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

어느 개인이나 집단 이라도 거짓을 공공연하게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거짓을 싫어할까요? 일상에서는 그 누구도 거짓에 대하여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영국에서 거짓말 대회가 열렸는데,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 사람이 일등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거짓이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임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거짓은 무질서를 만들어 내고 무질서는 예측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그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고 따라서 모든 사람은 불안 가운데 당면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 거짓의 악순환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거짓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아무도 행복할 수가 없고 서로를 불신하고 경계하며 미워하고 증오하게 됩니다. 거짓은 필연적으로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짓을 싫어합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그 자신과 그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보편적 믿음이 있습니다. 이 같은 이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이들이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J. 벤덤, J.S. 밀 같은 이들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모든 개인이 정직하게 행동해야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행복해야하는가, 불행 하면 어떤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고 착하고 정직해야 하는 도덕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착하고 정직한 것은 도덕적 가치 이지만 행복은 도덕적 가치가 아닙니다. 이를테면 비도덕적 가치를 위해 도덕적 행동을 해야 합니다.

도덕적 가치가 비도덕적 가치의 수단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사람이 임마누엘 칸트입니다. 칸트는 행복하기 위해 정직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정직한 것이 옳기 때문에 정직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칸트의 의무주의입니다. 의무주의에 의하면 인간은 직관적으로 무엇이 악하고 선한가를 안다고 합니다. 그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나쁜데, 거짓말을 하면 그 사회가 불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자체가 나쁘기 때문에 하면 안 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그의 정언명령입니다. 그의 여러 정언명령 중 중요한 한 가지를 소개하면, “너 자신의 준칙(準則)이 보편적(普遍的)인 자연법칙(自然法則)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때 그대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준칙이란 개인의 행동원칙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필요하면 거짓말을 한다.”라는 준칙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준칙이 보편적인 자연 법칙이 되어도 좋다면 필요할 때 얼마든지 거짓 말 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칸트의 생각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하였습니다. “나는 필요하면 거짓말을 하는데 세상 모든 사람이 필요할 때 거짓말을 해도 괜찮으냐?”라고 했을 때 이에 동의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른 모든 사람은 정직해야 합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 모두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됩니다. 도둑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둑질 하는 도둑의 입장에서는 다른 모든 사람은 도둑질을 하면 안 됩니다. 모두가 도둑질 해도 된다고 하면 내가 애써 훔쳐다 놓은 것을 다른 사람이 또 훔쳐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칸트의 도덕 의무론은 도덕이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되는 앞선 이들의 주장보다는 한층 발전한 이론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명확합니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아니고 의무 때문만도 아닙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정직해야 그 자신과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된다는 이론도 일리가 있고, 도덕은 수단이 아니라 의무라는 칸트의 주장도 나름 기여하는 바가 있지만 성경은 그런 가르침들과 차원을 달리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절대 전제로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거짓말에 속지도 말아야 하고 거짓된 말과 생각과 정책과 선동을 분별하고 멀리하고 미워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인들의 거짓말로 인하여 사회가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3일 서울 광화문 집회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조국 법무부 장관을 규탄하였습니다. 조국을 규탄하는 주요 이유는 불법과 거짓말 때문입니다. 검찰이 혐의를 잡고 조사하고 있는 그의 불법과 거짓은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검찰이 그의 불법과 거짓을 조사하고 있는데 청와대와 여당과 혐의를 받고 있는 당사자와 그를 지지하는 몇몇 지식인들이 검찰을 개혁해야한다면서 검찰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검찰을 개혁한다면 개혁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부는 검찰을 개혁하여야 한다면서 개혁되어야 할 방법으로 검찰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노골적으로 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과 학계와 종교계와 온 사회가 가치 질서의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거짓말도 용납 되어서는 안 되지만 몇몇 지식인들의 상식을 무시한 조국 지지 발언들은 지식인들에게 걸었던 일반 국민들의 일말의 기대 마져 무너져 내리게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져 있는 한완상 씨가 지난 1일 CBS 라디오에 출연하여 조국 법무부 장관의 문제에 대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조국을 조사하고 있는 검찰과 조국 사퇴를 부르짖는 국민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리고 검찰청 앞에 모인 친문지지 집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촛불 세력이 건재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의 교수와 부총리까지 지내신, 학자이고 정치 사회의 원로인 그가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치 안보 경제 등의 총체적 위기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다면 조국 사태를 일벌백계로 조사하도록 검찰을 독려하는 것이 마땅할 텐데 검찰을 비난하고 조국을 두둔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간음 현장에서 잡아 온 여인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으냐고 묻는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조국을 지지하고 검찰을 비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렇게 적용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도 적지 않습니다. 한완상 씨는 지금까지 조국씨가 얼마나 많은 돌을 던져 온 사람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 것입니다. 조국의 그 수많은 돌팔매질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던 그가 조국을 역성들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사랑으로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데 이 말씀이 종종 오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렇게 적용하는 것은 성경을 빙자하여 성경을 왜곡하는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한 여자를 간음 현장에서 체포하여 예수님께 끌고 와, 모세의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여기 유대교 지도자들이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인데, 서기관이란 율법을 지키기 위한 모든 규칙을 창안한 자들이고, 바리새인이란 그 규칙들을 지키기 위하여 평생의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끌고 온 여인은 간음의 현장에서 덜미를 잡혔습니다. 남녀가 같은 방에 은밀히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송사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던칸 데렛(J. Duncan M. Derrett)의 설명에 의하면 증인들은 이 여인과 남자가 교합하는 중에 목격하고 체포 하였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유대인의 정리(定理)에 의하면 사전 경고가 없이는 처벌을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건의 정황에는 저들이 그 여인을 송사 하면서 그러한 정리를 그 여인에게 공정하게 적용하였다는 그 어떤 암시도 없습니다. 그 여인이 범행 중에 잡혔다면 엄격한 율법에 비추어 볼 때 그 여인의 간음 행위의 상대 남자도 이 자리에 잡혀 왔어야 합니다. 본문의 저자 요한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정의를 지키고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걸려 넘어지게 하려고 덫을 놓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자는 놓아 보내고 여자만 끌고 와서 많은 군중 앞에 그녀의 신분과 처참한 몰골을 노출 시켰다는 것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지나칩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율법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여인을 간음 현장에서 예수님 앞에까지 끌고 온 모든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사실은,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여자 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끌고 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나아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걸려 돌을 던지려 했던 군중들 모두가 범죄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에게 벌을 주는 것이 불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조치는 결국 범법자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불법으로 법이 집행되는 것을 막으신 것이지 죄인을 죄가 없다고 하거나 무조건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저지른 행위가 죄라는 것을 아셨고 또한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건을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와 교회 시대에는 구약의 신정정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초림 이후로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새로운 하나님 나라 원리에 의해 작동되고 통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형식과 조직을 갖지 않지만 교회는 형식과 조직을 갖추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원리를 따라 세워져 가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이 주신 권세로 바른 신앙고백을 통하여 사람을 받아들이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자를 출교합니다. 그 외에 교회가 죄를 지은 자에게 여러 단계의 제제를 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게는 물리적 강제력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출교를 했는데도 교회를 나오는 자를 교회는 강제로 막을 수 있는 물리력을 주님으로부터 받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체포하거나 구속하거나 물리적 폭력으로 벌을 줄 수 없습니다. 매우 중요한 사실은 교회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중세 교회는 천년에 걸쳐 이러한 가르침을 오해하여 수많은 사람을 처형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범법자에게 합법적인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권세는 국가에게 주었습니다. 교회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자에게 더 이상 돌을 던질 수 있는 권세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간음하는 여인을 끌고 와서 사형을 집행 하려는 자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러한 자를 책망하고 회개를 권고하고 죄인이 회개하면 용서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출교까지는 할 수 있어도 구속하거나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습니다. 

교인 중 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고 회개한다면 용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하는 용서가 국가법의 처벌까지 면제 받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용서하지만 국가 법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말씀은 죄를 지은 자라도 무조건 용서 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교회의 권징과 용서, 그리고 엄격한 사회법의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할 것까지를 명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 같은 가르침을 잘 이해하여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 13:1-4)

뉴욕퀸즈제일교회 황상하 목사

 

『 암흑기의 중세 여행 』

사람들은 중세를 암흑기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계관시인(桂冠詩人)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라고 합니다. 암흑기라는 말을 중세의 별칭처럼 사용하는 것이 중세에게는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암흑기라는 말은 르네상스 이후의 관점에서 붙여졌습니다. 르네상스 이전 시대를 통칭해서 암흑기라고 부르지만 중세시대 중에서도 어두운 면만을 강조할 경우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즉 유럽문화의 전성 시절을 이끌던 로마제국이 멸망함과 동시에 야만족들의 침략과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와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서유럽은 암흑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이것을 가리켜 중세 암흑기라는 것으로 통칭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세는 곧 기독교 역사입니다. 로마제국은 망했지만 기독교가 망한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가 망하지는 않았지만 중세가 암흑기로 불러지는 것은 곧 기독교의 불명예입니다. 중세를 일컬어 암흑기라고 하는 것이 자칫 지나치게 오용되거나 남용되는 일이 있다는 학계의 자성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암흑기라는 말은 개인이나 국가나 역사의 한 시기 가운데 불가피하게 겪었던 비극적이고 불행한 기간을 가리키는데 사용됩니다. 1536년 제네바 인들이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만든 주화에는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Post Tenebras Lux)라고 새겨 넣었습니다. 결국 교회사적으로도 중세는 어둠의 시기였고, 종교 개혁 시대는 빛이라는 역사관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중세를 암흑기라고 부르게 됨으로서 천년의 중세를 어두운 창고에 처박아 넣고 문을 잠가버린 꼴이 되어버려 중세에 묻혀 있는 보석까지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시대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너무나 어둡기 때문에 암흑기라고 불리는 중세를 여행해 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중세를 공부하려고 할 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중세로 볼 것인가 부터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중세”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469년의 교황청 도서관 사서였던 지오반니 안드레아 (Giovanni Andrea)입니다. 그는 르네상스의 색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사는 시대가 과거와 다름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역사적 통찰은 17세기에 이르러 독일 지식인들에 의해 고대, 중세, 근대라는 시대 구분을 하게 하였습니다. 자크 르 코프 (Jacques Le Goff)는 중세의  4-9 세기까지를 중세 초기로, 10세기에서 14세기를 중세 중기로,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를 중세 말기로 보는 넓은 연대 구분을 하였습니다. 코플스톤 (Frederick Copleston)은 철학사의 관점에서 교부 시대를 중세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정치적으로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기점으로 5세기를, 교회 사적으로는 마지막 교부이자 첫 번째 교황인 그레고리 1세를 기점으로 6세기를 중세의 출발점으로 보았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는 중세를 476년에서 1492년까지라고 못 박기도 하였습니다.

일반적 역사는 주로 로마의 멸망에서 르네상스 시대까지를, 곧 5세기에서 15세기까지의 1,000 년을 중세로 봅니다. 그러나 중세는 기독교의 역사이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에서 국교로 인정받은 313년, 즉 4세기를 시작으로 종교 개혁이 일어난 16세기까지로 봅니다. 결국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중세는 그 절반에 해당하는 천년이라는 긴 역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를 단순히 암흑기였다는 말로 특징 지워 버리기엔 그 역사가 너무나도 유구합니다. 

현대는 중세의 자궁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현대가 중세로부터 나왔으면서도 중세를 캄캄한 창고에 처박아 넣어놓고 문을 굳게 잠가 놓아서 중세를 잘 모르고 중세를 잘 모르기 때문에 현대를 잘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온갖 오해와 진부함이 중세를 억누르고 있어서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대작 「중세」의 서문에서 중세는 무엇이다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중세는 무엇 무엇이 아니라고 열거하는 편이 낫다고 하면서襬가지의 중세는 아니다.’라는 논리를 전개하였습니다. 심지어 자크 르 코프는 중세의 천 년을 암흑이 아닌 “위대한 천 년”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필립 샤프 (Philip Schaff)는 중세를 평가하면서, 중세의 빛은 성경 말씀이 발산하는 태양 빛 이라기보다는 교회의 전승이라는 별빛과 달빛이었다고 하였고, 이 빛이 야만성과 이교성의 암혹을 뚫고 들어가 어둠을 몰아냈고, 위대한 종교 개혁의 광명한 빛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무지한 민족을 비추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평가하여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중세는 그 천 년의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미스터리와 혼돈, 무지와 맹신, 그리고 광기로 얼룩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인들 중에는 어린 아이처럼 조금의 의심도 없이 신앙을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습니다. 신앙이 모든 학문과 정치와 문화까지 지배하였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주도하였고, 대학을 설립하며, 엄청난 학문과 건축과 예술과 문화를 이루었습니다. 기독교 세계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하나의 언어로 된 성경을 읽고, 하나의 언어로 예배드리며, 모든 사람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교회를 통해 살았던 천년의 세월이 중세입니다. 중세는 바로 기독교 신앙의 시대이자, 기독교 문명의 시대였습니다. 천 년 동안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로 된 성경과 교회 음악을 사용했습니다. 건축은 고딕 양식으로 통일 돼 있었고, 지붕은 붉은 색으로 통일 되어 있었습니다. 마을 중심 높은 곳에는 교회당이 있었고, 도시 중심에는 대성당의 첨탑이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교회당의 종소리에 따라 사람들은 일어나고 잠들었으며, 교회당 묘지는 천국과 영생을 의미했습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마녀의 존재를 믿었고, 심지어 연옥이라는 가상의 사망 후 세계를 수용했고, 마리아를 비롯한 성자들의 중재를 믿고 미사라는 개혁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예배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수사들이 야만족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개인적 회심뿐 아니라 한 도시와 한 민족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집단적 회심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설교나 교리 교육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세례 시 신앙고백의 뜻조차도 모른 채 라틴어로 된 그것을 암기했습니다. 켈트족과 튜턴족, 슬라브족이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이들은 기독교와 함께 문자, 학문, 농경, 법, 예술도 받아 들였습니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까지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과 예술도 기독교 신앙에 동의했고, 심지어 황제마저도 기독교 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중세는 정치, 경제, 사회가 봉건제라는 튼튼한 사회 구조 속에서 숨 막히는 지경의 경직성과 또한 해학성을 지녔습니다. 중세 인들을 세 부류, 즉 성직자, 기사, 농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직자는 기도하는 사람이고, 기사는 싸우는 사람, 농노는 일하는 사람이었으며, 이는 곧 세 개의 신분이자 계급이었습니다. 중세를 떠받치는 두 기둥 같은 그룹이 기사와 학자였습니다. 박사에게는  기사의 작위와 같은 특혜를 부여했습니다. 기사가 가장 중세적인 이미지를 지닌 집단이었습니다. 당시 기사단은 사제와 귀족을 보호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천상의 천사 기사단을 지상에 복제 해 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상 기사단은 금욕과 절제, 이타심, 충성심 외에도 로맨스와 결투정신, 기사 서약과 맹세 같은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기사단은 예루살렘 기사단, 스페인 기사단, 신전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이었는데, 이는 수도자들의 종단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후 셀 수 없이 많은 기사단들이 생겨났습니다. 황금 양털 기사단, 성모 기사단, 황금 방패 기사단, 심지어 고슴도치 기사단, 심지어 사냥개 기사단까지 등장 했습니다. 기사 계급은 사제와 농노 계급 사이에서 경직된 중세 사회를 해학과 상상으로 이끌며 종교와 문학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중세를 특징짓는 두 세력인 교황과 황제는 언제나 지배권을 두고 긴장과 갈등과 불화와 투쟁의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1075년 교황 그레고리 7세는 교황 칙서를 통해 “로마 교황 만이 보편적 교황으로 불려야 마땅하다”라고 했고, 이후에 교황은 성 베드로의 대리자,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교황의 수위권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이런 권력의 갈등은 영적 권력과 세속적 권력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이 샤를마뉴(Charlemagne) 시대에 와서는 황제-교황이라는 제왕적 사제직으로 발전했고, 1077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오 7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성으로 가서 관용을 구걸한 저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중세 교회는 언어의 다양성을 원죄의 결과들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중세 문명의 동일성, 나아가 유럽 문명의 통일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방법으로 라틴어를 고집했습니다. 라틴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자는 야만인으로 짐승 취급을 했습니다. 당시 라틴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특권을 가진 집단에 속하였음을 의미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라틴어만을 사용했고. 모든 나라와 민족은 라틴어로 번역 된 불가타 성경만을 사용했으며, 라틴어로만 예배를 드리고, 모든 종교 음악은 라틴어로 불렀습니다. 다중 언어 사용은 타락의 결과이기 때문에 단일 언어로 라틴어만을 사용하도록 통제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중세를 형성 한 주요 요소로 수도원과 대학을 들 수 있습니다. 중세 인들은 천상과 지상이 혼재 한 시대를 살면서 세속을 경멸하여 세속으로부터의 도피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러한 경향이 수도원 제도를 만들었고, 불행하게도 대표적인 도미니크 교단과 프란체스코 교단은 민중에게 위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수도사들이 교황청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 때 수도원은 지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장 타락한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수사들의 수도복은 유럽의 의복 문화에, 수도원의 식단은 유럽의 보편적인 음식문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수도원은 수도원 학교와 주교좌성당학교를 운영했는데, 이것이 학교와 교육의 발전을 촉진했고 마침내 이탈리아에 볼로냐 대학과 파리에 파리대학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중세 대학은 3학(문법학, 논리학, 수사학)과 4과(산술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의 자유학예에서 의학, 법학, 신학의 상위 학부가 설립 됐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철학의 집대성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중세의 역사에서 누구나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은 십자군 원정과 도시와 상업의 발전입니다. 기독교는 외적 팽창을 시도하면서 십자군 원정을 시작하지만 유대인 대량 학살과 약탈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또한 상업의 부활과 함께 중세 도시가 탄생했고, 농촌에서는 토지 소유의 한 형태인 장원이 생겨났습니다. 더욱 끔찍한 것은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종교 재판을 통해 마녀 사냥에 미쳤고, 중세 인들은 여행을 즐기는가하면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중세에는 성경보다는 전승에 의존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중세는 성경이 닫혀서 어두웠습니다. 성경을 소유하지 못하고 읽지 못하고 배울 수 없는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보여 준 시대가 중세입니다. 그 결과 중세의 교회는 계시 의존적 종교가 아니라 인문학의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중세 인들은 성경의 종교가 아닌 상상의 종교를 믿었고, 그 결과 중세는 판타지로 넘쳐났습니다. 중세는 소름이 돋을 섬뜩 할 정도의 단일성과 통일성을 강조하였는가하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 통제 받지 않고 드러나는 해학성을 보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여행에 대한 동경과, 세속으로부터의 도피, 로맨스와 에로스가 혼재했습니다. 성경의 언어, 강단의 언어, 종교의 언어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기호에 불과하였습니다. 

중세는 온갖 상상과 무지와 왜곡이 판을 치기도 하였지만 또 한 편 성경 시대와 종교개혁시대와 더불어 신학과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이 하나님 중심이었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시대이고, 거짓과 왜곡을 걸러내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중세에서 부정적인 것들을 잘 가려내면 아주 귀한 보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세는 이 시대에 비하면 보화가 감추어진 밭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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