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병 목사(화천 간동교회 담임목사)

‘이해’를 나타내는 understand 라는 말은 ‘아래에 선다’라는 말입니다. 그 말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나 태도를 받아들이고 긍정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세와 마음을 갖춘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 마음과 이 자세가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기 위해서 우리가 항상 가져야 할 자세는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먼저 우리는 모든 것을 자기가 이해하려고 합니다. 자기가 살던 방식대로 이해하려하고, 자기가 받아들였던 경험에 비추어 이해하려합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거짓말이라고 하고,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100%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항상 전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해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모든 말씀에 우리가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조명해 주셔야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를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신비입니다.

설교를 하는 설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자가 100%를 행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행하지 못하는 나 자신, 믿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행하고 싶어 하는 열망과 열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해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선생이고, 내가 부모이지만, 항상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든 것을 금방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 된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에 쉽게 화를 냅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부모의 말을 지키는 것은 아이들 나름대로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부모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정말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전적으로 부모를 신뢰하는 모습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이 걱정이 없는 이유는 부모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 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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