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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성목사 인터뷰] 존 웨슬리의 '지성'과 '영성'을 닮고자 노력하는 목사교회 부흥은 '절실함'과 '몰두'하면 반드시 성장한다. 이것이 나의 경험을 통해 얻은 자산이다.
  • 발행인 최원영목사
  • 승인 2019.09.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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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우리교회(구,뉴월드교회) 양기성 목사를 본헤럴드 대표 최원영 목사가 인터뷰한 내용이다. 그는 참으로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이력서에 쓸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절실하게 살았다는 반증일것이다. 그는 도전의 아이콘이었다.

양기성 목사, 청주 우리교회(구, 뉴월드교회) 담임목사, 한남대학교 대학원 졸업, 서울신학대학교 및 대학원 졸업, 미국 아주사퍼시픽대학교 신학대학원, 청주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ph.D),  서울신학대학교 및 대학원 행정학 겸임교수 등, 웨슬리언 교회지도자 협의회 사무총장 등...

Q. 목사님의 목회 여정을 듣고 싶습니다.

A. 저는 청주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39년 동안 청주에서 목회하면서 세 번의 교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를 뒤 돌아 보면서, 목회자에게 남는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83년에 첫 번째 청주중앙 교회를 개척 했는데, 10명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3년 만에 150명으로 부흥했습니다. 교회 개척 후 3년 만에 70평 대지 위에 건축을 했는데, 지하1층 지상 3층으로 건축했습니다. 개척 6년 만에 300명 출석했고, 새벽기도에 60명씩 출석하는 큰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두 번째 교회 이전 건축을 했습니다.

두 번째 건축한 교회, "새 세상 교회" 전굥

새벽 기도 중에 주님께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길 대로변 옆에, 1999년 땅 150평을 구입했고, 지하 1층, 지하 3층 300평을 건축하여 2001년 입당했습니다. 교회 이름을 “새 세상 교회”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는 의미로 ‘새 세상 교회로 지었습니다.

세 번째 교회 청주 ‘우리교회’ 이전 건축을 했습니다.

 

교회가 부흥 성장하던 중, 교회 주변 재개발로 인해 교회가 사라지면서, 마음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4년 동안 상가 임대 교회를 하며, 2012년 500평 대지에 건평 300평, 지하 1층, 지상 3층을 건축하여 입당하였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교회입니다. 교회 이름을 “새 세상 교회”에서 "뉴월드 교회"로 지금은 “우리교회”로 변경하게 되었지요.

 

Q. 교회가 부흥하는데 있어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면..

A.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개척 목회를 시작하면서 부흥도 경험했습니다. 부흥의 키워드가 있다면, 목회에 대한 절실함”과 더불어 목양에 “몰두”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회에 대한 ‘절실함’과 목양에 ‘몰두’하면, 교회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이것이 내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자산입니다. 목사가 말씀과 기도와 예배에 몰두하면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게 됩니다.

또한, 청주 CBS 방송 설교를 10년간 지속하면서 나의 설교도 많이 다듬어졌고, 또한 교회 성장에 큰 도움도 되었습니다. 청주라는 지방 도시에서 교회에서 하는 문화사역이 전무했던 시절에, 문화사역도 교회 부흥에 한 요인 이었다고 봅니다.

 

Q. 목사님 교회를 보니 아름답습니다. 교회 건물에 대한 철학이 있는지요.

A.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출3:7,8)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말씀이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3:8)으로 데려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목회의 모토가 이 말씀에서 나옵니다. “아름답고”, “광대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교회를 아름답게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광대하게” 애굽의 종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꿈은 광대함입니다. 항상 비전은 넓은 세상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웨슬레가 “세계는 내 교구이다”라는 말처럼 나도 그런 마음을 품었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곳” 자녀에 대한 주님의 마음은 항상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풍성하게 주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습니다.

 

Q. 교회사역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간증이 있다면.

우리 교회 예배 모습

A. 내 목회중에서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공군 헌병 대장부인 집사님입니다. 지성과 영성과 겸손을 겸비한 분입니다. 우연히 개척교회 오셨는데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고, 출석하게 되었고, 교회 회계를 맡아 헌신해주셨습니다.

여 집사님은 목사님을 대접하고,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알았습니다. 목사님이 자전거 타고 심방하는 것을 보고, 자가용 사라고 헌금을 가져왔습니다. 80년대입니다. 자가용을 사야할지 포기해야할지 놓고 기도 많이 했습니다. 자동차를 구입해서 타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현대 포니 중고를 구입했습니다. 집사님은 차를 탈 때마다 두 딸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딸들이 믿음으로 잘 성장해주어서, 큰딸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둘째따님은 숙대 약대를 졸업했습니다. 내 목회중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동역자였습니다.

80년대는 목회자가 보너스를 받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 집사님이 개척교회 목회자에게 보너스를 주자고 건의했습니다. 주의 종이 상처를 받으면 교인들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목회자의 삶이 너무 어려우면 교회에 올인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 사례비와 보너스를 드리자고 제안했습니다. 개척교회 목사가 보너스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부터 교회가 재정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택을 건축하는데, 남자 성도는 15평을 하자고 했는데, 여자 집사님은 25평을 합시다. 남자 분들은 연탄보일러로 하자고 했는데, 여자 집사님은 기름보일러로 하자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여자 집사님의 의견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집사님은 모든 공 예배를 100% 참석했고, 열정과 섬김이 타의 모범의 되었기에 모든 성도들이 다 수긍하여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게 되었습니다. 일생동안 잊지 못할 귀한 동역자였습니다.

교회를 건축해야하는데, 교회가 여유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준비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3번이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배중에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응답을 주셨는데 준비된 자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가 잘못하면 사기꾼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청주로 이사 와서 교회를 정하기 위해 6개월간 교회를 순방 하던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집사님께서 목사님 설교에서 생명력을 느꼈다고 고백하면서, 강화도 땅 2천 평을 드리고, 건축헌금 20만원을 헌금했습니다. 이것이 교회 건축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Q. 목회자로 걷게 된 동기가 있다면.

A. 나는 유성성결교회를 다녔습니다. 꿈은 외교관이었습니다. 성령을 체험하고 서울신학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부흥회 강사 목사님의 설교 말씀 중에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이 한 마디가 마음에 꽂혔습니다. 내일부터 교회 나와서 하나님 만나면 교회 다니고, 못 만나면 교회 안다니겠다고 담임목사님께 말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두 달째인, 1970년 5월 24일 새벽 2시에, 목사님 자리에 올라가서 기도하면 응답받을 것 같아. 의자 붙들고 기도하며 외쳤습니다. ‘보여주세요.’ 기도하는데, 혀가 꼬부러지면서 방언이 터지고, 온 몸에 희열과 감동이 물밀 듯 찾아왔습니다. 기도도 전혀 안되었는데, 기도가 터지면서, 새벽 5시까지 기도했습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벽기도에 1등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늦게 교회를 나가겠다고 항상 결심을 하면서 실천했습니다. 은혜 받고 나니 예배 때마다 대표기도와. 특송을 하고 싶었습니다.

형님은 신학가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군 장교인 형님은, 미친놈이라고 말하면서, 외교관이 되겠다는 놈이 목사 되겠다고 나를 힘들게했습니다. 그런연유로 집을 나와서, 유성 천양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 수학을 가르치면서 공부를 하였고, 또한 대전에서가정교사로 일하면서 신학대학 입학을 준비하였습니다.

 

Q. 목사님을 떠올리면, 늘 웨슬리와 연관된 사역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에게는 웨슬리가 어떤 분인가요.

A. 1974년 서울신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조종남박사의 웨슬리 강의를 듣던 중, 웨슬리가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 이 말은 나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내 안에는 늘 뜨거운 “불”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불이 곧 웨슬레의 ‘영성’을 받아들이는 모판이 되었지요. 웨슬레 강의를 듣다 보니, 내가 참으로 무식하구나. 내가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웨슬리처럼 ‘지성’을 갖추어야 겠다고 생각하였고,  웨슬리를 본받겠다는 마음으로 20년 동안 대학공부를 하였습니다.

 

Q. 목사님의 이력 중에 부흥사로서 사역을 많이 감당한 것 같습니다.

저는 30년 간 부흥사로서 사역하는 것을 매우 기쁘게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부흥회를 인도할때마다 내 가슴에 웨슬리의 뜨거운 복음의 마음을 부어주셨습니다. 또한 용인푸른초장 기도원 원장으로서 20년간 사역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할때마다 주님께서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부흥성회를 갈 때마다 청빙 제의를 받았습니다. 미국서 두 번, 일본서  한 번, 서울에서 여러차례 청빙을 받았습니다. 그럴때마다 고민도 했지만, 내 길이 아닌것 같아 거절했습니다.

 

Q. 목회자로서 특이한 이력이 있습니다.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군요.

A. 목회자로서 행정학 박사를 받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기성 교단에서는 처음일 것 같네요. 행정학 석박사 과정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외국어 시험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일본을 선택했다가 나중에는 독일어를 선택해서 최종적으로 독어와 영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목사는 최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목회자이기에 신학을 해야 하고, 상담하려면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고, 가르치는 일이기에 교육학을 해야 하고, 목회자는 행정가이기 때문에 행정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총회 때 보면, 착하고 좋은 목사들이 정치꾼들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공부해서 그들을 변호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행정학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일생동안 목사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특히 박사 학위를 받아야겠다는 것이 늘 내 마음을 지배했습니다. 그 동기를 부여한 계기 된 사건이 있습니다. 부산 동광교회에서 전도사를 사임할 때, 목사님께서 광고할 때, 전도사님이 서울에서 박사 학위받고 다시 올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그때, 내가 무슨 박사를 해, 그런데 목회자의 말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 말대로 박사를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말이 씨가 되어서 내 안에서 자랐습니다.

 

Q. 목사님의 저서가 참으로 많습니다. 소개 좀 해주세요.

양기성 목사 저술들

A. 『성공하는 리더십의 비밀』은 2001년에 번역한 책입니다. 켄네쓰 블랜챠드와 스펜서 존슨은 이 책속에서 한마디로 “1분 칭찬”과 “1분 질책 그리고 지속적인 체킹”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리더십의 비밀은 당신의 작은 혀끝에 달려 있다.” 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나서 늘 당당했다. 늘 도전하는 정신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이 나에게 큰 도전을 주었기에 번역을 해서 소개한 것입니다.

『당신도 넘버원 자도자』는 2005년에 출판된 책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유일한 넘버원 지도자이다. 웨슬레는 타락한 영국 교회와 사회를 구원한 지도자이다. 웨슬레를 따르는 사람들이 무려 8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웨슬레 성령충만과 행정력이 있으면 세계적인 교회를 세울 수 있다.

『장로의 느헤미야 리더십』는 2006년에 출판된 책입니다. 느헤미야는 탁월한 행정가이며 건축과 건설에도 대가입니다. 느헤미야를 통해서 오늘날 장로의 리더십의 역할과 책임을 설명한 책이지요.

『인간경영 중심의 교회행정』는 2010년 출간되었습니다. 행정이란 학자들에 따라 다르게 정의하지만, 기본적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사람’(인사행정)과 ‘돈’(재무행정)과 ‘일’(사무행정)에 대한 상호 작용을 합리적으로 수행하려는 인간 관리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행정국가 시대입니다. 목회자들도 영성과 지성과 감성 이상으로 교회 행정 기술과 인간경영 기법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현대인과 행정』은 2014년 출판했습니다. 행정에 관한 기본 지침서이다. 양기성 목사는 책 머리말에 “행정은 현대인의 삶의 질을 유지 보존하는 절대 필요한 도구이며 수단이다.”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데 ‘사람관리 돈 관리 일 관리’가 항상 있을진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람 관리 이니라.” “현대인과 행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했다.

양기성 목사 저술들

공저로서는 『웨슬리와 성결교회』, 『존 웨슬리와 현대이슈』, 『웨슬리의 영성과 리더십』 등을 저술했습니다.

 

Q. 목사님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나의 인생에 어려움앞에서도 큰 확신 가운데 늘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니라”(고후5:14).

내가 훌륭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떠밀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였습니다. 나를 떠밀어서 오늘까지 주님의 사역을 다양하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개척 사역, 신학교 교수 사역, 기도원 사역, 웨슬리언 세계학술대회 및 교회지도자 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지금까지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를 하나님이 강권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떠밀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2:14).

그리스도께서는 날마다 이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냄새를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에 늘 나에게 도전을 줍니다. 예수 믿고 나서 늘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늘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오늘까지 나를 이끌어가는 힘이었습니다.

 

Q. 목사님이 찬양을 아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음반도 내셨다고 하는데, 목사님이 즐겨 부르는 찬양이 있다면,

A. 찬양은 대중과 공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부흥회를 할 때마다, 처음 시작할 때 찬양을 하며, 마칠 때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부흥회를 시작할 때, “마음 문을 굳게 닫고, 하나님의 귀한 말씀 무슨 일로 받지 않고, 왜 이 시간 왜 이 시간 구원을 왜 안 받느뇨”, 집회를 마칠 때는 “형제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봤나요. 우리들의 가슴에 진실한 사랑이 있는지...”

찬송과 기도가 하나 되면, 주님의 은혜는 내려옵니다. 제가 기도원 원장을 20년 동안 하면서 현장에 경험했습니다.

 

Q. 자녀들은 어떤지요.

A. 남매들은 미국에서 UCLA를 졸업하고, 딸은 뉴욕 중심가 맨하턴에 위치한 NYU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아들은 영국 캠브리지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둘 다 결혼했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꿈이 있다면 폭 넓은 시양와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글로벌 리더로 주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대로, 꿈대로 자녀들의 앞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또한, 감사한 일은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하나님이 꿈으로 정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딸이 대학입시를 앞에 두고, 새벽기도 후 꿈을 꾸는데, 방바닥에 UCLA라는 글자가 쓰여 졌습니다. 딸에게 너는 붙었어라고 말했는데, 꿈대로 대학에 입학을 했습니다.

아들도 대학 입시를 앞에 두고 꿈을 꾸었습니다. 시골에 가면 메주를 달아놓습니다. 메주가 95센치는 붙어 있는데, 5센치가 부족해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5센치를 철사로 묶어서 붙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이지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네 실력으로 떨어지지만 하나님이 붙어주신다. 꿈대로 아들이 대학에 붙었습니다.

Q. 몇 년 있으면 은퇴하게 됩니다.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요.

A. 웨슬리 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나의 마음과 삶을 사로잡았던 웨슬리 성령운동은 나의 목회의 중요한 축이었습니다. 또는 주님이 은혜를 주시는 한 계속해서 공부하며 책을 쓰려고 합니다. 현재 10 권을 출판했으니, 앞으로 계속해서 책을 쓰며, 번역도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웨슬리 세미나 및 교회 행정 세미나는 강사비 안 받고 봉사하려고 합니다. 부흥집회 30년 했습니다. 앞으로는 자비량 부흥집회로 교회를 섬기고자 합니다. 웨슬레 정신으로 하려고 합니다.

[발행인 최원영목사 후기]

최원영목사, 본헤럴드 발행인

양기성 목사를 만나러 청주에 갔다. 늘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었고, 전화로 서로 통화를 했지만, 만나서 깊이 교제한 적은 없었다. 하루 종일 함께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며, 공원을 산책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특히 그의 언어에는 부정적인 말이 없었다. 항상 비전을 말했고, 사명을 말했고, 도전을 말했고, 웨슬리의 지성과 영성을 말했다. 외모는 나와 별 차이를 느끼지 않은 50대 중반 같이 보였다. 그러나 주민등록 나이는 어느듯 70을 바라보는 황혼의 목회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는 웨슬리처럼 대형 교회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성실했고, 성령의 은혜를 간구했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오직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는 주님 나라에 영원한 청춘으로 비추어졌다.

발행인 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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