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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칼럼】 헛된 이야기가 아닌 좋은 소식이 아름답다【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27) 신화(神話)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D.Min.),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허구 같지만 힘이 있는 이야기, 신화

히아신스, 아네모네, 수선화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이다. 신화에 의해 비극이 암시되어 있다. 단군신화가 그러하듯이 신화는 고대인의 사유와 표상을 반영하고 있다. 히아신스를 보자. 아폴로 신이 원반을 던지다가 실수로 친구 히아신스를 죽게 만든다. 아름다운 꽃이 되어 영원히 살게 한다. 역사가 은폐되고 신과 인간의 관계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죽은 히아신스가 어떻게 꽃이 될 수 있는가. 판타지다. 신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적인 존재들의 행위를 ‘흉내 내고’ 시공간에 제약된 자신으로부터 탈출하여 엑스타시를 경험하라는 격려다. 인간은 신화를 통해 그들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을 상상한다.

 

신화에 해당하는 ‘mythos’(뮈도스)는 신약성경에 5회 나온다. 뮈도스는 목회서신과 베드로후서에서만 나타나며, 늘 비판하는 의미에 쓰인다. 뮈도스는 ‘말하는’ ‘단어’ ‘이야기’다. 사실에 대한 이야기, 전설 같은 허구적인 이야기, 혹은 신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좁은 의미에서 신화를 뜻한다. 만화나 신화의 공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은 사실이나 논리가 아니다. 이야기의 힘이다. 헛된 이야기요 꾸며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 가운데 제우스는 익숙한데 헤르메스는 그렇지 않다. 금도끼를 들고 나와 이 도끼가 네 도끼냐 묻는 산신령의 정체는 사실 헤르메스다. 나무꾼을 시험에 들게 한 산신령이 사실 신들의 전령으로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헤르메스였다. 제우스는 갈라디아에서 가장 널리 숭배되는 신이었다. 다른 신들과 자주 연관되었다. 루스드라 지역에는 헤르메스가 동행하고 있는 제우스를 보여주는 조각이나 비명들이 있다.

 

1.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한 신들 이야기

바울이 나면서 앉은뱅이를 치료하는 기적을 보고 루스드라 사람들이 놀라고 흥분하였다. 나면서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순간적으로 완치되는 기적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신들의 임재의 은총을 입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고 소리질렀다. 바나바를 그들은 헬라 Pantheon(다신전)의 주신인 제우스라고 불렀다. 이는 그의 풍채가 더 당당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은 바나바보다 활기 있어 보이고 ‘그 중에 말하는 자’였으므로 헤르메스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메시지가 실제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방 세계의 특질을 나타낸다. 이는 복음 전파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앞의 도시에서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적대감이 계속해서 바울에게로 이어진다.

제우스는 그리스 신전의 주신이었고, 헤르메스는 제우스와 Maia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신들의 전령(herald)이었다. 바울이 소식을 전하는 신인 헤르메스로 연상 된 것은 주가 주된 연설자였기 때문이다. 제우스의 명을 따라 헤르메스가 흙을 가지고 첫 번째 여자인 판도라를 만든 신이다. 아테나는 은빛 의상을 입히고 직물을 짜는 솜씨를 선사하였다. 헤파이스토스는 금빛 왕관을 주었다. 아프로디테는 은총을 부어 주었고 동시에 그녀의 사지를 약하게 만드는 욕망과 걱정도 주었다. 신들은 그녀를 그리스어로 ‘모든(pan) 선물(dora)을 지닌 여자’라는 뜻을 지닌 ‘판도라(Pandora)’라고 불렀다. 후대의 위경인 ‘바울과 테클라 행전’은 바울에 대해 더 정확한 묘사를 담고 있다. “작은 키에 대머리, 굽은 다리, 건강한 체구, 일자 눈썹, 약간 흰 코, 상냥함으로 가득 찬 사내, 그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제 그는 천사의 얼굴을 가졌다.”

열광적인 루스드라인들의 반응은 이해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몇 가지 그 지방에 대한 배경 지식은 그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신화에 대한 이해다. 신화는 겉은 비록 신들의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허황함에도 왠지 사실처럼 느껴지면서 큰 교훈과 지혜를 주는 것이 신화의 매력이다. 이처럼 고대부터 인류의 상상을 자극하는 ‘이야기’인 신화가 발달했던 때문인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주변으로 범위를 넓혀간 유럽의 문학은 일찍부터 이야기가 있는 소설류가 발달하였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보다 약 반세기 전에 살았던 라틴 시인 Ovid(B.C.43- A.D.17)는 그의 ‘메타모르포제(Metamor phoses)’에서 오래된 그 지방의 전설을 서술한 바 있다. 그 전설은 남부 갈라디아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루스드라 지방에는 옛적에 신들이, 특히 헬라인들에게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알려져 있는 두 신이, 인간의 형상을 입고 내려온 적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래동화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이로써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사람들의 열렬한 반응을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루스드라 시민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행한 기적을 보았을 때 그들은 신들이 그들에게 다시 왔다고 생각하였다. Ovid의 문헌적 증거와는 별도로, 루스드라 근처에서 두 개의 비문과 하나의 돌이 된 제단이 발견되었다. 이는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함께 그 지역의 수호신으로서 숭배를 받았음을 나타낸다.

로마 제국 내의 도시 문화는 획일적으로 Greco-Roman이었던 반면 전원 지방은 지역의 언어와 풍습을 보존했다. 루스드라가 그러했다. 루스드라 근방의 Sedasa에서 발견된 비문들은 루스드라의 이런 풍습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Calder 교수는 3세기 중반의 것으로 보이는 비문 두 개를 발견하였다. 그중의 하나는 ‘루가오니아 사람이 헤르메스의 신상을 제우스에게 바쳤다’는 기록을 담고 있다며, 다른 비문에는 ‘제우스의 제사장들’이라는 표현을 싣고 있다. 바울의 루스드라 선교가 실재하였음을 방증하고 있다.

부르기아 지방의 전설은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고대의 그 도시를 방문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헬라인들은 신화가 진리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신화를 진리의 그림자로 간주하며, Platon은 그 자체가 불확실하고 거짓된 로고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용어를 진리의 반대개념으로 간주된다.

 

2. 믿음의 눈으로 기적을 보다

최고의 신 Jupiter, 즉 헬라에서는 제우스와 그의 아들 Mercury, 헬라에서는 헤르메스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브루기아(Phrygia)의 산지를 방문했다. 누가는 본문에서 두 신을 제우스아 헤르메스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나 무리들이 이러한 명칭으로 호칭했는지 아니면 제우스와 헤르메스에 맞먹는 아나톨리아의 토속신의 명칭을 사용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인간으로 변장한 두 신은 잠행을 하면서 사람들의 집에 손님으로 묵으려 했으나 수없이 여러 번 거절을 당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은 짚과 습지에 사는 갈대로 지붕을 엮은 초라한 오두막에 묶어 갈 수 있게 되었다. 노부부 Philemon과 Baucis가 그들의 가난한 살림을 털어 잔치를 베풀어 그들을 환대하였다. 환대는 시민에 대한 시민의 예의에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예의’라는 확장된 차원을 얹어주는 것이 ‘환대’다. 시빌리티가 ‘시민들’ 사이의 차이를 존중한다면 환대는 모든 분할과 분리의 체계를 넘어 ‘사람들’ 사이의 공통성을 존중한다. “우리는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 그 공통성이다.

1926년 Calder 교수와 W. H. Buckler 교수가 루스드라 근방에서 공동 발굴한 제사용 석단은 이 지방에 제우스와 헤르메스에 대한 연합 숭배 전통이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석단은 ‘기도를 들어 주는 신’, 즉 제우스와 헤르메스에게 봉헌되어 있다.

‘환대(hospitality)’의 어원은 그리스어 ‘filoxeniva’(필록세니아) ‘낯선 이들의 사랑과 환대를 보여주려는 의지’를 의미한다. 로마서와 히브리서에만 나온다. 교회의 감독이 갖추어야 할 자격 중 한가지였다.(과거 우리 조상이 그러했듯,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환대가 법이었으며, 손님을 환대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환대’는 인간 문명화의 핵심가치다. 인간은 환대를 통해 관계를 맺고 사회를 발전시켰다. 옛사람들은 나그네나 이방인을 외면하지 않았다. 인류 최초의 환대는 아브라함이 방문객들을 극진히 영접한 일이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접대한 일이었지만, 당시 아브라함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방문객들을 환대했다. 낯선 사람은 히브리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그것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그네 되었던 경험이 있는 까닭이다. 크세니아는 그리스인들의 ‘환대원칙’이다.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주인은 손님이 원하는 모든 것, 특히 음식, 목욕, 숙소를 제공하고 떠날 때는 선물을 준다. 둘째, 손님은 주인에게 공손하게 존경을 표시한다. 손님도 주인에게 그 집을 떠날 때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빌레몬과 바우시스 노부부는 아브라함이 부지 중에 천사를 환대한 것처럼 부지중에 신들을 대접하여 그 환대에 보답을 받았다. 신화는 복음의 진리를 위협한다. 도덕적 결함이 있다(딤전 4:7; 딛 1:16).

Jupiter와 헤르메스 신은 자신들을 환대한 노부부에게 두 가지 선물과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 선물 첫째는 그들이 사는 오두막을 황금의 지붕과 대리석 기둥의 신전으로 변화시켰다. 두 번째는 그들이 노부부를 신전의 제사장과 여제사장으로 임명한다. 노부부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두 사람의 마지막 바람은 죽을 때도 똑같은 시간에 함께 세상을 뜨는 것이었다. 그들은 소원대로 필레몬은 참나무로, 바우시스는 피나무로 변해 서로 나뭇가지를 맞댄 채 언덕에 서 있게 됐다. 참나무와 피나무가 사이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연리목(連理木)의 유래를 담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토막이다. 그렇다면 푸대접한 산골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들은 그들의 집을 홍수로 멸하였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에 대한 이 전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만일 신들이 그들의 지역을 다시 방문한다면 환대를 거부하고 멸망을 당한 브루기아 사람들과 같은 운명을 당하지 않으려는 강박감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야단법석을 하며 두 사람에게 제사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승희 목사  titeiosl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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