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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최원영목사칼럼] 하나님에 대해서 흔들리지 말라하나님은 자녀들의 믿음을 보신다
  • 발행인 최원영목사
  • 승인 2019.10.31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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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담임, 본헤럴드대표, 춘천 변화산기도원 협력원장,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등

베드로서는 소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편지이다. 소아시아 지역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흩어진 나그네”로 규정하고 있다. 흩어진 나그네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환경은 환란과 곤고한 연약한 공동체이다. 

나그네들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소망은 구원이다. 베드로전서 1장 5절 말씀을 보면,  표준새번역으로 읽으면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때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는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고, 그분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하고 계십니다.”(벧전 1:5).

5절 문장에는 구원, 믿음, 보호 라는 단어가 나온다. 문장의 구조를 보면, 구원은 믿음과 보호와 연결되어 있다.  좀더 문장으로 해석해보면, 마지막 주님의 날에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다. 또한 마지막 때, 구원의 완성을 위해, 당신의 자녀들을 주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구원과 믿음은 같은 등식이다. 구원과 믿음은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동전의 앞 뒤 면과 같다.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견고하게 지켜갈때 마지막날에 구원의 퍼즐이 완성된다.

성도들은 이미 구원 받았다(엡2:8). 그러나 구원의 완성은 예수님의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진다. 현재는 최종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최종 구원을 얻기 위해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의 믿음을 보신다.

거듭난 성도들은 구원이 완성되는 날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믿음이라는 주제는 너무도 소중한 기독교의 절대적인 가치이다. 교회는 오직 믿음이라는 단어로 서로 연결된다.

거듭나는 것도,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구원받는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방식이다.

말씀도 믿어야 한다. 말씀을 믿을 때 내안에 생명의 진리가 살아 움직이게 된다. 믿지 아니하면 아무런 능력도 의미도 가치도 생명도 없다. 믿을 때 말씀이 생령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신앙생활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 사람이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죽은자를 살리셨다. 바람과 바다도 말씀으로 순종시켰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승천하셨다. 다시 재림의 주님으로 오신다. 그분이 우리를 마지막 날 심판하실 재판장이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이성으로 믿어지는 것인가? 이것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인가? 신앙은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걸어가고, 믿음으로 결론을 맺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 마음에 믿게 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이다.

죽음 후에 어떻게 될것인가? 가끔 생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성경중에 묵상하는 말씀이 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준비되어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땅에 살면서 믿음으로 헌신하며 살다가 주님나라에 가서 안식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쁨이 되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가는 새로운 출발이다.

새하늘과 새땅, 곧 하나님이 직접 손으로 지으신 영원한 천국, 하늘나라가 있다. 하늘 나라는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흐른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생명수를 먹고,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이다. 그 땅에는 저주가 없다.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밤도 없고 등불과 햋빛이 쓸 데 없다. 하나님 자신 비추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씀이 믿어진다. 그래서 행복하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말씀을 믿을때 놀라운 기쁨의 에너지를 얻는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경이 좋아서, 성경읽기 모임을 만들어서, 하루에 2시간 성경 통독을 하면서 4년의 시간을 행복하게 지냈다. 그때가 개인적으로 보면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이다. 인생의 모든 근거지를 다 잃어버리고 청바지 하나 티 하나를 매일 입고 다녔다. 살이 심하게 빠져, 맞는 옷이 없었다. 청바지와 티를 입고 다녔다. 그런데 외적인 것이 나에게는 창피함이나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말씀을 읽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기 때문이다. 말씀이 믿어지고, 말씀이 달고, 말씀이 너무 좋으니까? 겉 사람이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본푸른교회에서 개척 목회를 하면서, 항상 전후반기를 40일 기도회를 하는데, 1시간은 성경을 통독하고, 1시간은 부르짖어 기도회를 했다. 말씀 읽는 것이 좋아서 늘 시간을 정해 놓고 드렸다. 말씀을 읽으면 그냥 좋다. 이해가 안 되는 문장도 많았다. 그래도 말씀을 읽으면 행복했다. 성경을 매일 한 장 씩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성경 말씀을 쓸 때마다 마음이 정결해지고, 차분해지고 나를 목욕하는 것 같아서 너무도 행복하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한다. "하나님을 믿으라". 이 말이 너무도 좋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

아브라람의 믿음을 보셨다. 하나님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받치라고 했다. 아브라함이 살던 브엘세바에서 모리아산 까지는 사흘 길이다. 아브라함에게 3일은 인생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마음속에는 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번제라는 것은 각을 떠서 장작단을 쌓고 그 위에서 태워서 드리는 제사 제도이다. 당시 이방인들이 자신의 신들에게 충성하는 행위가 자식을 불에 태워 드리는 것이었다. 그 끔찍한 번제로 이삭을 드리라고 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이유이다. 제단을 쌓고, 나무를 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해서 제단 나무에 올려놓았다. 아브라함이 칼을 잡고 이삭을 잡으려는 찰라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말라 그에게 아무일도 하지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이 사건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언약의 말씀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점이 좋았다."

둘째는 아들 이삭이다. 아버지가 자기를 묶었고, 칼로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이삭도 순종했다. 믿음의 아버지로부터 믿음의 아들로 연결되는 족보가 너무도 귀하다. 나는 이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나온다. 나도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소원의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자녀들이 오직 믿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이 된다면, 부모가 이 땅에서 누릴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이 선물을 자녀들로부터 받고 싶다.

믿음이란 기독교 신앙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가치이다. 과거에는 믿으면 된다고 했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담겼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들은 영적인 세계보다는 보이는 지식과 이성과 과학적 학문의 우상을 더 믿는다. 포스트모던 사상과 종교 다원주의의 논리에 맞서 기독교의 가치를 세우는 연구는 매우 소중하다. 기독교를 타종교와 비교하고  변증을 통해, 예수가 왜 유일한 대안인가를 제시하는 것은 현대 지식인들을 설득하는데 요긴한 학문이다. 그러나 변증학으로 기독교의 모든 영적 진리를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변증학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변증학은 몽학선생으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변증학으로만 끝난다면 또 하나의 지적 가설만 세울 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다. 무조건 믿기만 하라고 한다면 기독교를 '무식한 종교'라고 비난하고 비웃는다. 학문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덜 떠러진 종교라고 하대를 할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있다.

지금까지 복음은 성숙한 이론적 바탕을 구비하고 전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믿음의 확신과 언약의 말씀을 신뢰했고, 또한 영적 체험으로 기독교는 지금까지 능력의 종교로 세상을 구원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잊지 말라,  '변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말씀을 믿을 때 한 순간에 위대한 영적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 기쁨은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성경이 다 믿어진다면 당신의 인생에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오늘 페북을 보다가 이성배 목사님이 이런 글을 남겼다. "좌파적 글을 무조건 믿는 목사님들과 우파적 글을 무조건 믿는 목사님들이 성경을 그 정도로 믿으면 아마도 세계가 복음화 되어 예수님께서 재림하셨을 거다". 이 글에 어떤 분은 답글을 남겼는데, "성경보다 가짜 글을 더 믿는 분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성경을 믿으라. 그리하면 세상의 요동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마음의 중심을 말씀으로 잡아야 한다.

발행인 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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