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희목사의 바이블 시선】 (5)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크리스천 가이드> <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교회가 세상의 복음인 이유

왜 복음이 기쁜소식인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온 순간부터 우리는 한 몸이다. 복음은 계층패러다임에서 수평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거룩한 제사장이다. 이것을 만인제사장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정신이며 곧 복음이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기쁜 소식을 준다. 여기에 누구도 제외된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교회 가면 우리는 복음을 만난다. 그래서 교회 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교회는 그렇지 않는 모습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어쩌면 교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일 수 있다. 무지는 죄를 낳고 나중에는 사망에 이른다. 내가 이해한 복음과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깊게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도 차별이 없고 동등한 수평관계다. 오직 수직관계는 주님이고 그분만이 높아지는 것이 복음의 삶이다. 이것을 세상 속에서 이루는 유일한 공동체가 교회다. 교회 조직은 세상의 조직과 다르다. 교회는 몸된 조직으로 유기적 공동체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평신도는 계급이 아닌 섬기는 한 몸에 속한 지체로서 직분이다.

우리가 흔히 구분 짓는 작은교회, 중형교회, 대형교회도 엄밀히 보면 그런 구분은 성경 속에 없다. 그리스도의 한 몸에 연결된 지체로, 자기 역할에서 크고 작음을 말할 뿐이다. 각각의 은사에 따라 자기 일을 충실히 하는 서로 섬기는 종의 직책이요 교회의 역할이다. 서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하나 된 존재다. 우리가 교회를 말할 때는 직분이든지, 교회의 크기든지 이것은 서로 복종하고 서로 교제하고 서로 사랑하는 몸과 지체 관계를 의미한다. 혹시라도 세상적인 관점으로 물량적, 숫자나 인본주의로 평가하고 서로 비교하거나 차등 혹은 분리하는 순간 교회는 복음의 힘을 잃게 된다.

소유의 교회냐? 존재의 교회냐?

역사적으로 교회가 복음 정체성을 잃어버릴 때 부패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도 이런 면에서 예외가 아니다. 교회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모두가 지체로 연결된 한 몸이다. 누구교회, 내교회. 우리교회가 없다. 소유로서 교회가 아닌 존재로서 교회가 복음을 가진 교회 모습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한 교회만 존재한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 모습은 우리처럼 사적인 여러 개가 분리된 개 교회 개념이 아니다. 한 지역을 통 털어 교회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면 빌립보교회, 골로새 교회, 갈라디아 교회, 에베소 교회, 로마교회는 한 거대한 지역의 교회를 말한다. 에베소 교회는 누구 한 사람이 소유할 수 없는 존재로서 교회다. 하나님 나라 측면에서 교회를 의미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남한 전체가 합쳐서 에베소 교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로 말하면 5만교회가 한 몸이 되어 한국교회가 된다. 그래야 복음의 능력이 교회를 통해서 세상 속에 드러난다,

성경 어디에서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적인 〇〇교회 이름을 붙힌 교회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실제로 5만교회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 된 교회가 한국교회다. 그래서 서로 어느 교회를 가도 남의 교회가 아닌 내 교회요 내 몸이요 아울러 그리스도의 몸이다. 1만, 5만성도라 할 때 그것은 누구 교회가 독점할 수 없다. 어느 한 교회 속으로 성도가 오는 것을 막거나 가둘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어느 교회에 가든지 행복한 이유가 되고 그곳에서 내가 곧 교회임을 확신하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어느 교회에 잠시 방문해도 마음이 내 집처럼 편안 하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누구도 무너지게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신비로운 공동체다. 어느 한교회가 무어진다고 한국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느 한 지체교회가 잘못하여 상처가 나면 함께 지체된 교회가 아픈 상처를 감당하여 새살이 돋게 한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는 하늘과 땅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충만이다.

우리는 모두가 몸 된 한국교회인데...

모두가 한국교회요 모두가 개척교회요 모두가 중대형 교회다. 우리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닌 각각의 역할과 사명에 따라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 이제부터 한국교회의 잘못은 나의 잘못이고, 나의 잘못은 곧 한국교회의 잘못이다. 모두가 같이 기도해야 할 공동기도 제목이며 같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리스도가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한 몸의 생각으로.. 이것은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 교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개교회주의가 심각하다.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모습은 대부분 개교회주의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왜 그럴까? 그 속에는 존재보다 소유에 집중하고 그리스도보다 자기 욕심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 소유의 욕심이 지금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주범이다. 종종 우리 교회의 일을 다른 교회들이 간섭하지 말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맞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은사가 교회마다 다르기에 역할을 함부로 간섭할 수 없지만, 주님의 말씀에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권면을 하고 바르게 서도록 도와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만약 그것을 거부하고 잘못이라고 말하면 혹시 다른 복음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1908년 당시 소래교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이 아닌 모두 내 몸이며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 물론 사랑과 온유로 해야 하고 상대 지체를 헤치는 것이 아닌 모두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배려의 자세로 공동체 유익과 덕을 세우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세상에 보여주는 복음의 모습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 된 하나님의 나라 교회를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교회됨의 핵심이 있다. 다시 한국교회 부흥을 소망한다면 복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복음으로 새롭게 할 수 있는지를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에게 여쭈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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