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희 목사의 바이블시선】 (19) 설 명절에 부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크리스천 가이드> <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진 전적인 은혜의 사건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힘이 아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힘으로 산다는 뜻이다. 죄인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라면 의인은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삶이다. 여기서 의는 관계를 뜻한다. 의인은 하나님과 이웃과 관계를 잘 맺는 삶이다. 신앙은 관계다. 그중에서 하나님과 관계가 가장 어렵다. 하나님과 관계는 보이지 않기에 그것이 올바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지침은 이웃관계를 통해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는 보이는 이웃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과 이웃과 관계는 결국 같이 나타난다. 보이는 이웃관계를 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이웃과 관계는 교회 속에서 성도와 관계를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교회의 성도는 영적인 가족이며 영원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부모와 관계다. 그리고 이것은 부부관계, 자녀관계, 이웃관계. 원수관계, 국가관계, 물질관계 등으로 나타난다.

이것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은 로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등 서신서에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 핵심내용이다. 서신서들의 특징은 전반부에는 보이지 않는 믿음에 대해서, 후반부에는 보이는 이웃 관계속에서 실천되는 면을 다루고 있다. 이런 면에서 서신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점검하며 훈련하는 메뉴얼이다. 세상의 문제는 모두 이것이 무너질 때 발생한다. 보이는 이웃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가족관계다. 가족을 보면 인생이 보이고 세상이 보인다. 가족관계는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영역이다. 가족관계를 잘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가기 어렵다.

 

부모 자녀 간에 갈등의 원인, 생활비

요즈음 신세대들에게는 가족관계가 이전과 많이 다르다. 이제는 결혼식도 주례자 없이 둘이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족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부모와 자녀관계도 많이 달라졌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부모도 죽을 때까지 스스로 자기 살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청년들의 취업까지 어려워지면서 자녀들이 부모들의 노후까지 책임지거나 보살피는 것이 힘든 세상이 되고 있다. 갈수록 홀로 버려진 노인들이 많아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는 가족의 유대보다 각자 자기 살길을 찾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세대간에 갈등하는 가정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전통 가족관이 사라지고 신세대 문화로 양상이 바뀌고 있다. 그중에 가장 민감한 부분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생활비를 드리는 경제적 문제다. 생활비를 얼마나 드려야 하는 것에 대한 원칙이 없다 보니 각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부모는 생활비 문제로 자녀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자녀들은 생활비를 드리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질주의가 지배하면서 이 문제는 갈수록 심각한 가정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것이 잘 정립이 안 되면 결혼 이후까지 부모와 갈등을 야기하는 주원인이 된다.

 

생활비가 아닌 공경비

그렇다면 생활비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는 무엇일까? 각자 처한 상황과 생각이 다르기에 원칙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실 이것은 명칭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생활비에서 공경비로 명칭을 바꾸는 것도 생각해 볼 대안이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말한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엡 6:23)” 라고 말씀한다. 여기 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음과 생각과 물질적인 것도 포함된다. 부모에게 생활비를 드리는 것은 생활에 필요한 경제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생활비 보다는 용돈을 드리는 측면에 강하다. 지금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생활비는 용돈수준이고 생활까지 책임지는 경우는 적다. 만약 생활비로 이해하면 재산과 연금등으로 보장이 되는 부모에게는 굳히 생활비가 필요 없다. 이런 점에서 부모에 드리는 것을 용돈이나 생활비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공경비라는 명칭이 어떨까 제안한다.

부모에게 드리는 물질은 자녀에게 주는 용돈이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생활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물질에 초점이 있는 명칭이다. 하지만 부모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드린다는 것은 물질 이상의 마음에 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공경비를 드리는 것은 얼마라도 물질을 드리는 일을 통해 부모를 생각하고 관계를 좋게 하는데 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드리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실천적인 모습이다. 믿음이 행함으로 이어질 때 산 믿음이 되듯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말로만 아닌 물질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까지 나가야 그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물질의 정도는 공경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환경에 따라 최선을 다하면 된다.

 

부모 공경은 복의 출발점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맡은 종들처럼 은혜를 느끼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공경의 마음을 전하면 된다. 그런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장수와 잘되는 복을 주실 것이다. 구약의 족장의 이야기는 모두 부모를 통해 복이 이어지고 있다. 부모를 존경하는 자녀에게 축복을 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복이 어어진다. 부모를 공경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맺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부모이전에 하나님이다, 부모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통로다. 부모를 거역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는 멀어진다. 아울러 모든 복도 사라지고 그이후의 인생은 저주가 된다. 아무리 노력할지라도 그것은 헛수고다. 뿌리 없는 나무는 이미 죽은 것이다.

세상에서 축복 받는 최고의 비결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선적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모가 누구인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잘 안되면 부모 공경이 힘들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신을 공경하는 것이고 부모를 주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부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의 출발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운 질서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를 무조건 공경해야 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것은 부모를 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첫출발점이다, 그래서 구약 율법에는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자녀는 돌로 쳐 죽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존재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얼마 있으면 자녀가 다시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단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설사 하나님을 거역하는 부모라 할지라도 나를 낳아주신 그 존재론적인 면에서는 나보다 우선적이기에 그것을 함부로 판단하고 쉽게 무시하면 안 된다. 나도 같은 죄인이기에 그것을 빌미로 부모에게 불순종을 정당화 하는 것은 악하고 합당하지 않다.

십계명 중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다. 부모 공경은 안식일을 지키는 4계명과 더불어 “하라‘에 해당되는 명령이다. 부모 공경은 이웃 사랑의 첫 출발이다. 네 부모를 잘 공경할 때 이웃도 내 몸처럼 공경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부모에게 공경비를 드리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법을 배우자. 곧 있으면 가족 간에 만나는 설 명절이다. 이 날을 부모를 공경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그런 마음으로 부모를 찾아뵙고 마음으로 감사하며 공경하는 시간이 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크신 복을 허락하실 것이다. 점차 가족과 부모와 관계가 멀어지고 이기적인 세상의 문화에 이끌리지 말고 하나님이 세운 질서에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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