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1965년 나는 소설 「순교자」를 써서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재미교포 리챠드 킴(Richard Kim) 즉 김은국씨를 만났다. 1964년 이 소설이 발표되자 미국에서는 20주 연속 베스트 셀러에 올랐고, 드디어 서울대학교 장왕록 교수에 의해서 우리 말로 번역되었다. 

나는 리챠드 김이 한국에 온다는 소문을 듣고 소설 「순교자」의 집필자와 번역자인 장왕록 교수를 만나러 발표장에 갔었다. 그때 나는 총신 신대원 2학년 생이었다. 그 때까지 나는 그 소설을 읽은 적도 없고, 다만 그 소설이 인간의 내면적 양심의 소리와 신앙 사이, 그리고 공산주의와 기독교 신앙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휴머니즘을 다루었다는 말을 들었다. 모임의 장소는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 강당에 문학도들이 가득 모였고, 나는 어쩌다가 리챠드 김과 장왕록 교수와 가장 가까운 앞 자리에 앉아서 방청 하게 되었다. 리챠드 김은 약간 어눌한 한국 말이지만 외모가 알베르 까뮈를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번역자 장왕록 교수가 소설 <순교자>의 의미와 번역과정을 설명했고, 리챠드 김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질문 받는 순서가 있었다. 나는 문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리챠드 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알기로는 선생님의 소설 <순교자>에서 휴머니즘의 승리를 다루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순교자>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신학생으로 또는 칼빈주의 세계관을 가진 나로서 질문 했지만, 사실 소설 <순교자>의 의도와 목적과는 초점이 맞지 않는 생뚱 맞은 질문이었다. 여기 저기서 ‘이봐! 앉아!’ 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나는 슬그머니 앉기는 했지만, 지금도 나는 생각하기를 문학이나 예술이나 철학이나 모든 학문은 휴머니즘이 핵심적 사상이다. 즉 문학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으려면 반드시 휴머니즘의 승리를 말해야 된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일생 동안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대결을 삶의 지표로 살아온 나로서는 그 자리에는 별스런 존재였을 것이다. 그 후에 나는 <순교자>를 영화로도 봤고 소설도 읽었지만, 역시 내 질문은 우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 <순교자>는 6.25 동란 중에 아군과 공산군이 쫓기고 쫓는 과정에서, 북한 공산당이 14명의 목사를 체포해서 북으로 끌고 가다가 그 중에 12명을 사살했고 그 중에 두 명은 살아 왔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한 명은 정신병자여서 살아 왔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신 목사는 어찌해서 죽지 않고 살아 남았는가?’라는 의문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후일 국군이 북진해서 보니 12명이 죽고 두 명이 살아 있는 이유를 잘 모른 체 장대령은 그 열두 명을 순교자로 처리해서 예를 다하고 한국 성도들과 국군에게 사기를 높이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이 대위는 의심을 하고 사건의 전말을 파고든다. 그러다가 다시 국군이 북진하면서 당시 12명의 목사들을 총살했던 인민군 장교를 체포하고 심문을 하는 중에 사건의 전말이 백일천하에 들어나게 된다. 사실 공산군이 열 네 명의 목사를 북으로 끌고 가면서 온갖 고문을 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비방하고 겁박을 했다. 그런데 12명의 목사들은 공산당에게 인간으로 할 수 없는 태도로 비열하게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 했다. 그런데 반해서 신 목사는 당당하게 공산군 장교에 대어 들면서 

「나는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죽일 테면 죽여 봐라!」하고 공산군의 고문과 회유에 당당히 맞섰다. 그런데 인민군 장교는 비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12명의 목사들은 총살형을 처했고, 끝까지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당당히 맞선 신 목사에게는 「이 정도의 뱃장을 가진 목사, 끝까지 자기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 목사가 진짜다」라고 살려 돌려 보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신 목사를 순교자가 못되고 배신했다고 했다.

그런데 신 목사는 끝까지 죽은 12명의 목사를 순교자의 반열에 이르게 하려고 그 사건에 침묵하고 어려운 개척교회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적이고 고뇌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스토리다.

그런데 리챠드 김이 쓴 <순교자>에 나온 이야기는 소설의 허구(Fiction)가 아니고 실제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신 목사는 리챠드 김의 고모부인 이학봉 목사의 이야기였다. 이학봉 목사는 죽은 열 두 명의 신상을 침묵하다가 나중에 그 자신이 정말 <순교자>가 되었다. 이학봉 목사는 한국교회의 김화식 목사와 동 연배로 평양의 유명한 목사였고 나는 그가 쓴 설교집 <거룩한 제단의 불>이란 책에서 그의 사상과 삶을 볼 수 있었다. 이학봉 목사님의 아들이 바로 한국 음악계의 위대한 별 테너 이인범이었다. 이인범은 화상을 입고도 일본과 한국의 최고의 성악가였으며, 연세대 음대학장을 지냈고, 그 후 그의 딸 이봉숙 교수도 연세대 음대학장을 지냈다. 

최근에 한국교회는 순교자를 어거지로 만드는 일도 많다. 과거 일경의 총에 맞아 죽고, 공산당의 총칼에 맞아 죽었다고 모두 순교자라 할 수 없다. 당당하게 적과 맞서고 분명한 자기 신앙고백을 한 후 생명을 잃었다면 그런 사람을 참 <순교자>라고 할 수 있다. 

순교자는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만드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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