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53) - 아모스(5)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모세의 언약과 전통을 기억하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암6:14).

아모스는 드고아가 고향인 남쪽 출신 예언자이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 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암1:1). 그러나 아모스는 북 왕국에 가서 주전 760년 경 예언을 하였다. 여로보암 2세의 시대는 번영의 시대로서 풍요한 경제와 국제적인 안정시대에 군사적으로 팽창하던 시대였다. 물질적인 풍요는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의 세계와는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오늘 우리 시대와 상황과 유사하지 않은가.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의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자로다”(암6:13). 예언자는 국내 정치적 상황과 사회 부정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로인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앗시리아의 위협을 말하고 있다. 그 당시 앗시리아는 아람 지역의 반란으로 남쪽까지 침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원시적 관점에서 정치적 환상을 보고 있다. “너희가 성 무너진 데로 말미암아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지우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4:3).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이는 만군의 하나님이라 일컫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5:27).

아모스는 남쪽 출신이지만 하나님께 붙들려 북 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는 온 이스라엘의 비전을 가지고 거시적 입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나갈 길과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기에 그는 고뇌하는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눈을 갖고 역사를 보면서 현실 속에 이스라엘의 정치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선구자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암2:1-2). 이는 아모스가 온 이스라엘이 출애굽의 역사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구속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아모스는 모세의 언약과 전통을 기억하고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선택한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출애굽의 사건을 통해 언약 백성으로 삼고 ‘가족 공동체’(온 가족)가 되어 신앙적 충성을 요구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야다)’. 이 ‘야다’동사는 남편과 부인 사이의 친밀한 연합을 이르는 말로서 고대 언약 용어를 반영하며 또 종주국이 봉신국을 언약 관계로 들어간다는 말로서 이 ‘야다’라는 말을 사용하여 종주국의 합법적 권위를 말했다. 따라서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이 언약 신앙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농부와 목자에서 예언자로 충실한 아모스

아모스는 짧은 기간 예언 활동을 하였다. 아마도 북 왕국에서 몇 달 밖에 예언 사역을 못한 것 같다. 지진 전 2년에 아모스는 예언을 하다가 벧엘에서 예언하지 못하도록 하는 아마샤에게 위협을 받는다(암7:10이하). 아모스는 과거의 전통에 익숙했고 이스라엘의 현재와 환경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암9:7). 아모스는 속담을 잘 알았고 시적 표현이나 지혜 전승, 수적 연속성을 사용한다(암1:3; 3:3). 아모스는 독특하게 이스라엘 침략 전쟁의 보도를 하고 있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를 말하고 있다.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암2:13).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찌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암4:2).

아모스는 자신이 선지자도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며 다만 목자며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라고 말한다. 그가 양 떼를 따를 때에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예언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이 직접 부르셨다는 사실, 또 그가 환상을 본 것으로 인해 예언자로 부르심에 대하여 의식함으로써 이 예언 사역을 가능하게 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대하여 묵시(하자, 예언) 받은 말씀이라’(암1:1). 하나님께서 보게 하는 ‘하자’(예언, 묵시, 섭리)를 전하려는 말씀사역은 아모스가 세상 예언 전통의 틀을 깨고 선포해야 할 사명이 심히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모스는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쏟아내서 말씀을 선구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사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암7:16).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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