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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목사 연속 칼럼】 이런 기도 (1)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기구(崎嶇)한 현실에 올리는 간절한 기구(祈求)

문장에 가능한 일인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은 줄 알지만 오늘은 글의 성격상 “나”가 많이 들어감을 독자들께서도 혜량해주시기 바란다. 이것은 주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다. 기도문은 아닐지라도 내 마음의 솔직한 흐름을 글자로 엮어보았다. 현실을 떠나 이상만을 추구할 수 없기에 주변 상황을 둘러보며 무릎 꿇어 아픈 현안과 씨름해본다. 이것은 다른 그 누구의 기도가 아니라 가장 나다운 나의 기도이기에 마뜩찮은 표현이어도 읽는 이들의 이해를 감히 구한다. 하소연일 수 있고 푸념일 수도 있지만 기구(祈求)하는 정성만은 담았다. 기도의 성격을 떠나도 기도의 정신만은 단어와 문장에 철심처럼 박혀있다. 내 마음의 정직한 흐름을 따라 사랑하는 주님의 포근한 임재를 따스하게 느끼면서 감히 여쭙는다.

<편집자 주 - ▶기구(崎嶇) : 순탄하지 못하고 탈 많은 상황 ▶기구(祈求) : 원하는 것을 빌어 구함>

 

주님의 기운으로 충만히 채우소서

오늘 유난히도 주님이 그립다. 할 수 있다면 하루만이라도 주님 한분을 들숨으로 들이켜고 싶다. 내가 내쉴 숨이란 더럽고 추한 죄의 공기뿐일 테니 주님의 신선함으로 내 영혼을 온전히 새롭게 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허파를 통해 각종 장기와 신경 세포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뇌수에까지 스며들어 온 몸을 주님의 기운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주님은 영이시기에, 영은 바람이기에 그렇게 들어와 내 몸과 마음을 채우면 영혼은 좀 쉴 수 있으려나? 나의 영혼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이 심한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이다. 심신이 쉴 때에도 경성령(警醒令)이 내려진 영혼은 쉼을 갖지 못하고 내면의 불꽃을 간검(看檢)하느라 여념이 없다. 아, 가엾은 나의 영혼이여! 평생 안식년은커녕 안식일 한 번 챙기지 못한 영혼의 노고에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 진정 “I am so sorry!”다.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더욱 충만하기를 원함은 내 모든 마음의 생각과 몸의 지체들이 작은 분쟁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임을 느끼고 싶어서다. 나의 마음과 생각이 따로 놀고 육신까지 애를 먹일 때 나의 영혼은 늘 괴로움에 떤다. 험산을 목적하고 오를 때 몸과 마음이 따로 놀거나 정상 정복에 사로잡힌 영에 반기를 들어 심신이 합세하여 딴죽을 걸면 정상 직전에라도 하산하게 된다. 영은 아직 길이 먼 줄 알지만 피곤에 지친 육체가 심술을 부리거나 중간자 역할을 하는 마음이 삐걱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늘 영을 따라주는 것은 아니다. 항상 경성함이란 영혼의 문제만은 아니다. 몸도 마음도 함께 깨어 있어야 온전히 깨어 있음이다. 모두가 하나의 형체를 이루어 깨어 있음으로 속사람이 평정을 유지한 적이 얼마였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주인인체 하는 종들로 통감합니다

“주님! 많이 힘들고 바쁘시지요? 돌봐야 할 영혼들이 그 얼마이며 도와 달라, 살려 달라는 아우성이 그칠 날 없으니 어떻게 견디시나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기도 응답의 일자와 시간을 확인하시며 응답의 규모와 내용을 점검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리라고 생각됩니다. 웬만한 것들이야 천사들에게 맡기고 천사장들을 통해 지시 사항만 확인하셔도 되겠지만 자녀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직접 살피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십니다. 신부의 애달픈 하소연을 외면할 리 없으시니 말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훨씬 능가하는 울부짖는 간구에 마음이 많이 아프시리라 여겨집니다. 그것은 주님이시기에 혼자 져야 하고 혼자서만 해 낼 수 있는 일들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벌레 같은 이 종이라 할지라도 안타까운 심정을 토해냅니다.

천상에서 치러야 할 여러 중요 업무들만 해도 벅차실 것입니다. 천상에 상소할 지상의 일거리들을 좀 줄여보기 위해 종들을 세우셨는데 종들로 인해 마음 쓰셔야 할 부분이 더 많아졌으니 종 된 자로서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종이 주인인체 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선 뭐라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연대책임을 져야 하니 결국 저의 허물이기도 하구요. 도대체 종이 종 같아야지요. 종이 주인의 권세를 힘입고 처음에는 조심스레 눈치껏 한두 번 하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온종일 주인 행세를 합니다. 아합의 겸손한 행보와는 달리 교만이 하늘 꼭대기에 닿았습니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 손사래를 치지만 거들먹거리는 영혼의 모습이 그들의 언사와 표정과 태도에 실려 있습니다.

 

종답지 않은 자들을 줄여주소서

저들이 누구입니까? 핍절한 환경과 지지부진한 목회 현실에 울먹이며 밤새워 주님을 구하던 이가 아닙니까? 작은 성취에도 기뻐하고 가난한 우정에 감격하던 소자 중의 소자가 아닙니까? 박한 식물에도 눈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성만찬을 대하듯 감사함으로 나누던 그들입니다. 한 그릇의 생수로 목마른 자신의 목을 축이기보다 주변의 기갈자들에게 먼저 건네던 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상해졌습니다.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월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그들의 변질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제 조금 나아졌다고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눈빛이 달라지며 말본새가 달라졌습니다. 소위 노는 물이 달라졌습니다. 주님, 우스워 웃는 저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어이없어 웃는 씁쓸한 웃음이지만 제 눈가에 어린 긍휼의 눈물자국을 보아 제 마음의 진심을 받아주십시오!

그래서 감히 청컨대 자칭, 타칭 종이라 하는 이들의 숫자를 팍 줄여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주님이 정하셨던 원래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여 줄이시면 도울 일이야 줄어들겠지만 신경 쓰실 일도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종답지 않은 종들 때문에 주인 되신 주님이 힘겨워하실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요! 주님의 일을 제대로 수행하시려면 솔직히 그렇게 하시는 편히 훨씬 낫고 일 처리도 빠를 것입니다. 주님께서 잡무로부터 좀 홀가분해지시려면 지상에 있는 종들의 숫자를 어떤 방식으로라도 줄이시라 간청드림은 궁여지책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상에서 올리는 안건들 중에 종들과 관련된 난제가 수두룩한 것은 주님께서 먼저 아실 것입니다. 종들이 많아진 만큼 그들로 인한 문제도 급증했으니 종들을 급감시킬 것을 긴급 제안 드리는 것입니다. 제거 대상 중에서 우선 거짓 종, 나태한 종, 주인 행세하는 종들을 줄이시기만 해도 좀 나으실 것입니다.

거짓 종들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주님께서 먼저 아실 것입니다. 이들 때문에 종들 사이에 간격이 생기고 형제보다 가까운 동료들이 원수가 되어 갈라지게 됩니다. 영을 모신 인간이라 그런지 이들 세계에서 한 번 원수가 되면 세상의 어떤 철천지원수보다 더 지독해집니다. 적군을 겨누었던 총부리가 아군을 향하고 원거리 저격용 총대를 설치하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말씀을 인용하고 성령을 읊조리며 사명감으로 행합니다. 뜻을 달리 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심지어 쓰러진 아군에게 달려가 확인사살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오인사격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뒤틀린 영으로 인해 살인귀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들이 당할 화를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명철 목사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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