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일아침 새벽에, 8년전에 입소하셨던, 남숙자 할머니가 소천하셨다.
1916년생이시니까, 104세에 돌아가신 거다. 2012년에 요양원에 오셔서, 천수를 누리시고 가신 것이다. 이제 곧, 순서를 기다리고 계신 어르신이 오셔서, 그 빈 자리를 채우시리라! 이렇게 계절이 가고 오듯, 있던 이가 가면, 다른이가 그 자리를 또 찾아 온다.
어르신들을 섬긴지 20여년 동안, 이렇게 내손을 거쳐서 가신 분이 몇몇분이신지,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다. 남숙자 어르신을 환송방으로 안치한 후, 고인을 위해 임종예배와 찬송을 드리던 중, 임종소식을 들은 유가족들이 요양원에 도착하였다. 안숙자 큰 아드님 연세가 여든 둘이시란다. 고령사회가 실감이 난다.
이처럼 고령 인구는 늘어가는데, 효 의식은 날이 갈수록 반 비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면서도 가슴이 아려온다. '孝'자는 '老'와 '子'를 합한 글이다. 늙은 어버이를 젊은 아들이 모시고 사는 글자다. 그런데 이젠 아들도 팔십 넘은 할배가 되었으니 효(孝)의 개념이 무색해진다.
며칠 후면 고인의 유해는 산야에 흐트러 지리라! 그분과의 7년여 동안, 엄니처럼 얼굴을 대하며 지내왔는데, 이제 이 땅에선 영영한 이별이 되겠구나 생각하니, 갈림 길에 선 이 순간에서, 새삼 인생무상 을 느낀다. 불가에선 이를 "회자정리 생자 필멸(會者定理 生者必滅)"이라 했던가! 오늘이 어제 되듯, 가고 옴이 이러하다. 여늬 때 같으면 그날이 그날이 겠지만, 이렇게 산자와 죽은자가 갈리는 날에는, 어제와 오늘이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난다.
문득 우리 장목사가 얼마전에 들려준, 멧세지가 생각 난다. 서울 소망교회 어느 권사님이, 자녀들도 결혼시키고 몇해전 남편도 여의고 해서,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가장 보람된 삶일까" 고민하다가, 문득 섬광처럼 떠오른 것이, '호스피스 라이센스' 였단다. 그녀는 이미 육십후반의 고령임에도, 이를 마다 하지 않고, 결국 호스피스 자격을 취득 하자, 곧장 서울 모 암병원 호스피스로 들어가서, 약 3개월 정도의 시한부로 살고있는, 암환자 할아버지를 만나, 정말 혼신을 다하여 섬겼단다.
그 권사님은 그 암환자에게 다가가, "내가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줄께요 "하고, 진실로 먼저 간 남편에게 못다한 마음을 다 쏟아 간호했단다. 그렇게 3개월이 다 되어 갈 무렵, 시한부로 살고 계시는 암환자 할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내가 구십평생을 살아 오면서, 이렇게 진심어린 사랑을 받아 보기는 처음이라면서, 나와 결혼해달라"고 청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눈물로 기도한 후, 할아버의 청혼을 받아 들여, 병원에서 조촐하게 식을 올리고,변호사 입회 하에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되자,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간절히 눈물로 감사 기도를 한 후, 선임한 변호사를 불러 남긴 유언의 말이, "난 그동안 9억이든 통장 주인을 찾고 있었다"며, "이 돈을 어디에 기부할까 기도 하다가, 이제 이 통장의 주인을 찾게 되었다" 면서, 선임 변호사를 통하여, 그날 할머니 통장으로 이체를 마쳤단다.
그리고 일주일 후 할아버지는 할머니품에 안긴 채 소천하셨다고 한다. 불시에 9억을 받아든 이 호스피스 권사님은, 이 돈 전부를 ㅇㅇㅇ단체에 기증했단다. 얼마나 가슴 짜릿한 아름다운 얘기인가!
오늘 아침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남숙자할머니의 임종을 알렸지만, 몇사람 외엔 환송실에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었다. 저들 가슴속에 8년동안 할머니의 존재감이 이렇게도 야박할수 있을까? 몇년전 김순길 요양보호사는, 자기가 케어하던 어르신이 소천하자, 꺼억꺼억 울며 "어르신 제가 허물이 많아서 어르신께 잘못한 것많았어요, 서운한 마음 다 비우고 가세요"하며, 울던 모습이 문득 떠오른건 왤까?
이 인생의 무대에서 사는 날 동안, 살아 가면서, 왜 사는지 삶의 의미를 불어 넣어 가면서, 살다 가자! 섬김도, 사랑도,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와, 보람을 만들어 가면서 살자! 일을 해도 그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하자! 오늘 어르신을 뵙기 전, 집에서 있었던 안 좋은 감정은, 요양원 휴게실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 보고, 다 지워 버리고, 오늘을 여는 새 날에, 보름 달 처럼 활짝 웃으며, 해맑은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뵙자!.
김종근 목사. 고려대, 총신대학원 졸업, 광운대 정보복지대학원 졸업, 서울 용산소망교회 경남 하동교회 부산 영도교회 시무. 현재, 행복이 가득한 교회(예장합동) 행복이 가득한 집(요양원) 시무 |
아 내 내게 있어 아내는 어떤 존재인가?.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지금 나가면 또 언제 들어 올 건데?"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하려는데, 아내가 이번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 보다.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걸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연입니다. 아내와 남편... 11월 9일, |
늙어서 가는 길.
늙어가면서 가는 이 길은,
아직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아주 생경하여 두렵고 떨리는 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무엇하나 처음 아닌 길이 없지만, 늙어가면서 가는 이 길은,
몸 따로 맘 따로 여서, 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세월에 끌리어 가면서도, 지금 가는
이 길이 마냥 헷갈리기만 합니다.
가면 갈수록 늙어가는 길이라,
때론 두렵고 불안해서, 가다가도 멍하니 가는 길을 바라 보곤 합니다.
가다가 하나 둘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을 볼때, 가슴이 시리도록 외로울때도 있고,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아스라히 떠오를때면, 부대끼며 함께 지내온 날들이 눈물나게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때 고향땅에서의 길은, 눈에 익은 길 이었지만, 열아홉때의 서울 길은,
설렘과 호기심의 길이었는데,
이제 칠십 중반에 홀로가야하는 이 길은, 너무나 힘에 버겁습니다.
언제부턴가 다리가 흔들리고,
눈도 흐려지면서 인생의 밤도 깊어지고,
먼 길을 가는 노객의 수심도 깊어 가는 황혼의 여정에서,
먼저 가버린 애틋한 친구들이,
이리도 그리울 줄 정녕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 보면, 이 길을 먼저 간 어릴때 동아리 친구들을, 혹여 만날까 싶어,
두리번 거리며 찾아볼때도 있답니다.
남은 길이 걸어 온 길보다 짧다는 것을 알기에, 한발 한발 쉬엄쉬엄 걸어가며,
다시는 되돌아 갈수 없는 일회자의 길을 걸으며, 깊은 사색에 잠겨봅니다.
아무리 아쉬워도 발자욱 뒤에 새겨지는
뒷 모습만은, 황혼의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해지는 황혼 길을 걸어갑니다.
꽃보다 고운 단풍처럼,
해돋는 아침보다 더 경이로운
저녁 노을처럼, 첨이자 마침 길을,
아름답게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이방나라 애굽 땅에서 430년을 살며,
한 민족을 이루었던 이스라엘민족은,
같은 셈 계열의 왕조가 물러가고,
요셉을 모르는 새 왕조가 들어서자, 하루아침에 이스라엘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로 바뀌어,
마침내 사백여년동안 몸담았던
애굽땅을 떠나,
약속의 가나안땅을 지척에 두고,
무려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은 애굽일까요? 아님 광야일까요?
소속이 분명해야 합니다.
애굽과 같은 이 세상이 좋으면 애굽에 머물고, 약속의 가나안이 좋으면 광야로 나와, 새 사람됨의 연단을 받아야지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핑게대지 말고, 꾸물대지 말고, 거듭나 새사람 되는,
연단의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전교에서 1~2위를 다투는 학생이,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는데, 수학 한 문제 에서 딱 걸려 끙끙거리고 있자,
옆자리 동아리가 답을주며 적으라고한다.
결국 이 학생은 그 유혹에 걸려 답을 컨닝합니다.
이를 본 담임선생이 무척 상심해 있을때,
답안지를 들고 온 학생이 선생님께 고백합니다.
"선생님! 시험의 유혹에 지고 말았어요.
제 시험지 영점으로 처리해 주세요."
오늘도 인생의 시험장에 서 있는 당신!,
당신 인생의 답안지는 과연 몇점인가!.
간혹 소나무가 많은 산을 가 보면, 유독 솔방울이 많이 달려있는 소나무를 볼때가
종종 있지요.
한갖 미물에 불과한 소나무도 자기몸에 병이 들면 죽을 때를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소나무는 종족 본능의 힘을 다 쏟아, 그해 봄 솔방울을 많이 맺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소나무도, 죽을 때를 알고 죽음을 준비하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가, 가야 할 종착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게
아닌가!
모든게 열매를 맺고 각자의 자리,
있어야 할 자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삼라만상의 나아 가고 물러섬의
섭리를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