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눅 5:1-11] 시몬 베드로와 동업자들을 부르심. 누가는 게네사렛 호수(lake), 마태, 마가는 게네사렛 바다(sea)로 표현한다. 예수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호숫가에 정박한 두 척의 어선 중 한 배에 오르셨다. 배들은 어선(漁船)이었고, 어부들이 일을 마친 뒤에 그물을 씻고 있었다. 어선의 주인은 시몬이었다. 예수께서 그에게 배를 요구했고, 배 위에서 무리를 가르치셨다(3절).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했다(4절). 시몬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수확이 없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다고 순종했다(5절). 예수께서 명령한데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다(6절). 시몬은 동업자들을 물러 함께 그물을 올렸고, 두 배에 고기가 가득했다. 시몬 베드로는 뭍으로 나와 예수 앞에 무릎을 굻고 자기가 죄인됨을 고백하며 떠나기를 간청했다(8절). 누가복음만은 예수와 시몬의 만남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베드로의 첫고백처럼 보이는 것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이다(8절).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낭떠러지에서 밀려고 했고, 가버나움 사람들이 예수를 가지 못하게 간청했고, 시몬 베드로는 자기를 떠나도록 간청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셨다(10절). 그들은 육지에 배를 대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11절).

2. [눅 5:12-26] 나병환자와 중풍병자를 고치심. 예수께서 한 동네에서 나병 환자를 깨끗케하셨다(12절). 예수께서 손을 나병환자에게 대시며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13절). 그리고 제사장에게 검증을 받으라고 하셨다(14절). 소문이 퍼졌고 무리는 예수께 몰려왔다(15절). 예수는 그곳을 물러가 기도하셨다(15-16절).

이제는 갈릴리의 각 마을뿐만 아니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 율법교사까지 예수께로 모여 들었다. 누가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했다고 제시했다(17절). 한 중풍병자를 친구들이 지붕에 올라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렸다(19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의 죄를 사해주셨다(20절). 참고, 너희들의 죄를 사하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죄사함을 선언하는 예수의 행동에 대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신성모독이라고 규정했다(21절). 죄는 하나님만이 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21절). 서기관이 말한 “죄는 하나님만이 사하신다”은 기독교의 주요 명제(axiom)이다. 예수께서 인자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셨다(24절). 모든 사람에게 죄를 사하는 주님이 누구인지, 예수께서 죄사함을 직접 실현시킴을 시간과 공간에서 증거로 보여주셨다.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ὅτι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ἐξουσίαν ἔχει ἐπὶ τῆς γῆς ἀφιέναι ἁμαρτίας”(24절).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갔다(25-26절).

3. [눅 5:27-39] 레위를 부르심. 예수께서 가버나움 세관에서 세리(통관관리) 레위를 부르셨다(27-28절). 세리 레위는 예수를 자기 집으로 초청해서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 모습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비방했다. 예수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자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의사라고 말씀하셨다. 인자는 죄인은 사하는 구주이신데, 치료방식으로 회복하는 의사이시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제자도 세리와 함께하는 예수의 모습은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죄사함은 사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내주의 시대가 옴을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의 세례에 머물면 항상 죄에 대해서 제거를 주장하기 때문에 율법주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율법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옛부대이다. 요한의 세례는 율법주의를 극복하려는 것이지만 복음은 아니다. 복음은 죄사함에 새 포도주(성령)이 내주해야 한다. 성령의 내주는 예방주사의 주입이 아니라, 영원한 생수의 터에서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이 된다. 성령의 내주를 위해서는 죄사함이 선행된다. 그런데 성령이 임해야 죄사함이 이루어진다. 성령의 내주와 죄사함은 매우 어려운 서정(order)이다.

5. 전능하신 하나님, 주께서 죄인을 부르셔서 주의 종으로 인도하시니 고맙습니다. 주의 피로 죄를 사하심을 믿으며, 주의 성령의 내주를 믿습니다. 내 안에 주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에 내 입술은 주의 신비를 고백하며 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진한 상태이기에 믿음을 구합니다. 믿음과 능력을 더하셔서 주께서 택하신 백성을 구원할 담력과 복음전함으로 인도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te. 2nd. 2019.12.18.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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