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눅 4:1-15]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 받으심. 누가는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full of the holy Ghost, πλήρης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을 입어 광야에서 40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말씀했다(1-2절). 우리는 성령충만으로 마귀의 시험을 벗어나는데, 예수는 성령충만해서 시험으로 들어가셨다. “예수님처럼”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다.

고경태 편집위원

광야에 계신 예수를 마귀가 미혹했지만, 예수께서 말씀(구약성경, 신 8:3, 신 6:13, 신 6:16)으로 물리쳤다(비교. 마태 4:1-11). 시험의 내용은 먹음(돈), 명예, 권세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먹음(돈), 명예, 권세는 인간이 가진 기본 탐욕이다. 이 안에는 음란, 탐심, 나태(懶怠, 게으름)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이것을 획득하기 위해서 불법과 폭력을 사용한다. 잠언 22:1에서는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 돈과 권세를 포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돈이 없는 명예, 권력이 없는 명예가 가능하기는 하다. 그런데 명예는 돈과 권세와 떨어지기가 쉽지 않다. 세 요소는 분리되기 어렵다(잠 30:7-9). 그럼에도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신 후에 성령의 능력(the power of the spirit, τῇ δυνάμει τοῦ Πνεύματος)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셨고,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14절). 예수께서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많은 사람들이 칭송했다(15절).

예수께서는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고, 시험을 마친 뒤에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다. 시험산으로 인식된 장소는 여리고에 있다. 시험을 이기신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신 내용은 성경을 읽은 뒤에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예수께서 구약의 참된 의미를 밝히셨다.

2. [눅 4:16-30]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신 예수. 예수께서 광야 시험을 마친 후에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가셨다(14절). 1절에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와 14절의 τοῦ Πνεύματος은 동의어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가심은 난제를 갖고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이 성령의 능력인지, 예수의 능력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바다를 잠잠케 한 사건을 창조주의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성령은 말씀을 전하고 깨닫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

예수께서 자라신 곳인 나사렛에 가셔서, 안식일에 늘 하듯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시고 가르치셨다(16절). 예수께서 읽은 본문은 이사야 61장이었다(17절).

(사 61:1-3)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께서 본문을 읽으시고 자기를 주목하는 회중들에게(20절) 그 예언 부분이 자기에게 성취되었다고 선언했다(21절). 나사렛 거민들은 예수를 요셉의 아들로 알았고 탁월한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기적을 행했지만 고향에서 인정받는 것도 필요했다(23절). 그러나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기 어려웠다(24절).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은 사렙다 과부였고,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었다(25-28절). 그 강론을 들은 나사렛 사람들은 화가 나서 예수를 몰아 산 낭떠러지까지 이르렀다. 나사렛 주민들이 화를 낸 이유는 예수께서 자기의 무지와 교만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께서 읽은 이사야서 본문을 좋게여겼다(22절). 그런데 예수께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는 속담을 말씀하셨다(23절). 우리말로 이해하면 “의사가 제 병을 고치지 못한다”로 이해할 수 있겠다. 서로 은혜롭고 멋진 말이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인데, 예수께서 자고(自高)하지 말고 자기를 의지해야 한다고 하기 때문에 분노한 것이다. 나사렛 거민은 예수를 동네가 건설한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다(29절). 사탄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했고(4:9), 유대 나사렛 사람들은 높은 곳에 밀어 떨어뜨리고자 했다(4:29).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셨다(30절). 누가는 거기까지 보고하고 주변 상황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시작했지만 왜 가버나움에서 시작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고향에서 배척당했기 때문에 땅에서 보호자가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3. [눅 4:31-41] 가버나움에서 시몬을 만남. 예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에서도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예수의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다(32절).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큰소리로 소란했다(34절). 예수께서 귀신이 자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가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귀신을 나오게 했다(35절). 사람들이 말씀의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냈다고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36-37절). 우리는 예수를 증언하는 일은 오직 택자에게 부여된 사명인 것을 알고 있다. 귀신이 외친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복음이 아니다. 택자는 구주의 이름을 증언하여, 복음을 전한다.

예수께서 회당에서 나가서 시몬의 집에 들어갔는데, 시몬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었다(38절). 사람들이 시몬의 장모를 위해서 예수께 구했다(38절). 예수께서 열병을 꾸짖어 병이 떠나게 하셨다(39절). 시몬의 장모를 건강한 몸으로 수종을 들었다(39절). 해질 무렵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께 나왔다(40절). 예수께서 일일이 위에 손을 얹어 치료하셨다(40절). 귀신들을 쫓아낼 때 나가면서 귀신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리 질렀다(41절). 귀신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며 떠들었지만, 그 지식은 구원이나 어떤 유익을 주지 못한다. 귀신들은 탐욕의 신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전한 지식은 반드시 탐욕으로 귀결된다. 사단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막는 것이 일이다. 그런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막고 훼방하는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악(惡)이다. 메이천은 회심하기 전 사울이 알았던 예수 지식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했지만, 다메섹 도상 이후에 예수 지식은 구원 지식으로 구분했다. 역사적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맥(脈)이 같지 않다. 성경은 30년의 역사적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 침묵하고, 3년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집중한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믿으면 30년의 무지에 대해서 조급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며 경의와 겸손을 훈련하기에 유익하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시몬의 장모 집에서 고치신 일은 안식일에 수행하신 것이다(참고 눅 4:31).

4. [눅 4:42-44] 복음을 전하심. 예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셨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게 만류했다(42절). 그러나 예수는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εὐαγγελίσασθαί) 한다고 하셨다(43절). 그래서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도했다(κηρύσσων. 44절).

예수께서 오심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다. Καὶ ταῖς ἑτέραις πόλεσιν εὐαγγελίσασθαί με δεῖ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 ὅτι ἐπὶ τοῦτο ἀπεστάλην(34절). 44Καὶ ἦν κηρύσσων εἰς τὰς συναγωγὰς τῆς Ἰουδαίας. 43절 헬라어 직역은 “나의 복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함”을 여러 마을에서 수행한다고 번역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με(나의)’를 빼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으로 번역하는데, Geneva1559, KJV에서는 ‘복음’이라는 어휘(the kingdom of God)도 빠져있다. KJV에서는 εὐαγγελίσασθαί(신약 7회) 4:18에서는 me to preach the gospel to the poor로 번역했고, 4:43에서는 I must preach the kingdom of God로 번역했다. KJV는 눅 4:44, 엡 3:8에서 preach로 번역했고, 다른 곳에서는 to preach the gospel로 번역했다.

예수께서 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일까? 앞에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됨일까? 그 앞에 있는 “주의 영이 임함”으로 보아야 한다. full of the Holy Spirit(1절), in the power of the Spirit to Galilee(14절),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18절)

5. 전능하신 하나님, 주의 종이 주의 백성으로 살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복되게 하옵소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주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게 하옵소서. 어찌되었든지 주의 복음이 증진되고 전파되길 바랍니다. 주의 손에 붙들릴만한 거룩과 능력을 주옵소서.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세례의 은혜와 능력으로 주의 이름을 땅끝까지 전파하게 하옵소서. 오직 주의 성령의 능력으로 주의 역사를 감당케하옵소서. 주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뜻대로 행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te. 2nd. 2019.12.11.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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