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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람성경] 누가복음 7 장.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죄사함의 복음을

1. [눅 7:1-10] 백부장의 종을 치료하심.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계실 때 어떤 백부장이 자기가 사랑하는 종의 병을 고치려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냈다(3절). 그들이 백부장들이 예수께 나가 백부장의 간청을 수용해 줄 것을 제안했고(4-5절) 예수께서 동의하며 그 집으로 향했다(6절). 그 집에 다다를 때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예수께서 자기 집에 오심을 고사(苦辭)했다(6절). 예수께서 그의 행동에 놀라시며 백부장의 믿음을 인정하셨다. 그리고 백부장이 집에 들어가니 종이 나아 있었다(10절). 누가복음에서는 백부장이 대리인을 보내어 진행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마 8:5-13; 요 4:43-54).

2. [눅 7:11-17]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심. 예수께서 나인성(나사렛 남동쪽 9.6km, 가버나움 남서 40km지점)에 이를 때에 성(成)에 사는 과부의 아들의 장례가 있었다(11-12절). 주께서 과부를 불쌍히 여겨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다(14-15절). 모든 사람이 놀랐고 예수의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퍼졌다(17절).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은 복음서에 3번 등장하는데, 나인성 과부의 아들 살림은 누가복음에만 있다. 누가는 죽은 자를 살림을 매우 간략하게 기술했다.

3. [눅 7:18-35] 세례 요한의 제자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 행적을 요한에게 보고했다(18-19절).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질문했다. 요한은 예수께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질문했다(19절). 그 질문을 받은 예수는 맹인이 보며 나병환자가 깨끗케되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답하셨다(22절).

요한의 제자가 떠난 뒤에, 예수께서 구약과 요한의 시대의 종결을 선언하셨다(28절). 예수에 대한 풍문을 자기화하며 말씀하셨다. 인자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이다(34절).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옳다함을 얻는다(But wisdom is justified of all her children). 주의 자녀는 주(主)를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이 보낸 의심에 대해서 한계를 인지시키는 것이다. 계시가 완료된 지금은 구약 계시로의 한계를 보인 것이다. 계시는 성경 66권이어야 한다. 세례 요한이 부족했다면,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율법교사), 사두개인들, 유대인들은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새관점학파는 1세기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로 제시하고,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철원 박사는 그러한 주장, 자유주의 주장으로는 예수의 죽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변증했다.

고경태 박사

4. [눅 7:36-50]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 예수께서 어떤 바리새인의 자기 집에서 잡수실 것을 청했다. 그 바리새인 집 식탁에 앉으셨을 때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향유 옥합을 가져와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38절). 바리새인은 그러한 행동과 상관없이 그 여인이 죄인이라고 정죄했다(39절). 그리고 그 여자를 만지면 어떤 사람도 죄인이라고 선결(先決)했다(39절). 예수께서 시몬에게 빚진 자 두 사람의 경우를 비유로 말씀하셨다(40절). 두 빚진 사람 중 탕감을 받았을 때에 어떤 빚진 사람이 탕감한 사람을 사랑하겠는가?라는 질문이다. 시몬은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답했다(43절). 예수께서 그 답을 듣고 여인에게 죄사함을 선언하셨다(47-48절). 예수께서 음식을 대접하는 바리새인과 향유를 발에 부은 여인의 사랑을 비교하시면서, 여인의 죄를 사하셨다. 바리새인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예수를 사랑한 것이다. 매우 역설적인 비유이다.

누가는 인자가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마 9:1-8; 막 2:1-12, 눅 5:17-26)에 추가된 죄사함에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죄사함과 예수를 사랑함을 비교했는데, 탕감받은 후에 사랑으로 비교했지만, 실재는 탕감받기 전의 태도이다.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기 죄를 사함받기를 간절히 간청한다. 예수를 단순하게 사랑하는 것은 결국 예수께서 죄를 사하는 죄인을 단죄하며, 그 죄인을 사랑하는 예수까지 단죄하게 된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죄를 사하시는 구주 예수님을 깊이 사모해야 한다. 그것은 죄사함의 권세와 실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예수는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 하나님이시다. 죄사함은 믿음의 주께서 믿음을 주시고 믿음으로 인해서 선고하신다. 그래서 믿음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자기에게 믿음을 주지 않았다고 항의할 수 있을 것인데, 믿음을 받지 않은 바리새인은 믿음을 받은 여인을 거부하고 정죄한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모습을 기쁘게 인지하고 사랑하며 함께한다. 기독교는 죄사함의 종교로서, 죄를 사하시는 구주께서 만유의 주이심을 믿는 것이다.

5. 전능하신 하나님, 죄사함의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보내시니 고맙습니다. 이 복음이 땅끝이었던 은둔의 땅 조선에 주셨고 지금까지 이 땅에서 주의 교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땅에서 죄사함을 주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도될 수 있도록 주를 믿는 자를 세워 인도하소서. 주 예수를 사랑하는 자들이 구주 예수를 믿고 전하도록 성령의 권능을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te. 2nd. 2020.01.08. 형람서원 고경태

고경태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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