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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더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해"믿음의 결과는 '영혼구원'이다
  • 발행인 최원영목사
  • 승인 2019.11.2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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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804

이 땅에 왜 교회가 필요한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영혼구원이다.

선교사들이 왜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문화적 수준도 맞지 않고, 생활수준도 다르고, 피부도 다르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며, 문명도 발달하지 않는 곳에 가서 선교를 하는가?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이다. 영혼구원을 위해서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춘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태국에서 20년 이상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는 친구 D00선교사가 있다. 수요일에 만났다. 점심식사를 나누기 위해서이다. 선교지에서 교회개척을 하다보니 늘어난 것은 카드빚만 있고, 매년 선교비는 계속 줄어 기본 생활도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한국에서 3명의 자녀들이 원룸 방한칸에서 힘겹게 아르바이트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종교비자도 어렵고, 사업비자는 돈이 있어야 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생활대책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자녀들도 좋은 직장을 잡기에는 현실의 문턱이 너무 높았다. 어찌해야할지 몰라 불안한 마음이 역력히 보였다.

점심을 사드리고, 커피숍에서 차도 마시고, 저녁에는 "본죽"을 좋아해서 '죽'을 대접했다. 내 차안에 있는 현금이 18만원밖에 없어 전부 드리면서 친구에게 말했다. '더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해... 친구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명의 장에서 끝까지 버티자. 이것이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뜻이 아니겠니.' 그렇게 말하고 헤어졌다.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영혼구원이다. 이땅에 살다가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면 구원이 필요없다. 그런데 성경은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임사체험을 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후 세계에 대해서 말한다. 사후 세계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삶이 달라졌다.

사사 시대의 영적 혼란이 찾아왔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4:25). 사회를 바로잡아줄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했다. 자기 생각이란 항상 오류가 있다.

사후 세계를 체험한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살지 않는다.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 그리고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남은 생애를 다 드린다. 무엇보다 물질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자신의 편안한 삶에 초점을 두지 않고, 이웃을 위해 말씀을 실천하려고 몸부림친다.

죽음이란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누구에게나 공포이며 두려움이며, 불안의 영역이다. 죽음 후에 지옥이 있다면, 천국과 지옥을 나누는 경계선이 이 땅에서 살았던 삶으로 결정 된다면, 죽음 후에는 되돌릴 방법이 없다. 그래서 죽음이란 항상 두려움의 존재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죽음을 준비했다면, 오히려 죽음이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할 때, 기쁨이 되고, 안식이 되는 것이다.

변화산기도원 마당에 쏟아진 단풍

그러면 영혼구원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서신에서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믿음의 결과는 무엇인가? 곧 영혼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영혼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아주 명쾌하게 답을 내렸다. 이렇게 성경은, 진리는 아주 단순하다. 그리고 명확하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영혼구원에는 다른 어떤 행위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믿음 뿐이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10장 9절 이하에서 구원이 어떻게 주어지는가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편지를 썼다. (1)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해야한다. (2)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한다. (3)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 (4)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5)복음의 진리는 차별이 없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면 구원의 선물을 받는다. 얼마나 놀라운 진리인가? 학식이 있던, 학식이 없든, 동일하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동일하다.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동일하다. 병자이든 건강한 분이든 동일하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만 영혼구원을 받는다. 다른 길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생활을 할 때 주어진 성전이 성막이다. 성막에는 지성소와 성소와 뜰로 구성되어 있다. 성막에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한 곳에만 있었다. 성막은 오직 그 문으로만 들어간다. 삼면은 다 막혀있다. 구약의 성막은 신약의 교회의 모형이다. 성막에 들어가는 문이 하나 밖에 없었듯이, 신약의 교회의 구원도 오직 문이 하나이다. 영혼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오직 문은 하나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은 누구에게 다 동일하다. 이것이 하나님이 제시한 구원의 원리이다.

목사들은 갑자기 죽음이 임박한 분들을 뵐때가 많다. 그때 마지막 말씀을 전한다. 구구절절 다른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 생명의 불이 꺼져가는 분에게는 이 땅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오직 한 말씀만 계속해서 전한다.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세요. 구원의 선물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다른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고 떨리겠는가?

마지막 기회이다. 목회자는 기도하며, 하나님 이 영혼을 받아주옵소서. 이 영혼의 죄악과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옵소서. 죽음의 순간에 외치는 말은 오직 영혼구원이다.

예수님과 함께 두 명의 행악자가 십자가에 매달렸다. 한명은 예수님을 비방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그러나 그중에 한 명은, “우리는 죄 때문에 십자가 처벌을 받지만, 이 사람은 행동은 모두가 옳지 않느냐,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했다.

강도 중 한 명이 죽음의 형장에서 마지막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주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2-43).

생명에 한계가 분명히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라. 죽음을 준비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이 달라질 것이다. 예수님의 이야기들로 풍성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태어난 후 성장은 개인의 몫이다. 구원과 성장 또는 성숙은 별개의 문제이다. 거듭난 이후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성숙을 지향해야 한다. 신앙적으로 성장하여 많은 분들에게 덕이 되고, 귀감이 되는 것이 성숙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끊임없이 자기를 비워가는 작업을 할 때,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하게 된다.

 

발행인 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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