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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선】 왜 설교를 오래 들어도 변화가 잘 안될까?【이대희 목사의 바이블시선】 - (13)
  • 이대희 목사
  • 승인 2019.12.0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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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크리스천 가이드> <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왜 설교를 수십 년 들어도 성도들의 변화가 미약할까?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은 설교를 하는 설교자 자신의 변화가 가장 강력하게 일어나야 함에도 그것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오히려 영적성장을 더 이상 이루지 못하고 내리막길로 가거나 신앙의 고착된 상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설교자와 성도들 모두에게 있는 딜레마다. 분명히 성경을 가지고 충실히 설교를 하는데도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설교의 방식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 할 필요가 있다. 설교자와 청중이 잘 모르는 문제가 요인이 될 수 있다. 삶의 변화는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변화의 과정은 내용과 형식이 일치 될 때 일어난다. 이것은 사람의 변화에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결국 형식과 방법이 같이 따라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설교방식을 점검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의 설교는 크게 그리스 방식의 설교와 라틴 방식의 설교로 나눌 수 있다. 라틴 방식은 실제적인 것으로 보통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도덕적이고 단순한 방법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방식이다. 그리스 설교방식은 크리소스톰과 쯔빙글리, 라틴설교 방식은 어거스틴과 루터가 여기에 해당된다.

칼빈은 루터의 영향을 받은 설교를 했다. 이 둘 방식의 특징은 구절에 해설과 구절구절마다 자세히 주석을 다는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거스틴, 크리소스톰, 오리겐은 그리스 로마식의 설교 방식의 영향을 받았고 그들의 설교 방식은 이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빈과 쯔빙글리는 성경을 통한 개혁을 이루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헬레니즘 방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내용의 개혁은 이루었지만 방법의 개혁은 미진했다.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와 신앙이 다시 옛 중세 시대로 돌아가는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방법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들의 헬레니즘 방식은 청교도들에게도 이어져 영향을 미쳤다. 물론 청교도들은 헤브라이즘이 추구했던 히브리식 방법을 적용한 점은 긍정적이다. 예를 들면 성경을 외우고 성경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방식과 문답 방식은 성경적인 전통을 잘 이어 온 예이다.

하지만 청교도 설교방식 역시 칼빈에게서 차용해왔다. 대표적인 종교개혁자인 칼빈은 성경을 조직적으로 강해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초대 교부들이 물려준 것이고 교부들은 르네상스 당시에 유행한 설교방식을 모델로 삼았다. 당시 르네상스 학자들은 고전문학 작품의 매 문장 마다 주석을 달았다. 이것은 그리스 로마에 유행한 연설기법이었다. 소피스트들은 호머의 시에 주석을 달았다, 로마의 교부들은 그리스 연설방식을 설교에 적용하였고 그것은 종교개혁자들에게도 이어졌고 그것이 청교도들을 통하여 오늘 날 우리의 대표적인 설교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내용은 성경이지만 방식은 세상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은 종교개혁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왔다.

지금 우리가 설교의 모델로 삼고 있는 칼빈은 이 방법을 주로 사용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회심하기 전에 세네카의 주석에 이 방식을 사용했었다. 그런 그가 회심한 후에도 자연스럽게 설교와 성경 주석에 적용하여 사용했다. 이런 칼빈의 주석 방식은 영국 청교도에 전수되었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정교하게 본문을 논리적으로 성경 각 구절에 주석과 풀이를 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지금의 강해 설교를 만들어 냈다. 청교도들은 칼빈의 이런 주석 방식을 따라 성경을 한 구절씩 강해하는 방식으로 설교에 적용했다. 그들은 더 나아가 본문을 세분화 하여 나누고 분석하고 조직하면서 설교의 영역에 적용했다. 이렇게 발전 한 것이 지금의 강해 설교모습이다. 회중은 그것을 듣고 기록한다. 특히 4대지로 나누어 설교 개요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설교를 기록한 내용들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현재 우리는 이들이 전해준 방식을 거의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헬레니즘 방식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2000년 가까이 기독교를 지배한 그들의 교육과 문화 때문이다. 그것은 신본주의 보다는 인본주의에 가까운 방식이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를 그대로 전하기보다는 그것을 다시 인간이 조직적으로 세분화 하거나 취사선택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정작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지만 결국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다시 조직하기 쉽다. 이렇게 되면 성경은 난도질당하게 된다. 문맥과 문장 구조가 사라지고 단어와 구절만 남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전혀 다른 성경 의미를 전할 수 있고 인간적인 욕심으로 성경을 바라보면서 성경을 말하지만 정작 성경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될 수 있다. 종교개혁자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말씀에 대한 통찰을 전해준 공로가 크지만 정작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성경적 방법에 이르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그들이 극복하지 못했던 한계를 성경적으로 발전하여 나가는데 있다. 그들의 시대적 한계에서 어쩔 수 없었던 점을 이해하면서 오늘 우리는 그들이 놓치고 있었던 주님의 원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금 구라파의 교회 위기와 약해진 설교를 해결하는 설교개혁의 길이 아닐까?

 

이대희 목사  smd6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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