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