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적 시간 이해는 시원(始原)으로부터 산출되고 다시 그것으로 되돌아가는 영겁회귀 사상입니다. 이런 희랍의 영겁회귀 사상을 근대에 들어 다시 부각시킨 사람이 니체(Friedrich Ŵ, Nietzsche, 1844-1900)였습니다. 그는 신의 죽음으로 피안적인 것에 대신하여 차안적인 것(지상적인 것)을 본질로 하는 생을 주장하고 영겁회귀에 의해 삶의 긍정의 최고 형식을 밝혔습니다. 그는 자기 사상이 기독교 세계관과 대립된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런데 신을 부정하고 시간의 영겁회귀를 주장한 니체는 생의 말년에 정신이상자가 되었고, 그 이후 정신착란인 채 사망했습니다.

성경에서 시간 이해는 희랍적 시간 이해와 다릅니다. 창조와 종말이 있는 직선적인 것입니다. 시간이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설정된 틀입니다. 시간은 피조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시간은 창조에서 타락을 통해서 종말로 나아가는 직선적인 과정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낙원의 시간은 영원 속의 시간이었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이 생존하는 방식인 시간은 시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실낙원의 시간은 생성소멸하고 죄와 죽음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을 구속하기 위해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요 1:5-3, 14)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영원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인류는 새로운 시간, 구속받은 시간 속에 거합니다.

어느 누구든지 타락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영원에 참여하지 않는 한 타락한 세상 속의 시간 체험은 불안정하고 안식을 얻지 못합니다. 인간의 무상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유명한 중세교부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날에는 참 존재가 없습니다. 우리의 날들은 오자마자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번 지나가버린 과거는 다시 회복할 수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지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직 오지 않았을 때는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지 못했고, 이미 왔을 때는 그것을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시간의 무상성을 통해서 인간은 영원자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찾고,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으로 우리 인생 모든 문제가 처리되고 해답을 얻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으로 깊이 뿌리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무상한 세월이지만 그리스도 안에는 참된 인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복음 받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2020년 365일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시간의 주인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주신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입니다. 세계복음화의 사명에 시간을 잘 사용할 것입니다. 모든 시간은 기도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시간을 선용할 것입니다.

임 덕 규 목사┃육군사관학교 졸업┃서울대학교 법대 및 동대학원 졸업(법학박사)┃대한신학교 졸업┃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졸업(M.A., M.Div.)┃육군사관학교 법학과 교수 역임┃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충성교회 담임목사
임덕규 목사의 최근 저서. <열왕기상 강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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