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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목사의 연속 칼럼】 여행 찬가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거친 삶을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여행

여가가 있어서 여행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경제적 여유가 좋은 여행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여행은 삶의 여정에서 자그마한 여백을 만드는 것이다. 삶의 시간을 틈내서 세상 곳곳을 두루 살핀다. 책에 여백이 없다면 어떨까? 글자만으로 빼곡하게 들어 찬 책이라면 아예 펼쳐보기도 싫을 것이다.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난 홀로만의 여행에 약하다. 거의 대부분 함께 하는 여행을 즐긴다. 그가 누구든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맛보며 여행지를 관람한다. 오랜 벗이나 가족처럼 친밀감이 더할수록 여행은 편하다. 더불어 여행할 사람이 없으면 여행을 삼가는 편이다. 배낭여행의 묘미가 괜찮다는데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용기가 없어서일 것이다.

여행은 일단 즐거워야 한다. 여행지에서 잔뜩 찌푸린 커플을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신혼여행을 갔다가 대판 싸움한 끝에 갈라섰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듣는 세상이니 여행지에서 동행과의 마음 맞추기는 생각 외로 중요한 일이다. 여행은 거친 삶을 부드럽게 해주는 마사지와 같다. 여행의 유익함은 떠나기 전부터 다가오는 설렘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 여행의 매 과정에서 얻는 다양한 경험들, 그리고 여행을 마친 후에 간직할 수 있는 추억거리에 있다. 국내여행과 해외여행, 단기여행과 장기여행은 형편에 따라 시차를 두고 실시하면 좋을 것이다. 여행을 너무 강행군하면 오히려 쉼을 잃어 쉬 지친다. 역시 적당한 것이 최선이다. 삶 자체가 긴 여행이니 편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길 떠나야 할 것이다.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해야 좋은 여행

자동차로 미국의 동서를 관통하는 여행을 오래 전부터 꿈꾸었으나 아직 이루지 못했다. 언젠가는 동서 횡단의 팀이 꾸려지리라 기대한다. 마음 맞는 친구 서넛이나 두세 커플이면 좋으리라. 장거리 운전이 벅차면 패키지를 이용한 버스 여행도 할 만하다. 좋은 여행사와 좋은 가이드는 여행자의 복이다. 여행 경비는 적절한 것이 편하다. 많으면 부담스럽고 적으면 불편하다. 비행기를 탑승하면 왠지 여행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진다. 경제적 이유로 자주 할 수 없겠지만 크루즈 여행은 한두 번 권하고 싶다. 일단 승선하면 선상에서의 프로그램이 다채롭고 음식도 만족스럽다. 기항지마다 볼거리, 먹거리가 넘치니 눈요기만 해도 배부르다.

여행지에서 잠자리는 불편해도 음식은 좋아야 한다. 제철 음식과 그 나라나 지방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음식을 맛볼 수 있음은 여행이 지닌 매력 중의 하나다. 목적에 따라 성지나 유적지를 살피는 것도 유익하고 고향의 옛길을 더듬거나 신혼지를 다시 돌아보는 것도 감동적이다. 선교여행이란 용어에 불만을 표하는 분들도 있지만 단기선교는 선교의 원래 목적과 함께 선교지 근처를 돌아보는 여행의 덤이 주어지기에 감사히 여겨 즐길 일이다. 단체가 아닌 커플들이나 친구와의 동행일 경우에는 무엇보다 뜻이 맞아야 한다. 너무 가깝다 보면 함부로 대해 상처를 입거나 입히기 쉬우므로 조심할 일이다. 친밀함이 부르는 것이 경멸감임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인생의 기본사양이 되어야 할 여행

왜 뜬금없이 여행 타령일까?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말한다. 우리는 너무 열심히 살아왔다. 우리 중에 대충대충 인생의 걸음을 걸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선을 다하느라 우리는 기진맥진해있다. 몸이 견디다 못해 비명을 지를 때면 여기저기서 고장의 신호를 보낸다. 뒤늦게 치료하고 요양을 하지만 시기를 놓칠 경우가 많다. 여행은 건강한 삶의 예방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인생의 필수 과정이다. 선택사양이 아니라 기본사양이어야 한다. 경제적 여건이나 직업상의 특이성이 장애가 될 수 없다. 여유는 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서, 시간은 남아돌지만 경제적 이유 때문에, 혹은 둘 다 문제없지만 건강상 이유로 여행을 꿈도 꾸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여행을 꼭 거창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가까우며 짧은 일정부터 시작하다보면 여행 역시 책의 일부를 이루는 여백처럼 삶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세 끼 식사를 챙기고 아주 자연스럽게 숨을 쉬듯 여행을 그렇게 간주하면 된다.

여행은 인생의 사치가 아니다. 내 벗들이 나를 찾을 때 나는 반드시 여행준비를 한다. 거리가 가깝든 멀든 집을 떠난다. 머무는 시간을 고려하여 여행계획을 짠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길이 좋고 차도 좋다. 장거리 운전도 너끈히 감당할 수 있다. 예전에는 간혹 멀리 있던 벗이 찾아와 잠시 머물며 함께 길을 떠났다. 문득 끊어진 필름들이 서로 연결되듯 영상의 흔적들이 기억 밖으로 뛰쳐나올 때면 한없이 그리운 시간들이다. 마음의 벗들이, 사랑하는 후배들이 그립다. 내가 그들을 찾아가도 그들은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모든 삶의 환경을 뒤로 하고 과업도 사역도 훌훌 벗어버리고 가벼운 날갯짓하듯 그렇게 길 떠날 수 있을까? 선교지의 벗들도 위로하고 싶다. 쌓인 회포도 풀고 이 나이에 꿈을 노래하되 말씀을 나누며 기도의 무릎을 함께 꿇어 내공을 다지고 싶다.

 

좋은 가이드를 만나야 유익한 여행

여행이 주는 유익은 많다. 다른 것들과의 회동이다. 마주치며 겪는다. 공간과 시간이 재빠르게 바뀌면서 사람과 사건과 사물을 접하며 심신 간에 온갖 미묘한 작용이 일어난다. 몸으로 부딪히며 체득되는 이것들은 새로운 관계 맺음이며 색다른 경험이다. 그저 스쳐지나갈 뿐일지라도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다른 문화와 전통, 다른 의식주와 언어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경이로움 자체다. 비슷한 문화나 전통, 또는 비슷한 식습관을 발견할 때 놀라움을 느낀다. 특히 사람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며 한 가족 된 세계인으로서의 친밀감을 얻는다. 성지여행은 강력히 권하고 싶다. 성지여행을 굳이 순례로 표현하는 것도 성지순례가 지닌 특별한 맛이나 유익 때문일 것이다. 전에는 귀로만 들었는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이드의 말을 무조건 신뢰할 수 없음은 신실한 크리스천 가이드를 만나기가 쉽지 않고 신자라 해도 성경에 깊은 조예가 없으면 엉뚱한 설명으로 여행객들을 호도하기 때문이다. 십년도 훨씬 전에 성지여행 중에 만난 가이드는 부정확한 안내로 성지여행에 진지했던 일행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 결국 스스로 확인하고 가이드의 설명과 다른 사실을 정돈하느라 발품도 팔고 시간을 적잖이 쏟아야 했다. 좋은 안내자와의 만남은 큰 복이다. 아니면 스스로 안내자의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사전에 여행할 곳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채집하고 정보를 수집함은 유익한 여행을 위한 팁이다.

 

이질적인 경험을 통해 행복을 누리는 여행

성지순례는 신앙의 선조들이 걸었던 현장을 살피고 주님이 남기신 삶의 체취를 맡고 사역의 흔적을 더듬게 만든다. 마음의 신앙을 몸에 실어 역사의 현장이란 빈 공간을 채우는 퍼즐 게임과 비슷하다. 주님 임재의 현장을 그림자를 더듬어 실체에 이르듯 그렇게 더듬는 영적 촉감을 느낀다. 성지도 이스라엘과 터키, 이집트와 요르단만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아도 성경의 중요 유적지가 있는 곳이면 중동의 여타 지역을 한 번쯤 둘러보면 좋다. 프랑스 남부 국경에서 스페인의 서부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이르는 820km의 순례길도 필생의 여행 코스로 훌륭하다. 단 경비는 넉넉하고 건강은 확실하며 짐은 작게 꾸린다.

여행일지는 좋은 추억담이 된다. 사진은 물론이고 특정한 장면에다 당시의 솔직한 감정을 적어둔다. 요즘은 핸드폰 기능의 획기적 성능 향상으로 인해 여행을 기록에 남기기가 여간 수월치 않다. 기록은 정말 권장할 만한 좋은 습관이다. 숙소에 돌아와 잠들기 전에 피곤하더라도 하루의 여정을 기록한다. 하루 단위로 기록하는 것은 기억력의 한계 때문이다. 기억에 의존하다간 낭패를 본다. 나중에 기술하려 해도 정확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고 현장에서의 감정도 되살아나지 않는다. 시간이 날 적마다 작은 수첩이나 핸드폰에 간단한 메모를 남기는 것이 지혜다. 여행은 내면의 행복을 자연과 이질적인 경험에서 찾는 예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여행의 기술>은 특별한 여행객이 아니라 보통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다. 그의 이름이 특별이 아닌 보통이어서 더욱 편안하다.

 

가파른 인생의 언덕을 깎아 평지로 만드는 여행

여행은 역동적인 방랑을 통해 삶을 보고 느낀다. 여행은 떠남이면서 머묾이다.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곳에서는 발길을 멈춰 며칠이고 머물며 감동의 색감을 즐길 일이다. 여행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어도 여행이 행복 찾기는 아니다. 일단 여행자는 일상의 삶이 주는 무게감 같은 구속을 받지 않는다. 여행은 자유로움에서 출발한다. 여행은 구속당한 삶에 대한 혁명이며 긴장된 인생의 근육을 적절히 풀어주는 운동이다. 여행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던 우리가 내일을 앞당겨 사는 지혜놀이다.

여행은 인생의 가파른 언덕을 깎아 평지로 만드는 일이다. 담을 무너트리고 대신 댐을 쌓는 것이다. 편평하게 만들고 낮추는 이 일은 일이면서 노동이 아니다. 놀이 같은 일이다. 편하지 않아도 펀(fun)하다. 사람은 여행을 떠나면서 나그네가 되고 나그네 길에서 돌아갈 고향을 깊이 생각한다. 일상의 잡다함에서 해방되어 잠시나마 삶의 긴장을 느슨하게 만들어준다. 일평생 내가 떠나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는 것이 세상이다. 그 세상을 향해 내가 찾아감으로 난 세계적인 길손이 된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도 세계가 나를 향해 손짓한다.

여권에 색색의 도장이 찍힐 때 어떤 뿌듯함을 느낀다. 기억의 창고에 보관되었던 지식이 세상의 햇빛을 받아 좋은 혈색을 얻고 몸으로 겪은 생생한 체험은 내 남은 삶에 보탬이 된다. 영웅은 말을 달려 영토를 확장하지만 여행가는 자신의 몸을 던져 경험의 땅을 넓혀간다. 한니발도, 나폴레옹도, 칭기즈칸도, 그 어느 영웅도 아직 전 세계를 정복한 적은 없다. 전 세계의 오지 곳곳을 돌아보며 세계의 앞마당과 뒷골목을 빠뜨리지 않고 돌아본 여행가도 아마 없을 것이다. 세계를 모두 다닐 수는 없어도 세계 지도에 자신이 지난 곳을 표기하는 것도 여행에서 얻는 작은 즐거움이다.

 

<기다림>과 <바라봄>으로 채워지는 여행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고국이다. 지난 40년 동안 겨울 방문이 거의 없다 겨울 초입에 들어선 고국의 살갗을 마주 대하니 매섭도록 춥다. 약 600년 전의 한 선비는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고 한탄했는데 미세먼지와 난개발로 몸살을 앓아도 강인한 고국산천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립던 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일출이 아닌 인생의 석양에 드리운 노을빛 사이로 삶의 여정을 이어가야 하는 육순의 고국나들이는 행운이다. 인천공항에서 시작된 벗의 섬김을 따라 시작된 여행은 매일처럼 반가운 이들과의 해후이며 풍성한 먹거리에 볼거리이다.

태어나 처음 들른 이천에서의 말씀 나눔과 찰진 이천 쌀로 갓 지은 밥에 풍성했던 청학동 정식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오창에서의 일견을 뒤로 하고 부산행 KTX에 몸을 싣고 차창 밖의 풍경을 내다보노라니 어느새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다. 11월 22일이다. 숫자의 나란한 배열이 예사롭지 않다. 시차로 인해 일찍 잠을 깬 덕에 갓 시작된 고국에서의 네 번째 날을 경건한 마음으로 연다. 3주 예정으로 전개될 고국에서의 준비된 경험들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마주치려 한다. 가능한 모든 만남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위해 복을 빈다. 몇 번의 말씀 나눔을 통해 메신저의 품위보다 경청자들의 실익을 고민하며 진지한 기도를 드린다. 최근 출판된 두 권의 책 제목 <기다림>과 <바라봄>처럼 기다렸던 시간들이며 바랐던 사람들로 이번 여행이 채워지길 갈망한다.

 

 

 

한명철 목사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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