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늘날 터키의 도시들인 메섹, 두발, 고멜, 도갈마

메섹은 터키의 프리지아에 살았던 앗시리아인들인 “무스키”(Mushki)와 동일한 종족이라 한다. 다른 모든 고대의 문서에는 메섹은 오늘날의 동부 터키라고 한다. 헤로도투스는 메섹을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무스키(Mushki) 산에 거주하던 이들로 보았다. 시 120:5절에서는 메섹의 거주자들이 이방인으로서 화의 대상임을 밝혔다. 바벨론과 앗수르가 득세했을 때 무스키인들은 그들에 의해 정복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코카서스 산맥을 횡단하여 대초원지대에 유포되어 살았으며 스키티아인들과 섞였을 가능성이 크다. 헤로도투스는 무스키 산이 터키 남서쪽에 있다고 했으며 요세푸스는 메섹의 자손들이 터키 동쪽 지역에 살았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헬라어로 “무스키”(Mushki)라 불린 사람들을 러시아의 옛 이름인 “무스코비”(Mushkovi)와 같다고 주장했다. 무스키인들은 주전 12년에 지중해 북쪽에서 살았고 주전 9년에는 프리지아에 거주했다. 주전 5년에 이들은 터키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스케니”(Moscheni)로 알려졌다. 1세기 때 요세푸스는 메섹을 갑바도기아에 살았던 “모스케니”라 했다.

야벳의 다섯째 아들인 두발은 이사야 66:19절에 야완과 함께 언급되었는데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흑해 동쪽의 코카서스 남부 지역인 유프라데스 상류의 아시아 고원지대에 살던 그리스 계통의 티베리니(Tiberini)족에 해당하였다. 두발의 정체에 대해 마카비 시대에는 안티오커스로, 또는 갈대아의 침공군이나 투르크 세력으로 해석되었지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이런 해석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두발은 터키의 도갈마와 메섹의 서쪽인 타발(Tabal)과 동일한 곳이다. 두발은 또한 메섹의 서쪽인 흑해에 자리 잡고 있던 소아시아 국가라 알려졌다. 로스와 메섹과 두발과 함께 한 동맹국들의 지리는 사방 백성들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바사는 이스라엘의 동쪽, 고멜은 서쪽, 구스와 붓은 남쪽, 그리고 도갈마는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디오피아, 바사(이란), 그리고 리비아 외에 러시아 동맹국들은 현대의 터키인 고멜과 도갈마가 있다. 고멜은 독일인이거나 동유럽의 불가리아의 사람들을 칭하는 것일 수 있다. 키메르족(Cimmerians)으로도 불리는 고멜은 스키티아인들에 의해 코카서스 반대쪽으로 밀려나 러시아 서부의 흑해로 흘러가는 드네프르 강의 우크라이나 초원으로 옮겨졌는데 주전 700년경에 현재의 터키까지 밀려났다. 바벨론의 탈무드에 고멜은 “독일 민족”(Germania)이라 기록되었고 나중 보스포란(Bosporan) 왕국을 이룬 키메르족(Cimmerians)과 연합되어 라인 강과 다뉴브 언덕에 자리 잡았다. 도갈마는 아마 터키, 아르메니아(Armenia), 투르키스탄(Turkestan)일 것이다. 요세푸스는 도갈마를 오늘날의 터키 동쪽 갑바도기아(Cappadocia)에 살고 있는 프리지아(Phrygians) 사람들이라 여겼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도갈마가 갑바도기아 동쪽의 고대 히타이트(Hittite)의 도시라 생각하는데 정확한 장소에 대해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여도 도갈마가 현재의 터키라는 점에서는 어떤 이견도 없다.

메섹, 두발, 고멜, 도갈마가 오늘날의 터키 도시들이라면, 흥미로운 일은 터키가 서방세계의 민주주의 제도를 중동권에서는 가장 일찍 받아들였고 나토 회원국이며 유럽 여러 나라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수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던 각고의 노력이 거절당하자 지금은 이슬람 세력 쪽으로 돌아선 형국이다. 터키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과 언어와 민족이 같다. 터키는 오스만터키 때처럼 맹주가 되기를 원한다. 바사는 1935년 3월에 국가 명칭을 이란으로 바꾸었으며 이들은 정통파 이슬람교의 지도국인데 역시 맹주의 꿈에 부풀어 있다.

 

전쟁의 시작과 끝을 통제하시는 하나님

이디오피아 또는 구스(Cush)란 애굽의 남쪽에 있는 나라다. 구스는 후일에 나일 강 유역의 고대왕국 누비아(Nubia)로 알려졌고 오늘날의 수단에 해당한다. 수단은 정통파 이슬람 정부로서 크리스천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는 완전 이슬람교를 추종하는 나라다. 수단과 이란은 동맹을 맺어 팔레스타인들을 위한 훈련장소와 이슬람 테러리스트 그룹을 키운다. 명백히 말하면 이곳과 자이레(Zaire)와 남아프리카를 포함해서 “Black Africa”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곳은 이슬람이 원하는 현대적인 무기 개발과 산업에 필요한 중요하며 핵심적인 물질이 풍부한 곳들이다. 붓은 구스와 함께 함의 후손이다. 붓(리비아)도 이슬람교의 영향이 강력하게 지배하는 국가다. 넓게 말하자면 붓은 오늘날의 리비아보다 더 많은 나라들을 의미한다. 이 나라들은 모리타니아, 알제리아, 튀니시아, 그리고 모로코 등이다. 요세푸스는 붓이 리비아를 창설한 자에 의해 세워졌다고 했다.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먼 북방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라 해석된 에스겔 39:2절의 킹제임스 역본은 “내가 너를 뒤로 돌이켜서 너의 여섯째 부분만 남기며 너를 북쪽 지역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스라엘의 산들 위로 데려다가.”로 해석한다. 이는 완전히 다른 내용인데 후자의 번역에 무게를 두면 여섯 중에 하나를 남기고 나머지 다섯을 이끌고 침공 대열을 형성한 것으로 연상할 수 있다. 이에 근거해서 러시아의 육군 편제가 6관구인데 극동군만 제외하고 나머지 5관구의 대병력을 전쟁에 참가시킨다는 뜻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러시아 육군은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북코카서스, 볼가-우랄, 시베리아, 극동 군관구라는 6개 군관구로 구분되어 있다는 해석도 있으나 잘못된 견해다. 소련 해체 이전에는 16관구에 이르렀고 해체 이후부터 2010년 이전에는 6관구였으나 그 이후로는 8개 관구로 조정되었기에 적용시키기 어려운 해석이다. 그보다는 전체 동원 병력 중에서 1/6 수준을 남겨두겠다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의 말과 병기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겔 38:3-4)에서처럼 전쟁을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전쟁의 시작과 끝, 그리고 전쟁의 모든 과정을 통제하신다. 하나님이 조종하시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분은 곡의 아가리에 갈고리를 꿰어 이스라엘을 공격하도록 이끌고 오실 것이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채찍 삼아 북왕국 이스라엘을 치시고 바벨론을 몽둥이 삼아 남왕국 유다를 멸했지만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그들은 여지없이 하나님께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받았다. 곡의 운명 역시 그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당신이 여호와이심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죄악 투성이의 인간들을 구하시고 이스라엘을 결국엔 회복시키시려는 것이다.

 

셀류커스 왕조와 프톨레미 왕조의 흥망성쇠

단 11:40절에는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와 힘을 겨룰 것이나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오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침공하여 물이 넘침 같이 지나갈 것이요.”라 되어 있는데 남방왕과 북방왕의 정체는 시대에 따라 각각 달리 나타났고 전쟁의 결과도 일진일퇴였다. 최초의 남방왕과 북방왕은 알렉산더 사후에 일어난 네 왕조들(4절) 중에서 서방왕국에 속하는 소아시아의 리시마쿠스 왕조와 마게도냐와 그리스를 통치하던 카산더 왕조를 제외한 셀류커스 왕조와 프톨레미 왕조가 해당된다. 셀류커스 왕조는 북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관할하였으며, 프톨레미 왕조는 애굽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남부 시리아 지역을 주관하였다.

막강한 남방왕은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푸스 2세(Ptolemy II Philadelphus)로서 상대인 북방왕은 셀류커스 니카토르 1세(Seleucus I Nicator)였다(5). 북방왕 안티오커스 데오스 2세(Antiochus II Theos)는 2차 시리아 전쟁(260-253 BC)의 여파로 라오디케(Laodice)와 이혼하고 남방왕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딸 베레니케(Berenice)와 정략결혼을 하였다(6). 베레니케의 동생인 남방왕 프톨레마이오스 유에르게테스 3세(Ptolemy III Euergetes)는 셀류커스 칼리니쿠스 2세(Seleucus II Callinicus)가 다스리던 북방왕국을 점령했다(7-9). 북방왕 셀류커스 세라우누스 3세(Seleucus III Ceraunus)와 대(大) 안티오커스(Antiochus III the Great)와 남방왕 프톨레마이오스 필로파토르 4세(Ptolemy IV Philopator) 사이에 4차 시리아 전쟁(219-217 BC)이 계속되고 이 와중에 이스라엘은 극심한 고난을 겪었다(10-14).

주전 202년에 5차 시리아 전쟁(202-195 BC)이 발발했고 주전 200년 파네이온(Paneion) 전투에서 북방왕 대(大) 안티오커스 3세가 남방왕 프톨레마이오스 에피파네스 5세(Ptolemy V Epiphanes)를 패퇴시킴으로 남방왕은 아시아 영토 대부분을 잃는다(15-16). 북방왕 대(大) 안티오커스 3세가 이집트와의 화해를 위해 프톨레마이오스 에피파네스 6세(Ptolemy VI Epiphanes)에게 클레오파트라(Cleopatra)를 신부로 제공한다(17). 북방왕 대(大) 안티오커스 3세가 서방왕국과 전쟁을 일으키나 로마제국의 발흥으로 물러선다(18-19). 북방왕 셀류커스 4세 필로파토르(Seleucus IV Philopator)가 이스라엘에게 세금을 부과하나 며칠 후에 멸망한다. 남방왕과 전쟁할 작은 뿔 곧 북방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가 일어나지만 로마제국의 발흥으로 물러나 이스라엘에 머문다(21-35).

 

남방왕과 북방왕은 이슬람 전체 세력과 북방 세력인 러시아

먼저 이스라엘 지역을 통치한 것은 프톨레미 왕국이었다. 이들은 이방종교에 관대하여 유대인들을 알렉산드리아에 이주시켜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케 했다. 주전 198년 셀류커스의 왕 대(大) 안티오쿠스 3세가 프톨레마이오스 5세와의 파내우스(Paneas)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팔레스타인 통치권은 결국 셀류커스 왕조로 완전 넘어가게 되었다. 프톨레미 왕국과 달리 셀류커스 왕국은 헬레니즘 문화를 강압적으로 이식시키려 하고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성전 보물을 약탈하기까지 함으로 유대인들의 강력한 저항을 초래하였다.

뒤를 이은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을 '에피파네스’(Epiphanes)라고 칭하며 군대를 동원해 성소를 더럽혔고(단 11:31) 주전 167년에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했으며 12월 8일에는 성전의 제단에다 '제우스 신상'을 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숭배하게 하였다(단 11:31). 심지어 율법을 지키는 자는 사형에 처하고 왕의 생일을 기념케 하기 위해 매월 25일마다 돼지를 잡아서 제단에 바치도록 강제하였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의 출현은 이미 단 8:8-11에서 예언되었다.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고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단 8:8-11) 즉 ‘한 뿔에서 난 작은 뿔’이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였다.

이를 겔 38-39장과 연관시켜 해석하면 전쟁의 구체적인 양상이 더 명확해진다. 즉 마지막 날들에 있을 곡과 마곡의 전쟁은 남방왕인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일에 북방 왕인 곡이 합세하여 유브라데 전쟁으로까지 확전되지만 오히려 이 전쟁으로 인해 북방 왕인 곡의 세력이 완전히 꺾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에서의 남방왕이나 북방왕은 지엽적으로 애굽이나 시리아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슬람 전체 세력과 극한 북방 세력인 러시아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동맹군의 총대장 러시아

로스는 전쟁을 철저히 준비하고 결전의 날을 기다린다. 전쟁의 시동기는 하나님의 의지에 있으므로 로스는 전쟁을 피할 방도가 없다. 이 침공은 이미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예고된 바이다(겔 38:17). 역사의 마지막 때가 무르익었을 때에 침공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전쟁 상황에 대비하지만 엄청난 동맹군의 급습에 많이 당황케 될 것이다. 에스겔은 동맹군의 공격 능력이 얼마나 막강하며 침공 작전이 전격적인지를 불순한 일기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너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 너는 그들의 대장이 될지어다.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많은 백성이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같이 땅을 덮으리라.”(38:7-9) 동맹군의 총대장은 로스 곧 러시아가 맡는다.

겔 36장과 37장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38장과 39장에 들어와 갑자기 톤이 바뀐다. 앞장들에서는 언약 백성이 완전히 회복되고 다윗으로 표현된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화평의 통치를 말씀하셨는데 뒷장에 들어서면서 그와 정반대되는 무시무시한 전쟁을 선포하셨다. 평안히 거주하던 그 땅 백성에게 마치 구름이 땅을 뒤덮음같이 홀연히 임할 가공스러운 침공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침공의 배후에는 사탄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계신다. 그들이 비록 악한 의도로 이스라엘을 궤멸시킬 목적으로 공격을 감행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전쟁의 방향을 뒤집어 침략자들을 파멸시키신다는 내용이다.

겔 38:16절에는 이렇게 표현되었다. “구름이 땅을 덮음 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서 “끝날”이란 이 전쟁이 종말의 끝자락에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전쟁의 결말은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침공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초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 지진과 전염병과 피와 폭우와 우박과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신다. 악의 세력을 파멸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동원한 자연의 세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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