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50) - 아모스(2)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나비)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암7:14-15)

 

평범한 농부에서 하나님께 붙잡힌 선지자로

아모스는 직업적 예언자 학교에서 훈련 받은 사람이 아니라 농부(보케르)로서 뽕나무(쉬크밈)을 배양하는 사람이었다. 아모스에 대한 배경은 아모스와 아마샤의 극적인 만남이 기록된 아모스 7:10-15절의 산문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벧엘 성전의 대 제사장 아마샤는 여로보암 1세의 왕정 성소에서 있으며 북 왕국의 국가 성소 중 하나인 곳에서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유다 출신으로서 평범한 농부와 뽕나무 재배자로서 양 떼를 따르다가 하나님께 붙잡혀 선지자가 된 사람이었다. 아모스가 남유다 출신이라는 것은 남북이 정치적으로 갈라져 있어도 두 나라는 본래 하나로 공동적인 종교 전통을 가진 한 언약 백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예언하지 말고 네 고향으로 가라고 말한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견자(호제)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나 떡을 먹으며 거기서나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암7:11-12).

아마샤가 아모스를 선견자(호제)라 부르는 것은 환상가(visionary)로 보며 고향 유다에 가서 점을 쳐서 그 종교적 행위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빵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예언 신탁의 돈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모스는 본문에서 하나님께 붙잡힌 선지자(나비)라고 말하며 자신은 선지자도 선지자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이는 선지자(나비)라는 용어는 북쪽에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서 예언 공동체(선지자들의 아들들)에서 자라고 교육 받은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예언자 학교나 길드의 출신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남쪽의 예언자 의미도 아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부르셔서 된 선지자, 여호와의 영이 임한 특별한 평신도 선지자였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것이 가능한가? 신학교를 나오지 않고 세습 목사가 아닌 자가 강단에서 주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아모스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이끌려 예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암3:8).

 

북과 남을 향해 외치는 소리

아모스는 주로 벧엘에서 설교하고 가능한 사마리아에서 예언을 한다.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암4:1). 아모스가 주로 북이스라엘에서 예언을 하지만 그는 남쪽 출신으로서 두 왕국을 동시에 마음에 놓고 예언을 한다. “화 있을찐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 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암6:1-2). 이는 오늘 우리가 남한에 살고 있어도 북한에 마음을 두고 한민족사의 숙원인 통일을 바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아모스는 출애굽의 전통과 전승을 통해 온 이스라엘의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암3:1-2).

아모스는 상징적 행동을 하던 예언 형태에서 벗어나 문서 예언자로서 다른 이방 예언 신탁(1:3-2:16)과 환상의 반복(암7:1-9;8:1-3)을 통해 예언 신탁의 결론을 형성하도록 하며 예언서 전체의 절정을 구성한다. 3인칭 예언자 이야기는 아모스서에 유일하게 예외적인 부분이다(암7:10-17). 또한 송영(암4:13; 5:8; 9:5이하)등은 바빌론 포로기나 포로기 이후에 구성된 것이다(쉬미트).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암4:13).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가 외치는 아모스서의 메시지는 오늘도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암2:6). 오늘 우리들의 서너 가지 죄가 무엇인가? 철저하게 회개라는 길 밖에 없지 않은가.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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