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병 목사(화천 간동교회 담임목사)

오늘 우리 세대는 나라 잃은 설움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라의 부강함이 주는 혜택을 너무나 당연히 여겨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오늘 우리 세대를 위해 누군가는 시대의 아픔을 겪으며 나라와 민족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모진 풍파를 견뎌야만 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여 독립국가를 이룩하는 힘도, 봉건사회를 개혁하는 힘도, 국제사회와 발맞추어 힘차게 전진할 힘도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민족의 현실을 직면하여 맞서 싸운 선각자들이 없었다면, 자원도 없고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는 한민족은 지구상에서 명맥을 잇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일제의 노골적인 침략을 받고 있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 민족을 깨우고, 계몽하고 교육하여 시대의 일꾼으로 세우는 일에 투신한 많은 민족 운동가들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는 일일이 꼽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족운동의 심장이며, 엔진이었습니다. 남강 이승훈,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고당 조만식, 일가 김용기, 성산 장기려 등으로 이어지는 기독교 사회운동과 민족 개혁운동은 한국 사회와 민중 속에 파고들어 사회개혁과 민족운동의 에너지가 되었고, 민족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황성 기독청년회(서울 YMCA), 1907년 <출처:월남 이상재선생 기념사업회>

특히 이들은 기독교의 진리와 가치관을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사회적이고 민족적인 이념으로 승화되도록 노력한 분들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민족의 위태로움 앞에서 오로지 나라를 살리는 길은 기독교 안에 있는 진리와 사랑의 정신임을 그들은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실천하였으며, 자신을 희생하여 그 가치를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하여 밤을 밝히면서 고민하여 자신들의 사상과 정신을 가다듬었고, 민족문제를 두고 깊이 기도하였으며,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조국의 독립을 강조하면서 민족적 사명을 새롭게 깨우치게 하는 동시에,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예수 믿고 천당 간다’는 내세 위주의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들은 민족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이 민중의 선각자로서 실천적 사랑의 생활을 하도록 독려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현실을 타개하고 부조리를 타파하는데 앞장서도록, 정직하고 근면하며 성실하여 언어와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요구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악한 기독교의 정수를 관념 속에 가두거나 종교적인 교리 속에 묶어두지 않고, 자신의 영적인 에너지로 삼았으며, 더 확대하여 사회를 개혁하고 변혁하는 에너지로 활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신앙의 유산이 있는데, 우리 한국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요? 그분들의 정신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깨우고 질타하며, 독려하고 있습니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내일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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