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발행인칼럼
[발행인 최원영칼럼]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그립다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이 믿는 예수님을 보고 싶습니다."
  • 발행인 최원영
  • 승인 2019.09.03 02:32
  • 댓글 0
  • 조회수 518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변화산기도원협력목사,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저서: 주기도문이해, 제자세우기40일영적순례(1,2권), 충성된일꾼되어가기 등

정상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새 옷을 찢어서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 그럴 경우 새 옷만 망가지게 된다. 또한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 옷은 색상이 살아있는 반면에 낡은 옷은 색상이 바래기 때문에 둘 다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어울리지 않는 믿음 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새 옷은 복음을 말하고, 낡은 옷은 형식만 남은 율법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율법의 형식을 통해서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복음으로 된 것이다.

구원의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은혜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은 잊어버리고 어느날 형식만 남게 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입으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삶은 여전히 세상적이며, 세상적인 기준으로 우리의 이웃들을 바라본다. 이것을 어울리지 않는 신앙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갈멜산에서 엘리사와 이방선지자 850명과 영적 전투가 벌어졌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 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세상 모든 민족가운데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았다. 이것을 보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도 저것도 선택을 못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타까운 신앙을 본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보는 사람도 안타깝고 안쓰럽다.

초대교회의 영성에 찬물을 던졌던 인물중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있다. 부부는 땅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하고 일부를 숨기고 다 드린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그 결과 부부는 그 날에 죽임을 당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다. 말의 고백과 행동의 고백이 일치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교회 공동체에 큰 축복과 기적과 은혜가 있었을 텐데... 부부의 아름다운 드림이 온전했다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누릴 영적 기쁨이 충만했을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하는 행동을 분석해볼 때 교회에서의 모습과 사회에서 모습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다. 신앙인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옷을 입어도 어울려야 보기가 아름답다.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양발과 검은 구두를 신으면 전체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흰 양발을 신었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어울려야한다. 믿음 따로 행동 따로 하는 성도들을 보면 안타깝다.하나님도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 매우 서글플 것이다. 가슴이 아플 것이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한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신앙고백을 잘 한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요, 나의 전부이며,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을 한다. 생명도 시간도 재산도 사업장도 가정도 자녀도 재능도 다 주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을 하며 찬양하며 기도한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며 찬양하며 고백하면서 때로 중요한 때에는 우리들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선을 긋는다. “이 것 만큼은 안 됩니다. 다른 것은 다 순종할 수 있는데 이것만큼은 내 자유대로 하겠습니다.” “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순종하기 싫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과 세상 사이에 타협하며 적당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이것을 보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땅끝의 아이들』

이민아 목사의 저서 ‘땅끝의 아이들’이 있다.  이 책은 오래전에 읽었다. 여운이 남는 책이다. 이민아씨는 이어령 장관의 딸이며, 전 문화부 장관이었던 김한길씨의 전 처였다. 그녀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짧은 인생을 살다가 2012년 3월 15일 5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민아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조기 졸업하고, 미국에서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이며, LA지역 부장검사를 지냈다. 이런 이력서 때문에 사람들이 이민아씨를 집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여인의 인생을 보면 가엾을 정도로 힘든 고난의 삶을 살았다.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재혼하고 나서 둘째 아이가 장애아이고, 그리고 첫 아이가 사망했다. 김한길씨 사이에 난 첫 번째 아이는 미국 명문 버클리대를 졸업했다.

“25살에 엄마와 아들이 한 레스토랑에서 대화를 합니다. 아들아 이제 대학을 졸업했으니 좀 더 깊은 신앙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더 깊은 하나님의 세계로 가까이 갔으면 좋겠다. 이것이 엄마의 유일한 바램이야. 엄마 나 교회 잘 다니고 있어요. 엄마 나이 때쯤 되면 더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갈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한 두해 정도는 친구들과 좀 더 재미있게 지내고 싶어요, 엄마 사랑해. 그래 나도 사랑한다.”

이 대화를 마친지 일주일 후 아들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면서 병원에 입원했고,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십 수 일이 지난 후 아들은 엄마의 품을 떠나 땅에 묻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잘 생긴 아들이 그렇게 떠나갔다.

이민아씨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이혼의 아픔을 극복하고, 재혼을 했지만 장애아 아이를 키우고,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는 많은 아픔과 시련속에서도 승리했기 때문이다. 1992년 세례를 받은 이후 믿음을 붙들고 승리했기 때문이다.

2009년 이민아씨는 목사 안수를 받고 그의 생애를 전부 주님께 헌신하고 있다. 그녀는 아들을 땅에 묻는 그날, 그녀는 이 땅에 수많은 아이들을 가슴에 품었다. 그녀의 눈에는 마약과 술에 찌든 아이들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가 ‘땅끝의 아이들’이었다. 이민아 목사는 말하기를 복음은 오늘 지금 바로 여기에서 전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초 후에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그는 지금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다음에 당신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민아 목사에게 많은 독자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그분에게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다.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신앙이 어울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 것이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주문한다. 예수님이 싫은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말과 행실이 다른 당신 때문에 교회가 싫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믿는 예수님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통해서 변화된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예수님 때문에 바뀐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것에 목말라 한다. 우리는 어울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울려야 한다. 이것이 축복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서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국민들은 자유 한국당의 변하지 않는 모습에 지쳤다. 그래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외쳤던 현 정권의 선언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진보적 좌파들에게 나라의 운전대를 맡겼다. 그런데 국민의 기대치와는 너무도 차이가 났다. 변명이 너무 구차하다. 386세대들의 구호와는 반대로 삶의 방식이 너무도 국민적 정서와는 맞지 않았다. 가치와 삶의 방식이 참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구호는 화려했지만, 국가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준비가 안 된 미성숙한 운전자들인 것 같다. 진보적 좌파들의 변명에 점점 지쳐간다.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어울리는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수준 높은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교회는 빈둥지 건물만이 남을 것이다. 이미 그 징조를 보고 애써 눈을 피하고 있다.

마태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위하여 큰 잔치를 열고 세리와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다. 이 자리는 마태에게 있어서 결단의 장소인 것이다. 마태는 더 이상 나는 죄인의 모습으로 살지 않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 귀빈으로 계신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 그분의 제자로 일생동안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겠다는 선언의 장소인 것이다. 이것이 어울리는 제자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이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발행인 최원영  jhonchoi@hanmail.net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발행인 최원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