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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그니칼럼】아내
김종근 목사,

             아   내 

내게 있어 아내는 어떤 존재인가?.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내가 보는 아내의 이 모습은 내 시야에 늘상 보여지는 일상이다.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한가로운 일요일,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을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한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벌레씹은 얼굴을하고 쳐다 본다. 
나라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라고 정해놓은 법정 공휴일 날, 달랑 마누라 혼자 놔두고 집을나오는 싹아지라고는 코딱지 만큼도 없는 아주 덜떨어진 망나니다.
이런 망나니 주제에 자기에게 지금 비춰진 지 아내 모습은,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 놓은 모양새가, 영락 없이 내가 젤로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그래도 머슴아라고 보는 눈은 있어 각고, 아이고 지랄하네 그런 너는?

"지금 나가면 또 언제 들어 올 건데?"
"나가봐야 알지."
입이 한발이나 튀어나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술과 술친구가 마누라보다 그리 좋으면, 
먼 지랄났다고 결혼을 했냐고! 이 놈팽아!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닥거리는 동안, 아내로부터 몇 번이나 전화가 왔다.
끝내 받지 않고 뻐팅기다가 그 주제에 성질머리는 있어각고, 종내는 배터리를 아예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어,친구들이랑 술 한잔..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져각고~(나쁜 자식!)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손가락을 혼자 땄는지
(에라이 이 못된 놈!)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었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는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면서,
검사를 받아보자는 내 권유를 한사코 뿌리치고, 병원문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출근을 하려는데, 아내가 이번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엄마집으로 갈 테니깐."
큰소리 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첨으로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냐.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그래도 난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랬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놀란 토끼 눈으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의사가 지금 뭐라고 쪼아리고 있는 거야, 뭐 뭐 내 아내가 시방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앞으로 삼 개월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고?
지금, 뚤어진 입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해마로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없이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머리속이 텅빈 것처럼 앞이 노랗게보였다.
집까지 오는 동안 마누라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입이 자물쇠로 잠긴양
벌어지질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상상해 봤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반복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델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 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걸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에게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락했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입니다. 
아내를 떠나보낸 절절한 심정이 
우리 가슴을 아리고 쓰리도록 
파고듭니다. 

아내와 남편...
보통 인연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잖아요?
곁에있는 이 순간! 
바로 지금!
아무리 사랑해도 찰나 처럼 지나가는 
이 순간들!
아우다웅 하며 
그 금쪽같은 시간 
낭비하지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 더 사랑하고 
더 아끼는 마음으로,
서로 잘 해 주시길! 

11월 9일, 
이번 주말 주일에도,  
주님의 은총이,
당신 가슴속에  가득하시길!!

늙어서 가는 길.

늙어가면서 가는 이 길은, 

아직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아주 생경하여 두렵고 떨리는 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무엇하나 처음 아닌 길이 없지만, 늙어가면서 가는 이 길은, 
몸 따로 맘 따로 여서, 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세월에 끌리어 가면서도, 지금 가는 
이 길이 마냥 헷갈리기만 합니다.
가면 갈수록 늙어가는 길이라, 
때론 두렵고 불안해서, 가다가도 멍하니 가는 길을 바라 보곤 합니다.

가다가 하나 둘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볼때, 가슴이 시리도록 외로울때도 있고,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아스라히 떠오를때면, 부대끼며 함께 지내온 날들이 눈물나게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때 고향땅에서의 길은, 눈에 익은 길 이었지만, 열아홉때의 서울 길은, 
설렘과 호기심의 길이었는데,
이제 칠십 중반에 홀로가야하는 이 길은, 너무나 힘에 버겁습니다.

언제부턴가 다리가 흔들리고, 
눈도 흐려지면서 인생의 밤도 깊어지고, 
먼 길을 가는 노객의 수심도 깊어 가는 황혼의 여정에서,
먼저 가버린 애틋한 친구들이, 
이리도 그리울 줄 정녕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 보면, 이 길을 먼저 간 어릴때 동아리 친구들을, 혹여 만날까 싶어, 
두리번 거리며 찾아볼때도 있답니다.
남은 길이 걸어 온 길보다 짧다는 것을 알기에, 한발 한발 쉬엄쉬엄 걸어가며, 
다시는 되돌아 갈수 없는 일회자의 길을 걸으며, 깊은 사색에 잠겨봅니다.

아무리 아쉬워도 발자욱 뒤에 새겨지는 
뒷 모습만은, 황혼의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해지는 황혼 길을 걸어갑니다.
꽃보다 고운 단풍처럼,
해돋는 아침보다 더 경이로운 
저녁 노을처럼, 첨이자 마침 길을,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이방나라 애굽 땅에서 430년을 살며, 
한 민족을 이루었던 이스라엘민족은, 
같은 셈 계열의 왕조가 물러가고, 
요셉을 모르는 새 왕조가 들어서자, 하루아침에 이스라엘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로 바뀌어,
마침내 사백여년동안 몸담았던 
애굽땅을 떠나, 
약속의 가나안땅을 지척에 두고, 
무려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은 애굽일까요? 아님 광야일까요?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애굽과 같은 이 세상이 좋으면 애굽에 머물고, 약속의 가나안이 좋으면 광야로 나와, 새 사람됨의 연단을 받아야지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핑게대지 말고, 꾸물대지 말고, 거듭나 새사람 되는,
연단의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전교에서 1~2위를 다투는 학생이,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는데, 수학 한 문제 에서 딱 걸려 끙끙거리고 있자, 
옆자리 동아리가 답을주며 적으라고한다.
결국 이 학생은 그 유혹에 걸려 답을 컨닝합니다.
이를 본 담임선생이 무척 상심해 있을때,
답안지를 들고 온 학생이 선생님께 고백합니다.
"선생님! 시험의 유혹에 지고 말았어요.
제 시험지 영점으로 처리해 주세요."
오늘도 인생의 시험장에 서 있는 당신!,
당신 인생의 답안지는 과연 몇점인가!.

간혹 소나무가 많은 산을 가 보면, 유독 솔방울이 많이 달려있는 소나무를 볼때가
종종 있지요.
한갖 미물에 불과한 소나무도 자기몸에 병이 들면 죽을 때를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소나무는 종족 본능의 힘을 다 쏟아, 그해 봄 솔방울을 많이 맺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소나무도, 죽을 때를 알고 죽음을 준비하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가, 가야 할 종착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게
아닌가!
모든게 열매를 맺고 각자의 자리, 
있어야 할 자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삼라만상의 나아 가고 물러섬의 
섭리를 알자!

 

김종근 목사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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