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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목사】 영웅시대 (2)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무명의 용사가 영웅과 혁명가로

무명의 일개 사병이 지옥 같은 전장에서 살아남아 역전의 용사로, 청춘의 우상으로, 급진적인 정당 대표로, 나라의 전권을 틀어쥔 총통으로, 세계를 요동치게 만든 제3제국의 우상으로 군림했으니 그가 히틀러다. 패전의 굴욕감 속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독일인에게 유약하기 짝이 없는 바이마르 공화국은 치욕스러운 존재였다. 급격한 변화를 갈망하며 독일의 자존심을 회복시킬 강력한 구심점을 찾던 독일에게 천부적인 연설 능력을 지니고 있던 히틀러의 등장은 거의 메시아의 출현에 비견될 만한 충격이었다. 2002년 1월 29일 발표된 연두교서에서 조지 부시에 의해 유래된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말의 원조를 역사에서 찾아내라면 어려움 없이 히틀러를 지명할 만큼 그는 역사상 가장 경멸받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다. 혁명가로 출발했으나 잔인한 독재자로 유럽을 들었다 내려놓은 그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망령이다.

포병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운명적으로 전선의 삶을 전전하며 승리의 쾌감을 맛본 그는 혁명가가 되고 황제가 되어 조국을 유럽의 강자로 급부상시켰다. 러시아 전쟁에서의 참패를 시발로 영욕의 부침을 겪으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으니 그가 나폴레옹이다. 20대 중반에 장군이 되고 30세에 통령이 되고 30대 중반에 99.8%라는 경이적인 국민 투표 결과에 힘입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화려한 등극을 했다. 20대의 청년 장군 나폴레옹은 한니발 이후 최초로 알프스를 넘은 뒤에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을 남겼다. 장군으로, 통령으로, 황제로 프랑스를 16년이나 통치하며 혁명을 인기 절정의 수출상품으로 유럽 전역에 퍼뜨린 그의 최후는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를 실패자로 여기는 자는 흔치 않다. 독일의 지성이었던 헤겔이 평하였다. “멀리서 나폴레옹이 말을 타고 진군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본 것은 말을 타고 진군하는 ‘시대정신’(Zeitgeist)이었다.”

미숙아로 태어나 잔병을 앓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는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독재정권 치하에서 젊음을 보낸 그는 20대에 남미 각국을 여행하며 억압과 해방투쟁으로 몸살을 앓는 대중들의 고달픈 삶을 직시한다. 암살령을 피해 멕시코 망명을 거쳐 쿠바로 건너간 그는 혁명가로 선두에 나선다. 붉은 별 장식의 검은 베레모를 쓴 장발의 쾌남아는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에 벅찬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쿠바에서 보장된 최고의 지위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로운 혁명의 길로 나선 “아바나의 백작”은 결국 미군이 가세한 볼리비아 군에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근대혁명의 대부인 그가 체 게바라다.

 

역사의 고비마다 묻어있는 혁명의 숨결

언급된 세 인물은 모두 혁명가다. 세상에서 혁명은 반드시 폭력을 동반한다. 혁명의 성패는 수많은 주검 위에 있고 혁명이 끝남과 동시에 승자와 패자를 위한 기념비와 교수대가 준비된다. 혁명의 출발은 초라해도 격정의 혁명 한가운데만은 늘 화려하다, 카메라 불빛이 화려하고 그들의 활약이 화려하다. 군중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조국에도 혁명의 시대가 있었다. 군사혁명에서 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투쟁은 격렬했고 성패에 따라 울고 웃었다. 혹자는 국립묘지에, 혹자는 망월동묘지에, 혹자는 수장되거나 암장되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때만이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민중이 주체가 된 혁명의 숨결이 역사의 고비마다 묻어 있다, 일제 치하에서의 민중봉기, 살기 위한 단순한 몸부림에서 시작된 민중의 한풀이는 정체성 회복을 위한 조직적 민중운동으로, 다시 독립을 위한 민족운동으로 승화 발전되었다. 조선과 고려, 그리고 삼국시대에 민란으로 규정되었던 많은 운동들은 승자의 역사관이 아니라 객관적 시각에서 살필 때 작은 혁명들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동학혁명은 압권이다. 비록 실패로 끝난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조선의 살아 있는 얼이 나타남이었다.

 

혁명의 결말은 영웅과 이단자

혁명가의 삶은 외로워서 혁명이 끝나도 편치 않다 심지어 무덤에 묻힌 후에도 혁명가는 산 자처럼 추앙과 단죄의 대상이 된다.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쉬지 않고 비평의 칼날을 벼려오던 사가들의 칼질이 쉬지 않는다. 박정희와 김옥균과 어우동에 대한 세상의 잣대가 단적인 예다. 경제 부흥의 주역인가? 정권찬탈자인가? 애국적 혁명가인가? 시대의 이단자인가? 여권운동의 선구자인가? 희대의 요부인가? 개인의 사상과 이념에 따라 혁명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나뉜다. 혁명의 과정에 총칼에 피를 묻히고 주체적인 추종자와 단순 가담자 그리고 방관자와 반대자에 따라 그들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이다.

조선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을 무렵 농민반란군의 지도자로 부패한 세도가를 응징하고자 난을 일으킨 홍경래는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한 비운의 혁명가로 그려졌다. 혹자는 반군의 수괴를 혁명가라 칭함은 미화라 반박하지만 반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단견이다. 어린아이까지 포함한 3,000 가량의 인력으로 무슨 개벽세상을 꿈꾸었을까? 4개월 만에 막 내린 혁명의 불길은 썩어빠진 정치세력에 커다란 경종을 울렸다. 이후에도 조선은 달라지지 않아 승냥이 같은 일제에게 먹잇감이 되었다. 지금은 혁명가와 열사가 너무 흔하다. 격동기의 이념이 낳은 산물이니 언젠가는 정리될 것이다. 난 위대한 혁명가의 출현을 꿈꾼다.

1946년 11월 제주도에 창설된 국방경비대 제9연대 연대장인 김익렬 중령이 1948년 4.3사건을 주도한 남로당 제주도당책 겸 군사부 책임자 김달삼에게 총기와 탄환들을 건네면서 충성맹세를 했는지 여부보다 박원순(현 서울시장)과 북한이 그를 4.28평화협상을 이끌어낸 영웅으로 치켜세운 사실이 더욱 께름칙하다. 그가 사단장이었을 때 사단을 방문한 국회의원들에게 “멸치를 뻥튀기 기계로 튀겨 동태를 만들어 사병들을 배불리 먹였다”고 진술했음은 황당무계한 허언이다. “가랑잎을 타고 두만강을 건너시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시며 대동강 모래알로 쌀알로 만드셨다”는 신화적 진술과 무엇이 다른가?

 

좌우편향의 시대의 혁명가들

군중은 한꺼번에 휘몰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소견을 붙든다. 지도자의 목소리가 희미하면 개인의 소견이 확신으로 굳어지고 다수를 선동하는 소수자 혹은 개인의 확언이 울려퍼지면 밀물처럼 그리로 몰려간다. 군중에게는 몰아치는 힘은 있어도 방향감각이 약하다. 군중이 바른 지도자를 만나면 세상을 뒤엎을만한 기세가 되지만,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면 난전의 희생물이 된다. 육이오를 전후한 이념대립에서 사상적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좌익들은 그들이 지닌 지성과 시대감각으로 군중들을 휘어잡았다. 우국충정보다 정권유지의 하수인으로 활약하던 반공청년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힘을 과시했다.

좌익이나 우익 할 것 없이 일제 말기에는 모두가 함께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우국지사들이었다. 세계를 휩쓴 공산주의 사상이 지식인 계급을 파고들면서 좌파=지성인의 등식이 성립된 시기였다. 문제는 한국의 좌파지도자들이 북측의 정치적 간계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사실이며, 남측의 지도자들 역시 노련한 정상배들의 수족 노릇을 해야 했다는 역사적 현실의 아픔이다. 지금 이 나라는 마치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사람들의 집합소 같다. 교회와 사회를 일신시킬 사사가 기다려진다.

사상적 편향은 생각 이외로 무서운 현실이다. 군대 제식훈련에서 앞으로 가! 뒤로 돌아가!와 함께 우향우, 좌향좌가 있다. 우향좌나 좌향우는 있을 수 없다. 간혹 전향수가 생기지만 전향을 거부하는 이들이 30년 40년을 차디찬 감방생활을 견디는 모습을 보면 섬뜩하다. 당국에서는 장기 사상범의 전향이 가져올 정치적 극대 효과 때문에 옥중 전향 공작을 펼치기도 했지만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비전향장기수라는 말이 생겼고 남북 관계의 변화에 따라 그들의 북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들이 북에 송환된 후에 영웅 칭호를 받고 환대받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유사 영웅들이 판치는 영적 혁명기

영적 혁명을 부르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기도원이나 수양관에서 전국 규모로 개최되는 대형 집회마다 다투어 써 붙이는 구호와 슬로건이다. 수년전 H수양관 집회에 참석한 C기독신문 L기자의 기사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 번 참석으로 믿음을 10년 앞당겨라!” H수양관 성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영성, 인성, 도덕성, 가치회복 프로그램으로 교회부흥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부흥운동의 산실이다. 주최 측에서 유포하는 대로 실제의 역사가 일어나건 말건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과장된 느낌이 질펀하다. 영웅이 사라지면 유사 영웅들이 판을 친다. 수호지에 등장하는 양산박의 108영웅들과 삼국지의 영웅호걸들은 허구 속의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간혹 역사적 실존처럼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교계의 인물들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이며 하나같이 영웅의 면모가 없다는 특징이 차이라면 차이다.

바나 리서치그룹의 조지 바나 회장이 지은 <레볼루션 교회혁명>은 21세기 탈교회화에 대한 현장보고서였다. 교회 출석은 하지 않아도 자신을 크리스천이라 여기는 미국의 교인을 2천만 명으로 추산하면서 그것을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갈망한 결과로 보았다. 교회출석이라는 기존의 시스템을 거부하고 일상에서 창조주의 모습을 드러내려는 변화는 이미 대세라 여긴다. 바나는 영적 건강에 대해 책임소재를 교회가 아닌 스스로에게 묻는 이들을 혁명가들로 본다. 궤변이다. 이것이 영적 혁명이라면 교회는 끝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영적 혁명의 배경

영적 혁명과 영적 경험은 상관관계가 있다. 혁명은 힘의 운동으로서 오랜 세월 유지되어온 현존하는 힘을 뒤트는 운동이다. 혁명을 가능케 하는 힘의 결말은 파괴가 아니라 건설이다. 혁명의 과정에서 불가피한 희생은 대의멸친(大義滅親)의 관점에서 수용해야 한다. 무거운 돌을 움직이려면 지렛대가 필요한 것처럼 혁명가는 지렛대의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지렛대가 있어도 그것을 붙들어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돌은 꿈쩍 않는다. 혁명가를 혁명가답게 만드는 것은 그가 지닌 혁명의 힘을 활용하는 군중에게 있다. 군중은 혁명가를 따르지만 혁명가를 움직이는 혁명의 주체다. 이를 무시할 때 혁명가는 무소불위의 권세를 쥐락펴락하면서 또 다른 혁명의 구실을 제공한다. 강하면서 부드러운 이 힘은 경험에서 나온다. 영적 혁명은 영적 경험 없이 불가능하다. 새 부대가 되어야 새 술이 담겨진다. 지렛대는 돌과 군중을 잇는 연결고리다. 지렛대란 성령의 경험을 통해 수여된 영적 능력이다. 사탄은 영적 혁명에 있어 견고한 바위덩이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은 지렛대가 아니고는 치울 수 없다. 말씀과 기도가 키다.

중세의 종교개혁을 실패로 단정하며 새로운 영적 혁명을 주창하는 얼굴 없는 세력이 있다. 시대가 원치 않는, 그래서 시대를 거스르는 새로운 영적 질서의 도래를 외친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건설 시작이며 이것이야말로 껍질뿐인 종교개혁이 아니라 근본적인 영적 혁명이라 강변한다. 그들이 내건 혁명적 삶을 위한 전략적 지침이 예사롭지 않다. 첫째, 교회는 자본에 반대해야 한다. 부동산투자를 금한다. 둘째, 교회는 국가에 반대해야 한다. 국가가 규정한 의무수행을 금한다. 셋째, 교회는 가족에 반대해야 한다. 독신이 원칙이다. 넷째, 교회는 종교에 반대해야 한다. 모든 사제 계급을 금한다. 성경을 근거로 내세운 지침들은 정신에 있어 일부는 수용할 수 있어도 전부는 아니다. 과격하고 체제 부정적이며 선동적이면서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행동강령이 없다. 혁명이란 혁명적인 어투가 아니요 혁명적인 이론전개가 아니며 강경일변도는 더욱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혁명은 파괴주의자들이 따를 수 없는 파괴의 능력을 지녔고(십자가),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복구의 능력을 지녔다(부활). 영적 혁명의 원리와 실천의지는 십자가의 비탈을 지난 부활의 동산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요란한 혁명가 VS 조용한 혁명가

진정한 혁명가는 혁명을 외치지 않고 혁명을 산다. 총성으로 시작된 혁명은 대포소리로 끝난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한다. 무혈입성을 해도 정권을 잡으면 이내 피의 숙청사가 사기를 붉게 물들인다. 이 세상에 무수한 혁명 이야기들은 모두 피로 쓴 역사이다. 그리스도가 보인 혁명은 소리 없는 혁명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고 새로운 형체로 다시 태어나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소리가 없다. 이슬이 땅을 적셔 메마른 풀잎에 생명을 주는 것은 소리가 없다. 성령의 임재로 마음의 죄를 일소하고 주님이 마음의 왕좌를 차지하게 하심도 소리가 없다. 예언자들은 메시아의 탄생과 그가 통치하실 메시아 왕국을 줄기차게 예언했다. 역사의 어둠이 짙었을 때 메시아의 출현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군중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로마제국의 숨통을 조이며 정복자의 영광으로 나타나길 바라고 믿었다.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메시아는 숨죽이며 조용히 찾아오셨다. 세상은 몰랐다.

세상은 요란한 혁명가를 좋아한다. 그의 비감어린 어투와 투쟁적인 구호와 호탕한 웃음소리를 즐긴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말씀하심은 세상의 어둔 색을 밝은 빛으로 교체하고 썩은 부위에 새살이 돋은 체질로 개선하되 소리 없이 진행하라는 뜻이다. 주님의 자기혁명은 초라한 변신에서 출발하였다. 역사상 걸출한 혁명가들은 화려한 변신을 거쳤지만 주님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전혀 없었다. 가장 작은 나라, 가장 작은 고을, 가장 천한 곳에서 가장 작은 생명으로 태어나 가장 멸시받던 나사렛에서 자라셨다. 깡촌인 갈릴리에서 활동을 시작하셨다. 가장 악랄한 적대 집단을 상대로 힘겨운 사역의 길을 걸으셨다. 가장 무기력한 계층을 제자 그룹으로 받아들이셨다. 가장 악랄한 형틀에 묶여 가장 추악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가장 무기력하게 죽으셨다.

가장 약함의 가장자리에서 변두리를 돌며 가장 가난하고 소외당한 자들의 친구가 되셨던 그분은 가장 철저한 종교집단과 가장 강력한 정치권력의 합세로 가장 무법한 판결에 따라 가장 비참한 최후를 보이셨다. 가장 유능했던 제자의 배반과 가장 믿었던 제자의 배신을 겹으로 당하셨다. 나머지 제자들에게서도 위로받지 못하셨던 주님은 가장 외로운 스승이었다. 창칼로 다가선 이들에게 칼을 거두어들였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짓이겨오는 세력 앞에서 무저항으로 일관하셨다. 이것을 누가 혁명이라 생각인들 하겠는가? 가장 무지막지한 집단에 의해 가장 무자비하게 참살당한 가장 무기력한 최후였다. 그런데 그의 부활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세상임금의 지위를 누리던 사탄이 쫓겨나고 혁명정부의 임시청사(교회)가 마련되었다. 교회는 패배한 사탄이 벌이는 게릴라전에 맞대응하며 주님의 혁명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긍휼로, 사탄에게는 증오로 대항해야 한다.

 

윤홍식 기자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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