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경상도 사람끼리는 「가가 가가」라고 하면 알아듣는다. 상대방에게 긴 설명을 안해도 서로 통한다. 또 전라도 사람들끼리는 「거시기가 거시기 하다」란 말도 친구들끼리는 다 알아 듣는다. 꼭 찍어서 누구라고 이름을 거명 안해도 알만한 사람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들은 다른 언어권에서도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권에서는 구구절절 설명을 안해도 그 민족끼리, 친구끼리는 몇 마디 단어만으로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도 오랜 세월 동안 서로끼리 통하는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기록한 그 이」또는 「그 이」라는 말은 유대사회에 자주 쓰는 말이다. 성경을 잘 읽어보니 구약부터 신약 전편에 이런 표현이 많다. 예컨대 창49:10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 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했다. 유다 족속 가운데 왕통이 나오고 그 한 분에게 모든 사람이 복종할 것이라는 어떤 그분을 말한다. 알듯 모를 듯 하지만 여기 「실로」와 「그」는 메시야 라는 사실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설명을 안해도 다 통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사야서에 와서는 더욱 확실히 말하기를 사35:4에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 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했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멀리서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처럼 장자 하나님이신 메시야 그가 오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구절절 설명을 안해도 장차 메시야가 올 것이고 메시야를 대망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희망이요 꿈이었다. 메시야를 대망하면서 이스라엘은 <이방의 빛>이 되어 주의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것이 <은혜의 때>이자 <구원의 날>이 올 것이다. 이사야는 53장에 이르러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근접 촬영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서 「그는」이란 말을 10회나 쓰고 있다. 즉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그는 멸시를 받아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곤욕을 당하며…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했고…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 하였느니라…”였다.

오늘 날의 유대인들은 이사야 53장을 제일 싫어하고 <우리>와 <그>를 같은 분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메시야의 고난을 바로 깨달은 사람은 이 성경을 읽고 감격하고 통곡한다.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말하면서 구약의 <그가>바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임을 명백히 밝힌다.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야는 <그 선지자>또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지만 사도 요한은 <그가>태초에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말미암아 지은바 되었고 세례 요한은 <내 뒤에 오시는 그 이다>고 했다. 

또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도하면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선지자가 기록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했다. 왜 빌립은 전도할 때 <기록된 그 이>를 썼을까?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그 이>라고 말하는 것이 메시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욱 이해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그 이>가 <그 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기를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르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했다. 요4:25~25에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이 <그가 오시면···>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로라>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위대하고 웅장한 구속사(Redemptive History)로 봐야 그 때에 성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경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글이 아니고, 성경은 복 받는 비결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내용을 쓰신 것이다. 구약 성경의 중심이 주 예수 그리스도 이듯이, 신약의 중심도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빌립이 말한 대로<기록된 그 이> 곧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곧 복음이다. 복음은 바로 그리스도 사건(Christ-event)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8장에서 집사 빌립도 이사야 53장을 읽고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라고 했다. 빌립집사는 예수님 오시기 전 600년 전 글에서도 <기록된 그 이>를 발견한 것이다. <그 이>가 <그 이>다. 이방 여자 사마리아 여인도 빌립 집사도 발견한 진리 곧 복음에 대해서 오늘의 목회자들은 <기록된 그 이> 곧 메시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빼 버리고, 긍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내 하기 나름으로 복 받는다는 식의 설교가 많아서 참으로 안타깝다.

성탄절이 지났다.   모두가 Christmas! 하지만 그리스도(Chirst)는 없고, 축제(Mas)는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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