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수 많은 단체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한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하면 다른 교단도 그 효력을 인정해서 준용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단 규정에서 교단 간에 갈등을 보이는 모습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이전에 보여주었던 바른 교회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다른 교단에서 이단으로 지목했더라도, 자기 교단에서 이단으로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는 반응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어떤 사례에서는 교단이 이단 판정을 막는 방패가 되기도 했다. 교단에서 명백하게 이단으로 규정하지 못하면서, “참여금지”, “교류금지”라는 애매한 수준의 판결이 속출하기도 한다. 한국교회가 이단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통일된 대처를 하지 못하면서 현재 한국 교회는 이단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한기총에서는 이단으로 지목된 교회를 대표회장에 임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한국 개신교회는 대표하는 기관처럼 권위를 행사하고 있다. 각각에서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전혀 통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둘째, 연일 매스컴에서 등장하는 두 위인들은 한국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대표적인 단체 대표들이다. 매스컴에서 그들의 소식이 현격하게 나타날 때에는 한기총 및 교회연합기관에서 한국교회 입장을 대변해서 유감과 좋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매스컴은 연일 그러한 뉴스가 보도되어도 기독교연합기관 어디에서도 해명 보도를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은 유사 동일 집단으로 인정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셋째, 어떤 목사가 시비를 걸면 걸리지 않을 목사가 있으랴? 이단에 대한 야릇한 자세가 있다. 맞는 말일 것이다. 뛰어나온 못이 맞듯이 유력하기 때문에 제재를 받는 것은 현실적인 한계이다. 움트지 않는 내면까지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이단에 대해서 매우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이단으로 문제제기가 되어도 판정되려면 2년 이상이 걸린다. 이단 시비가 걸린다면, 어떤 부분에서 수정해야 할 사안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수정을 거부하고 나갈 때에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이 한국 교회 상황이다. 그런데 시기심 때문이니 이러한 잡설을 늘어놓는 것은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권위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이단으로 규정받는 것이 당연하다. 시비에 걸리지 않을 목사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시비에 걸렸을 때에 겸손하게 수정하지 않는 목사가 이단으로 규정될 것이다. 그러나 시비에 걸렸을 때에 겸손히 수용하고 겸손하며 잠잠한 사역자를 이단으로 규정할 한국 교회 교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단적인 설교를 하지 않을까? 염려하지 말라. 한국 교회에서 두각(頭角)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결코 이단 시비에 걸리지 않는다. 이단 시비에 걸렸다는 것은 도드라진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때 자기를 겸비하게 내릴 수 있다면 이단 규정에 들어가지 않는다.

넷째, 한국 교회에 이단이 심각한 지경이기는 하는가 보다. 이단 연구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교단과 사설 이단 연구가들이 즐비하다. 이단 연구가들이 증가하는데도 이단이 증가하는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다.

다섯째,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드리는 핑계이다. “목사를 믿지 말고 믿어라” 목사가 이단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변호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핑계를 낸다. 이단으로 규정되기 전에 이단의 궤계를 파악하지 못하면 이단 궤계에서 빠져 나오기기 힘들다. 성경의 가르침데로 이단은 우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다닌다. 그 아가리에 들어가지 않는 길은 깨어 있는 방법뿐이다. 자기가 존경하는 목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그를 의존해서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 자기가 존경하는 목사 2-3명을 셋팅해서 평균값을 낼 줄 알아야 한다. 마치 한 병증에 2-3 의사 선생의 진단을 분석하는 것과 유사할 것이다. 목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자기 편향성이 있다. 주의 말씀(성경)과 교리를 교범으로 목사를 존경하며 가르침을 따를 줄 알아야 한다.

우리시대는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로 돌입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초창기의 모습대로 한 교단에서 이단으로 지목하면 모든 교단에서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쪽에서는 이단, 저쪽에서는 정통인 집단이 속출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이단자정능력은 사라질 것이고, 그러면 “이단”이라고 말하면 곧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수 많은 이단사역자들도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공적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규정한 단체에 대해서 이단이라고 말하면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이 수준이 무너질 것이 우려된다.

답은 “목사”이다. 바른 목사를 세워야 한다. 그 책임은 목사에게 있지만, 교회의 성도들도 공동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주쎄서 희어진 들판을 보시면서 일할 일군을 찾으시는데, 그 일군이 없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슬프다. 말씀이 홍수라는데 마실 물이 없다니 슬프다. 초대교회에는 말씀이 희안에서 아팠고, 지금는 많은 말씀 중 마실 말씀이 없다니 안타깝다. 우리의 눈물을 거두시고 위로하시는 주 예수를 바라보자. 오늘도 복음 한 방울을 위해서 땀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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