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각층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나라를 염려하던 2019년은 막을 내렸다. 2016년 말부터 도화선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전쟁의 해"인 2017년을 시작으로 지난 3년간 한국은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지난 12월 30일 고위공직자 비리를 다루는 공수처(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 설치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공수처에 대한 것은 1996년 1월에 참여연대가 처음 주장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시에 내놓은 공약 1호였다. 고위공직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비롯한 판사와 검사와 경찰 공무원 등 6천5백여 명을 말하는데, 이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기독교 탄압을 위한 기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

성경 말씀을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전쟁이 하나님의 주관하심 속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근심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자신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버둥 친다.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살륙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나의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사 65:12)

한국에 전쟁이 일어날까봐 염려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필자는 정말 답답하다. 현재 한국은 이미 처절한 전쟁터이다. 꼭 핵무기가 날아오고 총소리가 들려야 전쟁인 줄 착각하는 한심한 자들로 꽉 차 있다. 그들은 어떻게든 자기들이 생각하는 전쟁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기에 서울을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엄청난 전쟁터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지금 서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시작으로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쌍방간에 말로 죽이면서도 총칼로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로 꽉 차 있다. 그래서 그런 어리석은 자들의 더러운 말들로 인해 지금 서울은 하루도 쉬지 못하고 더러운 말을 들어야 하는 전쟁터가 되었다.

성경에서 전쟁은 "말"의 전쟁이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영"이며 "생명"이라고 하셨다(요 6:63). 즉 우리가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영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며, 생명을 주는 것이므로 더러운 말을 하면 그는 더러운 영의 사람이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의 사람은 더러운 말을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에서도 공격용 무기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싸움을 말로 시작하고 말로 마친다. 칼에 찔리는 상처는 치료하면 낫지만, 말로 받은 상처는 죽을 때까지 치유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연말에 전광훈 목사에게 영장이 발부됐다. 그를 따르던 이들은 그것이 일종의 종교탄압이라면서 그가 구속되지 않도록 열심히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런데 그를 고발한 측을 보면, 기독교 언론매체인 평화나무도 있었다. 즉 기독교끼리 전쟁을 하면서, 기독교 언론사는 연합군으로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에 요청한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은 서로 잘못할 때에 회개하도록 권면하며 살라고 주께서 명령하셨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보면, 서로 회개하도록 권면하지 않고 세상 법정에 고발을 하여 믿지않는 자들에게 교회가 심판을 받게 하고 있다. 크리스천은 왕같은 제사장 즉 법을 갖고 심판할 권리가 주어진 사람들이다. 땅의 법이 아닌 하늘의 법으로.

그런데 성경도 하나님도 모르는 자들은 하늘의 일을 땅의 법으로 심판하겠다고 한다. 전광훈 목사가 하늘의 법으로 볼 때,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면서도 회개를 하지 않으므로 목사들은 책임감을 갖고 그가 회개하도록 계속해서 그의 잘못을 알려주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가 회개하지 않는다고 세상 즉 땅의 법에 고발하여 땅 차원에서 그를 처리하겠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주의 일을 하는 자는 주께서 보수하시도록 해야한다. 상벌을 주는 것은 세상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이다. 그런데 선악지식나무를 늘 갈망하며 자신이 선과 악을 나누며 심판하고 싶어하는 죄인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선악기준에 맞지 않으면 심판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릴 때는 고자질, 성인이 되어서는 원망과 고발을 잘 한다.

전광훈 목사를 기독교 언론에서 고발하지 않고 세상에서만 고발했다면, 어쩌면 구속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기독교 언론매체는 바른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말도 한다. 특히 이번에 전 목사를 고발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구속되지 않게 하신 것이다.

그들의 방송을 들어보니, 전 목사가 하나님을 멸시한 것 등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필자를 비롯한 진짜 크리스천들 역시 매우 분노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자신들이 심판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 역시 전 목사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앉은 것이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면 그가 누구건 하나님께서 직접 그를 손보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을 모르기에 그들은 전 목사를 세상 법에 호소한 것이다.

경찰에서는 1월 4일부터 집회를 못하게 하려고 했으나 전목사는 계속해서 집회를 하겠다고 했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 목사도 구속되지 않아서 광야 교회 교인들은 할렐루야를 외쳤다. 그런데 정말 총선까지 그곳에서 계속 집회를 하는 것이 할렐루야를 외칠 일일까? 

필자가 지난 번에 "광야 교회"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장소"이며 그곳에서 모든 1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다고 했다. 지금도 광야교회라는 곳에서 전광훈 목사는 하나님을 모욕하며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불교와 하나가 되도록 우상숭배하는 미혹의 길로 이끌고 있다고 했다.

또한 전목사가 하나님을 모욕하고 교회를 모욕해도 전혀 아랑곳하지않고 그를 옹호하는 영적 소경들에게 필자는 끊임없이 "전목사를 옹호하여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애국이 아니라,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 하나님을 멸시한 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공수처가 통과될 것이다"라고 외쳤다. 필자의 말대로 공수처가 통과되었다. 

공수처가 통과된 것을 그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그 일당들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땅의 것만 보는 영적 소경들이 하는 말이다. 공수처가 통과된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회개하기는 커녕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말이 "하나님을 최고로 존경하는 것"이라며 멸시하는 것도 부족하여, 하나님을 희롱한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신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주를) 희롱하여"(마 27:41)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

광화문파들은 전목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을 기뻐하지만, 기뻐할 일이 아니다. 불과 며칠 전인 12월 27일에 조국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었기에 전 목사도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것 뿐이다. 조국은 봐주고 전 목사를 구속시킬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또한 광화문에 나와서 감기에 걸리고 심장마비에 걸리면서까지 그 추위에 나라를 구하고 싶은 애달픈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양 떼들을 주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한번은 봐주신 것이다.

열왕기상 21장 21절 이하를 보면, 엘리야가 아합 왕을 만나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며 이스라엘에 우상숭배하도록 이끈 아합가의 멸망을 선포한다. 그러자 아합은 자기의 옷을 찢으며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걸음걸이도 천천히 하였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라고 하셨다. 결국 예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아들 북왕국 요람 왕과 남왕국 아하시야 왕을 비롯하여 70명을 전멸시키신다. 온 국민을 우상숭배하는 자리로 이끈 죄의 결과는 그 집안의 대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하셨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복"이다. 이 "복"을 알아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땅의 복만 추구하며 자기의 나라만 구하는 자들은 "주여, 주여"하고 외치며 불법을 행하면서도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병자도 고치고, 귀신도 내쫓고, 선지자 노릇을 했는데, 왜 우리가 불법을 행했다고 합니까?"라며 따진다.

그래서 필자는 미련한 양들 같이 잘못된 길로 달려가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영적 지침이 되도록 알려주기 위한 펜을 든 것이다. 분별력이 없어서 무조건 애국이라면 하나님을 모욕하고 희롱해도 되며, 애국이라면 부처의 도움도 받아야 하며, 애국이라면 이단적인 발언을 하건 성경과 반대로 매우 무지한 말을 하건 괜찮다고 여기도록 미혹하는 것을 알려주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곳에서 나와서 빛되신 주님을 따라 영적으로 눈을 뜨게 해주기 위해서이다.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사 53:6)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3)
■ 마 23:13-15
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이사야 29:9-14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

교회의 리더가 된 자들 즉 목사들은 주님의 양 떼들이 미련하여 각기 제 길로 가려고 할 때에 말씀으로 강하게 끌고 가야 한다. 그런데 목사들조차 말씀의 칼이 없으니 주님의 양들이 미혹의 길로 이끌려가도 무기력하게 놔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화문에 나오지 않는 목사는 믿음이 없는 목사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 말도 못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로마로부터 해방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은 "여호와의 얼굴이 그들을 향하는 것"이며 가장 큰 저주는 "여호와께서 얼굴을 돌리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얼굴을 보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들의 소원대로 주께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것과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자들은 주님을 그들의 메시아로 확신하고 그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아우성치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로부터 도망치듯 떠나셨다. 주님을 왕으로 세우고 싶었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 나라보다 자기 나라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사정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로마로부터 독립이 되건 말건 그들이 듣고싶어하는 말씀은 전혀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만 말씀하셨다. 주님의 얼굴을 뵙기를 원했던 그들은 결국 "그 얼굴 치우세요. 우리는 그런 얼굴을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라며 주님의 "오른뺨"을 쳤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 5:39)
성경에서 오른쪽은 "옳다", "의롭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그들은 "의로운 주님의 얼굴"을 보기싫다고 침을 뱉고 쳤던 것이다. "왼편도 돌려대라"라고 번역된 "왼편"의 헬라어 "알로스"(ἄλλος)는 왼쪽이 아니라 "다른 것"(different, one (another), other)이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의로운 얼굴을 보기 싫었다. 그들이 원하는 얼굴은 나라를 구하려는 혁명가 예수 바라바와 같은 얼굴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 나라를 구할 혁명가 예수 바라바였다. 그리스도와 바라바가 똑같이 "예수"라는 구원자란 의미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묵상해야 한다.

결국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를 구하고 싶은 열망 하나로 자기들이 왕이 되어달라고 그렇게 따라다녔던 예수 그리스도를 로마에 넘겨 죽여달라고 아우성쳤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하는 자들을 좌빨이라며 죽이려고 달려드는 광화문의 열성당원들은 애국이 먼저라면서 전광훈이라는 혁명가의 얼굴만 보기 원한다. 그들은 혁명가 바라바를 자기들에게 달라고 하면서 대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유대인들과 너무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이 광화문에 모여서 "하나님과 천주님과 부처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라고 외치며, "내년 총선까지는 부처님의 힘도 필요합니다", "하나님 내가 하자는 대로 안 하면,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는 말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찬사라고 외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희롱하며 침 뱉고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한 마디로 정신이 나간 자들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제 정신이라면, 하나님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해서 죽은 부처의 도움까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도 모르는 자들이 나와서 저런 더러운 말을 하는데도, 그게 뭐가 어떠냐고 한다.

■ 레위기 26:15-20
15.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찐대
17.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18. 너희가 그렇게 되어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면, 너희 죄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칠 배나 더 징치할찌라.
19. 내가 너희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고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20. 너희 수고가 헛될찌라.

■ 바라크(בּרךְ): 송축하다, 복(福)주다 (bless)

전광훈목사가 자기 변명을 하면서 가르친 "송축하다"라는 말에 대해 살펴보자.
"내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했다고 난리났어. 뭐 전광훈 목사가 신성모독했다고.... 야, 이 개새끼들아. 그렇게 성경을 모르냐, 목사 새끼들이 되가지고..."라며 전 목사는 "송축하다"라는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송축하다라는 말을 찾아보면, 하나님이 나를 축복한다는 말이 전혀 아니야. 그런 말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축복한다는 말이야, 애교떤다는 말이야. 요즘 말로 하면, 손주들이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오래 사세요." 이게 하나님을 향하여 "내가 여호와를 송축한다" 이런 뜻인데, '송축'이라는 말의 원어를 깊이 추적해 보면, "내가 하나님께 안수기도 해주고 싶다"는 뜻이야. 아니 사람이 하나님께 안수기도 해줄 수 있나? 그거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극단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거에요. 믿습니까?"

"전광훈 목사가, 하나님 내가 애국운동 하는데, 내가 하자는대로 안하면,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했단 말이야. 그런데 이걸 성경을 제대로 모르는 인간은, 전광훈 목사가 신성모독했다는 거야. 야! 전광훈 목사하고 하나님과 가까와진 사이가 니들하고 같은 줄 알아? 나는 하나님하고요, 얼마나 깊은 관계를 가지고 사느냐? 농담해요. 농담. 아멘? 할렐루야!"

"그런데, 지들 신앙이 개떡이니까, 내가 하는거 보고 신성모독이라고 하면서 인터넷 돌리고 난리났는데, 예수 안 믿는 김진 의원이 조금 전에 보니까 방송을 했는데 "전광훈 목사가 발언한 그 발언은 최고로 하나님을 존경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방송을 하는거야. 아니 예수도 안 믿는 김진 논설위원도 알아차리는데, 목사 새끼들이 어찌 그렇게 모르냐? 여러분, 이제 알았어, 몰랐어?"

"이제 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이 말은 전광훈 목사가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최고의 사랑에 대한 애교를 떤 사실을 이제 알았으면 아멘 해봐. 그래서 이제 전광훈 목사를 비방하는 놈들은 주먹가지고... 이건 신학적으로 사실이야. 사실. 믿습니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진짜 성도라면,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느끼면서도 괜찮다고 하는 자들이야말로 한국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전 목사는 "송축하다"라는 단어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준다는 말이 전혀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안수기도 해주고 싶다"는 뜻이라고 한다. 기독교의 기본적인 "복"의 개념을 완전한 인본주의로 그리고 하나님보다 인간을 위에 놓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 이는 반역 중의 반역이다.

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께 안수기도를 해주고 싶다는 말로 변질시킨다는 말인가! 이는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그가 말한 "송축하다"라는 히브리어 "바라크"(בּרךְ)라는 단어가 제일 처음 쓰인 것은 창세기 1장에서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 "복을 주다"라는 뜻으로 두 번 쓰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바라크 בּרךְ)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창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바라크 בּרךְ)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와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

여기에서 ‘복’(福)이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함이란 무엇일까? 많은 설교자들이 전도를 못하면 아이라도 많이 낳으라고 한다. 그것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일까?
사람들은 ‘복’(福)을 하늘의 생명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땅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성취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생명의 양식을 먹어보지 못한 이들은 하늘의 것을 땅의 것으로 해석하려고 하고 땅의 개념과 국어시간에 배운 단어의 뜻으로 풀이하려고 한다. 그것을 소경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성경에서 ‘복’(福)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아브라함이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어 "복이 되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의 자손이 창대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많은 자녀를 낳았어야 하는데, 본 부인 사라를 통해서는 이삭 한 명만 낳았다. 그것도 결혼해서 사라는 25년간 전혀 출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복을 받은 사람일까?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노아가 600세가 지난 후에 말씀하셨다. 또 창세기 35장을 보면, 야곱은 이미 12 아들을 낳았고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은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을 받았다. 이미 자녀를 다 낳은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받았다면, 그것이 정말 자녀를 많이 낳으라는 의미일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을 설명하는 "생육, 번성, 충만"은 국어시간에 배운 단어의 뜻과 의미가 다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의 씨 즉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으신 예수 그리스도만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생육'이라는 말은 신랑이신 남편과 한 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자기를 부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만 살아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갈 2:20). 

'번성'이라는 것은 신랑과 한 몸이 되었으면 그분의 씨인 복음을 받아서 잉태하는 것을 말한다.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잉태하는 것을 성경은 종의 신분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는 것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반드시 종이 아닌 사라가 되어 이삭을 낳아야 한다. 종은 주인과 한 몸이 될 수 없다. 아내가 남편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첫째로 생육이라는 것은 종이 아닌 아내로서 주님과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에베소서에서 남편과 아내를 설명하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 에베소서 5:31-32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렇게 신랑을 만나 결혼하고(회개와 연합)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잉태하여(양육과 연단) 예수라는 아들을 낳아(복음 전파)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이라고 하며 그것을 성경은 "복"이라고 말씀한다.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복을 구하는 자를 주님은 "주여, 주여"하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이므로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신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을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말씀한다. 

아브라함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말씀은 여럿이 아니라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12지파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시고 번성케 하셨으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번성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오실 메시야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낳아 복음의 열매가 맺혀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에는 복을 받는 자에게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복을 주시는 분께서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이 무언가 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삭과 이스라엘을 평생 괴롭히는 이스마엘을 낳게 된 것이다.

따라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언약을 하신 것이며, 그 언약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역자의 뜻을 가진 여자 마리아(미리암 מִרְיָם 뜻:반역 rebellion)를 통해 오셔서 한알의 밀알이 되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으신 것이다. 우리에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하신다는 것이며 그분께서 약속대로 이루셨다.

이러한 "복"(바라크 בּרךְ)이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향할 때는 "복을 주다"(bless)로 쓰였고, 인간이 하나님을 향할 때는 "송축하다" 이외에 "무릎꿇다, 경배하다, 저주하다"(to praise, salute, to kneel, kneel down, curse, blaspheme)라는 뜻으로 쓰였다. 

특이한 사실은, 복과 저주를 바라크(בּרךְ)라는 단어로 같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늘 이분법으로 나누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 안에서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하나의 날)이니라(יֹום אֶחָֽד 욤 에하드)"라는 것처럼(창 1:5) 주 안에서는 저녁과 아침이 둘이 아닌 하나이며, 어둠과 빛도 하나라는 말이다. 어둠이 있어야 거기에서 빛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blaspheme, 바라크 בּרךְ)"(왕상 21:10, 13)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bless)"(시 16:7)
"여호와를 찬송함이여(blessed)"(시 28: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bless)을 주시리로다"(시 29:11)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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