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1970년대 초에, 나는 식구들을 데리고 화란 암스테르담에 유학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화란 유치원, 즉 클레이틀 스쿨에서 공부했다. 그때 받은 인상이 참 좋아서 소개했으면 한다.

화란 유치원은 2년제이다. 5세에서 6세까지다. 한 클래스에 보통 10명에서 12명의 아이가 한 선생님 아래서 배운다. 구체적으로 아이들이 무슨 지도를 받았는지 어깨너머로 본 것뿐이지만 특이한 것은 이렇다. 그 나라의 유치원 교육은 2년 동안, 그냥 민주 시민으로 가져야 할 기본 교양을 훈련받는다. 그러나 선생님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실천을 통해서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치도록 한다는 데 있다. 우리처럼 무엇을 외우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없다.

예를 들면, 선생님은 동물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기보다는, 아이들에게 각자 집에서 먹다 남은 빵 조각을 가져오게 하고, 아이들을 공원에 데리고 가서 오리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며 즐겁게 노는 것이다. 잘 놀게 하는 것은 참 좋은 교육이다. 교육이라야 방에 들어갈 때 반드시 노크해야 한다거나, 여러 사람에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남의 말을 먼저 듣는다든지 하는 것을 놀이를 통해서 배운다. 그리고 자기가 갖고 놀던 장난감은 반드시 정돈하는 훈련, 그쪽 말로는 오쁘라이밍이라 하여 계속 반복훈련을 한다. 뭐 이런 것들은 우리 유치원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2년이 지난 후 초등학교로 올라가는데, 담임 선생님이 학부형을 불러서 상담한다. 보통은 초등학교에 모두 올라가지만, 어떤 때는 담임선생님이 아무개는 일 년 더 유치원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유급결정을 내린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판단으로 이 어린이는 장차 민주시민으로서 훈련과 소양이 부족하니, 한 해를 유치원에서 더 훈련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결정을 들은 학부형은 아무런 이의 없이 선생님에게 동의하여 자기 아이를 일 년 더 훈련하도록 한다. 대학교수의 권위도 중요하고 초등, 중등, 고등 학교 선생님의 권위도 중요하지만, 유치원 교사의 권위도 존경받아야 한다. 만에 하나, 한국의 유치원 교사가 이런 결정을 했다가는 학부모로부터 교사의 머리카락이 남아날까 생각해 본다. 엄마들은 내 아이가 뭐가 부족해서, 당신이 뭐가 잘나서, 내 아이를 유치원에서 유급시키느냐고 대들 것이다. 아마 법적 소송도 불사할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와 한국교육은 무슨 수를 쓰든지 좋은 학원, 좋은 유치원, 좋은 상급학교, 좋은 대학을 들어가려고 온갖 편법, 불법도 마다치 않는다. 오늘의 한국교육을 보면 교사가 학생에게 고발당하고 두들겨 맞는 시대이다. 조기교육도 좋고, 예능교육도 영어교육도 좋지만 어린 시절에 교양 있는 한 인간으로, 민주시민으로서 덕과 소양의 기초를 닦아야 하겠다. 지금 한국은 자녀 사랑, 자녀 교육에 올인 한 나머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억지로 스펙을 만들고, 금수저니, 은수저니, 흙수저니로 편 가르기를 하여 자녀들이 장성해도 덕과 교양 있는 민주시민이 될 수 없다. 오늘날 한국사람은 공부도 많이 했고, 돈도 있지만 아주 천박하고 탐욕스런 이기주의자들이 되었다. 한국 사람은 이웃에 대한 배려도 매너도 없다. 정말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정도의 경제규모에 걸맞은 교양과 인품이 있는 국민인가 생각해 본다.

오늘의 한국 사람들은 모두 눈이 시뻘겋게 탐욕과 불법이 통용되는 사회가 되었다. 미래의 사회는 결국 교육이 책임져야 하는데, 교육 당국은 포스트모던 사상이나 뉴에이지 사상으로 학생 인권만 부르짖다가 버릇없고 교양 없고 이기주의 인간들만 생산했다. 교육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한국의 교육은 돈만 있으면 되고, 권력만 있으면 되고, 명예만 있으면 된다는 유물주의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유치원에도 민주시민으로 기본 교양을 갖추지 못하면 유급을 시키는 그 나라의 선생님, 그것을 긍정적으로 믿고 선생님의 권위를 따르는 화란의 유치원 부모를 생각해 본다.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오늘, 한국의 교육을 보면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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