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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선】 지금 우리의 설교. 과연 이대로 좋은가?【이대희 목사의 바이블시선】 - (11)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크리스천 가이드> <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일시적이고 휘발성이 강한 설교 홍수 시대

크리스천 신앙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하나를 들라면 그것은 설교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교회를 갈 때 설교를 들으러 간다. 지금은 시간이 바빠서 주중에 모이기 더 어려워 졌다. 오직 주일 설교 하나로 신앙을 유지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설교의 비중은 크다. 그러다 보니 거의 설교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유튜브와 SNS를 통한 설교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갈수록 설교로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경향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나 설교를 듣는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은 정작 설교를 많이 듣지만 설교를 듣는 시간과 노력만큼 변화가 아주 약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갈수록 변화 보다는 고착화되기 쉽다. 사실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은 대부분 이 딜레마에 빠졌다. 그래서 다양한 설교의 스킬과 노하우를 찾아 적용하지만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한다.

막상 설교 들을 때는 감동과 은혜가 되었는데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 무슨 설교를 했는지 내용과 설교제목까지 생각이 안 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왜 그럴까? 이것이 생활 속에서 설교가 적용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격적인 교제가 없이 스피커를 통해 일방적으로 들려지는 대중적인 설교의 효과는 일시적이고 휘발성이 강하다. 이제는 설교가 마치 한편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되고 있다. 일방적으로 듣는 강의와 설교는 학습효과로 보면 가장 낮은 5%에 속한 방법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가능하지만 그전에 우리의 설교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에 적합한지를 점검 할 필요가 있다.

 

설교의 원형을 찾으라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교의 출발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순서다. 설교는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설교는 과연 성경적인 전통에서 유래된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유래되었는가? 설교의 출발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든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 처음의 지점을 찾는 것이 순서다. 근원을 모르면 아무리 방법을 고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설교의 근원 찾기 여행은 갱신의 첫 과제다. 사실 설교의 점검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동안 교회는 설교를 통해서 성장해 왔고 거의 모든 목회자의 주된 일이 설교이기에 이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구도 이 문제 제기하는 것을 꺼려한다. 필자도 30년 넘게 설교를 해온 상황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설교로 부흥을 이루었던 유럽과 영국교회를 한국교회가 따라가지 않기 위한 한 가지 소망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요한계시록 2장 5~7절)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제일 먼저 나오는 설교 원형을 찾는 것이 순서다. 그것은 신명기다. 신명기는 모세의 설교집이다. 과거의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오늘의 차세대인 자녀들에게 전하는 일인데 이것은 앞으로 미래의 예언까지 포함되었다. 신명기의 모세의 설교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설교이다. 이것을 살펴보면 성경적 헤브라이즘 설교의 원형이 그려진다.

 

언어유희의 달변가와 말씀 능력의 설교자

우리는 그동안 설교를 성경에서 모델을 찾기 보다는 그리스 로마의 헬레니즘에서 설교의 모형을 차용했다. 헬라철학의 소피스트는 세상 설교자의 원형이다. 소피스트는 궤변론자들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내용 보다는 그것을 설득하기 이한 수사학이 발전되고 표현하고 설득하는 일에 집중하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발전 시켜 최고의 설교학을 만들었다. 달변가인 히틀러는 헬레니즘의 소피스트 설교를 가장 잘 적용한 사람이다. 잘못된 생각을 그의 연설로 사람을 사로잡아 진실인 것처럼 믿게 하고 온 국민을 세계 전쟁에 참여하게 했다. 놀라운 능력을 가진 최고의 설교자(?)였다. 하지만 그처럼 역사 속에 불행한 설교자도 없다. 거짓된 것을 사실처럼 믿게 만든 거짓 설교자였기 때문이다. 중세교회의 면죄부를 설교로 전파했던 요한 테첼 신부는 탁월한 달변가였다. 하지만 탁월한 언어력을 잘못 사용하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예다.

대부분 세상의 일들을 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 세상은 말로 속고 속이는 세계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가 될수 있다. 모두 말로 이루어진 일이다. 현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처럼 말로 현혹하는 설교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사람일수록 말에 능하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능력이 있다. 거짓을 진실처럼 믿게 한다. 사실 보다 그것을 설명하는 말에 너무 능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는 진리와 비진리와 싸움이다. 마지막이 올수록 말씀을 변조한 허탄한 이야기로 사람과 교회를 유혹할 것이다. 최초 인간을 향한 뱀의 미혹도 말씀을 혼합한 허탄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말과 입을 조심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더러운 세 영이 있다. 그것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선지자의 입이다. 그들은 귀신의 영이다 (계16:13-14) 모두 공통점은 입이다, 바울은 사역을 마무리 하면서 디모데에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기 보다는 귀가 가리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딤후4:3-4)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와 목회자는 말로 청중을 설득하고 사로잡는 그런 달변가를 꿈꾸면 안 된다. 말씀 보다 말의 기술에 능하면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면 자칫 우리도 거짓 설교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설교는 무엇일까?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설교의 원형을 찾아가는 갱신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당연시 여겨졌던 설교학의 근원적인 개혁을 의미하기에 혹자는 많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문제를 갱신하지 않으면 교회의 위기는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진실을 깊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갈1:10)

 

 

이대희 목사  smd6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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