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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칼럼】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는 자가 아름답다【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23) 계획(計畫)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D.Min.),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호메로스와 사마천의 역사관은 인간과 하늘로 압축될 수 있다. 전자는 하늘에 뜻을 따라 뭔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고독하지만 스스로 결정해서 그 결과를 하늘에 통보하는 식의 역사관이다.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오디세이아 류의 인간 중심 캐릭터다. 후자는 궁형을 당한 채 치욕 속에서 살아가지만 하늘을 믿고 하늘의 뜻에 맞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마천 류의 하늘 중심 인간이다. 후자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하늘의 뜻, 즉 천명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자작 천명을 만들어 유포할 위험이 있다.

어떤 선택은 우리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직장사역국제연합 책임자 오스 힐먼(Os Hillman)에 의하면, 하나님과 수직적인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직적인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거하며 친밀한 교제를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들을 수 있고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선교할 때 하나님과 수직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2년을 하루같이 두란노서원에서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고 믿음이 성장해 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음을 디테일하게 매일매일 짚어갔다. 구석구석 짚어가며 담대하게 선포하였다.

 

1. 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에차’는 심사숙고해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의도, 계획’을 뜻한다. 성경에는 ‘인간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다. 시편 33:10-11에서 시인은 야훼께서 나라들의 계획, 즉 에차는 폐하시고 야훼의 에차는 영원히 선다고 노래한다. 잠언 19:21에서 사람의 마음에 있는 많은 ‘생각 또는 계획’에 해당하는 ‘마하샤바’이고 야훼의 뜻은 에차이다. 다니엘에서 나오는 아람어로서 이 의미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동사는 ‘체바’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하시고 소원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신약성경에서 나오는 명사는 ‘델레마(θέλημα)’와 ‘불레(βουλη)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의향이고, 후자는 심사숙고하여 작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과 뜻이다. 전자는 주기도문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시므로 실제로 이를 예증하신다(마 26:42). 하나님을 뜻, 즉 델레마를 행하는 자라야 예수님의 형제, 자매, 모친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하나님의 불레를 꺼림 없이 전할뿐만 아니라 ‘다’ 전하였다. 하나님이 심사숙고하여 작정하신 영원하신 계획과 뜻을 대충 전할 수 없고, 사정이 변하여 중도에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이 왜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려고 애썼을까. 어느 도시보다 어느 선교지보다 많은 열심을 품고 가르치는 사역에 전념한 이유가 무엇일까. 에베소 교인들을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랬을까(행 20:25).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전도자로서 깨끗하기 위해 그렇게 힘썼을까(행 20:26). 아니면 바울이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와 같은 이들이 에베소 교회에 침투해서 신앙을 흔들어 놓을 것을 사전에 예방차원에서 그렇게 했는가(행 20:29). 이 모두가 이유가 된다면 부정적인 사유다. 그러나 긍정적인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자체가 온전하고 영원히 서야 하기 때문이다(시 33:11).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알아야 한다. 영적 전쟁을 하는 사람답게 어떤 긴박한 사건이 생겨도 습관적으로 정확히 대처할 수 있도록 몸에 빼여 있어야 한다. 운전하는 자가 돌발상황에 생각할 겨를이 없이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어야 하고 핸들을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훈련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야 할 바를 본능적으로 대처한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알아야 하는 이유다.

5W1H(육하원칙) 중 ‘How’는 다른 5개의 W와 차별되게 쓰인다.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옳은 대답이 없다. 어떠한 대답이 나오더라도 틀렸다 할 수 없고, 여러 가지로 다르게 나와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거침없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전하였느냐고 할 때 ‘다’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에서 그 뜻을 알고 있었지만(롬 2:18),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만이 진정으로 그것을 인식하였다(눅 13:47-48). 그리하여 바울은 회심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행 22:14). 성령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원대로 행동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신다(비교. 엡 5:17).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 기술은 세 가지다. 소재·장비·제조다. 한국은 제조 기술에 온 화력을 집중했다. 나머지는 국제 분업 시스템에 따라 수입했다. 같은 재료와 소재를 써도 더 효율적인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하는 기술에 집중했다. 반도체 중에서도 변화 주기가 빠른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했다. 기술이 뛰어났기에 세계 1위를 자랑할 수 있다. 그런데 소재가 공급이 안 되면 최첨단 장비가 있고 탁월한 기술이 있어도 제품을 만들 수 없다. 바울의 선교도 마찬가지다. 장비에 해당하는 훌륭한 선교팀과 후원체계, 바울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 열정이 있어도 반도체를 만드는 소재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없다면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에 불과한 것이다.

<Saint Paul and the burning of pagan books at Ephesus>, Lucio Massari, 1612 / “바울이 에베소에서 이교도의 책을 불사르다”

 

2. 하나님의 뜻은 다 전해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 선교 사역을 할 때 가장 중점을 둔 사역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전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전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는 구약성경 속에 도도히 흐르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구원계획 전체에 대해 세세하게 가르쳤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어떤 부분은 인기가 없거나 어렵다고 싶으면 건너뛰거나 생략하기 싶다. 바울이 지난 2년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칠 때 그런 일은 없었다는 말이다. 로마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오만한 자’라고 불렀다. 오만한 자는 장님이 돼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행을 인식할 수 없다. 자신이 자초한 불행의 희생자가 된다. 바울은 장님이 되기 싫어서, 열심히 가르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서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멀리 나는 알바트로스(Albatross)를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장 높이 나는 새, 한 번도 쉬지 않고 먼 거리를 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바람 타기의 명수이기 때문이다. 바람과 파도를 이용한 역동적 활공법을 구사한다. 동양에서는 알바트로스를 신천옹(信天翁)이라 불렀다. ‘하늘의 뜻을 믿는 노익장’이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다 펼친 두란노 서원은 우리나라 순천향 병원을 상기시킨다. 순천향(順天鄕)이란 이름을 풀이하면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술을 펼치는 고향마을’이다.

알바트로스, "하늘을 믿고 날아 오르는 노익장"의 의미로 동양에서는 이 새를 "신천옹(信天翁)"이라 부른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다. 바울 역시 꺼림 없이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였다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보충 설명을 생략한다. 이는 그 뜻을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거룩한 삶과 감사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고, 위정자들에 대한 복종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고후 8:5).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은 하나의 주제다. 특히 누가-행전에서 그러하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죽었고, 바리새인들은 선지자 요한을 반대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고(눅 7:30), 예수님은 하나님의 확고한 계획에 의해 넘겨진 바 되셨다.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불레는 사도들의 메시지의 내용이다(20:27). 바울에게 하나님의 뜻과 칭기스 칸의 하늘의 뜻은 다르다. 몽골 부족을 통합하고 몽골국의 최고 통치자가 된 Činggis Qan은 자신의 성공이 결국 하늘의 뜻이라고 확신한다. 이 신념은 올바른 종교의 길을 가지 않는 모든 나라를 정복하여 하늘의 뜻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한다. 자신의 확신의 산물이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선교할 때 두란노 서원에서 2년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열정적으로 가르쳤다(참조. 19:9-10). 왜 그랬을까. 바울이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전하려고 애쓰고 힘썼을까. 바울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뜻을 전하지 않음으로 인해 앞으로 교리적으로 또는 도덕적인 오류가 생겼을 때 가르치는 자에게 책임이 돌아온다. 그래서 자신은 책임이 없는 이유를 제시하면서 하나님의 뜻의 그 어떤 부분도 꺼리지 않고 다 전했다고 말하고 있다. 시에스타 시간을 이용했다면 냉방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는 공간에서 수면이나 휴식을 희생하면서 2년을 하루같이 열정을 쏟은 까닭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뜻도 되겠지만 진리를 전해 듣지 않고서는 성장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면 결국 자신의 뜻이나 세상의 뜻을 앞세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나서 자신의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만 선택하는 인지적 오류를 말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향을 갖고 있다. 화자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청자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나머지는 걸려 버리면 통전적 지식을 갖지 못하고 인지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바울은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다’ 전하였다. ‘다’에 해당하는 ‘파스’는 모두를 말한다. 장소는 공중과 각 집이다. 대상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다. 장소와 대상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면, 전하는 자의 임의에 따라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한다면 진리가 아니다. 장소와 청중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그대로 몽땅 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환경과 청중에 따라 전달하는 내용이 분량이나 시간 그리고 핵심이 가변적일 가능성이 있는데 바울은 오히려 장소가 바뀌든 대상이 많든 적든 또는 달라지든 전파하는 내용은 다 전하는데 전념했다.

 

이승희 목사  titeiosl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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