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25) 회심(回心)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D.Min.),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사람’이라는 말과 ‘인간’이라는 말은 같지만 다르다. 전자는 따뜻한 피와 다정한 눈빛이 담겨 있다. 후자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을 구분하려는 뜻이 강하다. 간단히 말해 사람이 다정한 말, 안아주는 말이라면 인간은 차가운 말, 배척하는 말이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죽을 때, 즉 돌아갈 때는 사람이고 싶다. 이런 소망을 이영광 시인이 ‘돌아가는 것’에서 노래한다. ‘요 몇 해, / 자꾸 동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 눈물이라는 동물 / 동물이라는 눈물 / 나는,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완곡어법(緩曲語法)은 원래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민망한 단어들을 듣기 좋게 포장하기 위해 쓰이곤 하지만, 때로는 그 ‘언어의 가면’이 너무도 신출귀몰하여 본래의 의미마저 퇴색되는 경우가 많다. 거칠고 퉁명스럽거나 민망한 단어들을 좀 더 온화하고 부드럽고 세련되게 바꾸어주는 것이다. 완곡어법(euphemism)은 본래 ‘좋다’는 뜻의 ‘eu’와 ‘말한다’는 뜻의 ‘pheme’이 합쳐진 말로서, 불길한 말을 대신하여 쓰는 호의적인 말이었다. 완곡 표현의 예를 들면 사람의 생명이 다하는 것을 ‘죽다’라고 하지 않고 ‘돌아가다’, ‘세상을 떠나다’, ‘숨을 거두다’, ‘별세하다’, ‘운명하다’, ‘유명을 달리하다’ 등으로 표현한다.

회심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 개념을 나타내는 주요한 단어들로 구약에서는 대표적 동사는 ‘שוב’(슈브)이다. 선지자들은 참된 회심에 해당하는 특별한 단어를 만들어내지 않고 돌아옴을 나타내는 슈브를 대신 사용한다. 이 단어에는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나쁜 길에 빠진 후에 되돌아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의 개념은 ‘...로부터 돌아선다’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는 능동의 뜻을 가진 중간태 ‘στρέφω’(스트레포), ‘ἐπιστρέφω’(에피스트레포)이다. 이 두 단어들은 모두 문자적인 의미는 ‘돌아가다’, 즉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다(참조, 요 21:20). 즉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돌이키는 것을 뜻한다. 에피스트레포는 신약에서 수동태로 사용되어 있지 않다. AV는 수동형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RSV는 능동형으로 번역한다. 슈프와 에피스트레포가 의미하는 것은 온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about-face). 하나님을 향한 결정적인 방향 전환을 가리키는 신약의 회화적인 표현이 유래했다(참조. 살전 1:9).

 

1. 돌아오라

구약성경에서 회심이란 악에서부터(렘 18:8) 야훼께로 돌이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주체는 누구인가. 악한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이신가. 사람은 그 성품이 악하기 때문에(호 5:4)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거부한다(대하 36:13). 따라서 돌이키는 제1동자(mover)는 하나님이시다. 물론 죄인은 그 종속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 돌아가는 대상은 누구인가. 어디인가.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개인이다(왕하 23:25). 민족도 된다(욘 3:10).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주체들을 회심케 함에 있어서 선지들을 그 대리인으로 사용하신다(느 9:26; 슥 1:4). 그리하여 야훼(הוהי)께 돌아오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징벌’(암 4:6-12)과 ‘포로됨’과(호 11:5) ‘파멸’(왕상 9:6-12)과 ‘죽임’(겔 33:9, 11)을 당하게 된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런 자들에게 불세례를 받을 것을 경고했다. 야훼(הוהי)께 돌아오는 자들은 죄 용서함(사 55:7)과 형벌에서 벗어남(욘 3:9, 10)과 풍성한 열매를 맺음(시 51:13; 호 14:4-8)과 생명(겔 33:14, 15)의 축복들을 얻게 된다.

율법으로 돌아간다는 느헤미야 9:29에서 1회 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돌이키기 이전에 했던 것은 악행, 이전의 행위, 폭력, 우상 및 죄이다. 이렇게 회심이라는 개념은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여 어떠한 의식도 대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의지를 요구하시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포함한다는 사실을 적극 강조한다.

요시오카 노보루의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이라는 책은 소수언어를 다룬 작품이다. 웨일스어(Welsh) ‘히라이스(Hiraeth)’를 다룬 챕터를 보자. 히라이스는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히라이스의 뜻풀이를 들려준 뒤 이런 말을 덧붙인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누군가가 말했지요. 이제는 닿을 수 없다는 그리움이 애달프기에 그토록 잊기 힘들어지는 걸까요.” 악에 빠진 우리의 힘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키시는 것이 은혜다.

 

2. 회심은 회개를 품고 있다

요한은 백성들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물세례를 받으라고 했다. 회개에 해당하는 ‘metavnoia’(메타노이아)란 말은 구약적인 개념으로서 죄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섬을 뜻한다. 회심은 종종 전도의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자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행위다. 그 과정에서 특정 시점에, 하나님께서 은혜로써 신자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에게 오는 세대의 생명을 주신다(롬 6:23; 고후 5:17). ‘돌아가다’라는 단어는 ‘바퀴가 돌아가다’에서처럼 물리적 움직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회사가 돌아가다’에서처럼 추상적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시-’와 함께 쓰여 ‘죽다’를 높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아마도 이승의 모퉁이를 돌아 저승으로 간다고 여긴 듯하다. 이처럼 여러 뜻으로 쓰이는 말은, 대개 그 뜻 사이에 유사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 의미에서 추상적 의미가 파생되고, 은유적인 쓰임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선지자들이 말하는 돌이킴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 즉 하나님 뜻에 맞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인간적 도움과 모든 거짓 신들을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셋째, 불경한 모든 것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 번째 측면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은 예레미야 특히 에스겔이다. 에스겔은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고 촉구한다. ‘떠나고’에 해당하는 슈브는 ‘돌아오다, 회복하다’를 뜻한다. 회개란 개념은 야훼께로 돌아섬을 뜻한다.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강림하실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즉 회심할 것이라고 외쳤다.

 

3.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돌이킴

구약에서 회심은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이신 야훼에게로 가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우는 나면서부터 언약 공동체에 회원들인 까닭에, 회심은 언약에 불충실했던 기간이 지난 후 전심으로 ‘너희 하나님 야훼’에게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까닭에 이스라엘에 있어서 회심은 본질적으로 배교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신약성경은 회심을 기술함에 있어서 구약성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회심이란 개념은 야훼(הוהי)께로 돌아섬을 뜻한다. 회심은 회개보다 그뜻을 더 잘 표현한 말이다. 회개란 우선적으로 죄로 인한 슬픔을 뜻한다. 요한과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같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웠느니라.’ 회개하라에 해당하는 ‘metanoevw’(메타노에오)는 마음의 변화를 시사한다. 히브리어 개념은 전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을 가리킨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참된 회심에는 회개와 믿음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참으로 회심하면, 즉 회개하고 믿게 되면 죄를 용서받게 된다(3:19; 26:18).

신약의 교훈에 따르면, 회심과 거듭남의 행위는 대체로 세례로써 상징된다. 세례는 회심에 이르는 과정들뿐 아니라 거듭남의 정확한 시점까지도 표시한다. 그러므로 회심과 거듭남은 하나님의 측면뿐 아니라 인간의 측면까지도 포함한다. 인간의 측면에는 영적인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하는 회개, 즉 마음의 변화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다(막 1:15). 하지만 회심의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반응함으로써 출발한다.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속해 있는 권한을 찬탈한 로마 제국의 통치 밑에서 신음하며, 하나님의 도래를 열망했으나, 하나님께서 침묵을 지키신다고 생각하던 백성들에게 갑자기 나타나,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고 부르짖는 한 선지자가 나타났다. 그가 요한이다. 회심한 사람은 세례 때 하나님께 받은 신앙을 고백함으로써(엡 2:8; 골 2:12) 사죄(행 2:38 상)와 그리스도와 연합됨(롬 6:3-5)과 성령의 선물과 새롭게 하심(딛 3:5)과 새 생명을 살 수 있는 은혜(롬 6:4, 22)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요한이 직접 밝힌 바와 같이,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를 그리스도의 공적인 출현을 예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이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외치고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위한 길을 닦아 놓았다. 요한의 태도는 예언자적인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제 역사하셔서 그의 왕적인 권세를 보이실 것이며, 사람들은 그러한 위대한 사건에 대비해서 회개하여야 하며, 회개의 표시로서 세례를 받을 것을 전파하였다. 그는 이것을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예언자적 권위로 수행하였다. 회심한 그리스도인은 회심한 자답게 살라는 분부를 받으며, 세례를 받아 거듭난 사람은 그 지위에 함축된 의미들을 끊임없이 구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더욱이 회심은 원래 개인적인 경험인데 반면에, 회심한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에 속하며, 협력하여 자기들의 신앙을 견지하고 봉사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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