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눅 9:1-9] 12제자를 파송하심(마 10:5-15; 마 14:1-12, 막 6:7-29). 예수께서 성과 마을에 12제자를 파송하셨다(1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과 병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잃은 자를 고치게 하도록 하셨다(2절).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수행할 매뉴얼을 제정하셨다(3-5절). 무소유, 어느 집에 머뭄(영접과 거부)의 방식이다. 제자들은 각 마을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5절).

예수님께서 파송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원리이고, 문자적인 의미로 보기 어렵다. 초대교회는 순회 사역자로 교회 설립되었는데, 점차 정착 사역자로 구성되었다. 지금도 순회 사역자는 선교사로 볼 수 있고, 정착 사역자는 목사로 볼 수 있다. 선교사는 순회 사역이나 네크워크 사역으로 교회를 세우며 외연을 확장하고, 목사는 지역을 포괄하며 지역 안에서 복음을 증진하며 정진한다.

제자들의 전도 사역으로 예수 이름이 왕성하게 퍼졌다. 이 소식을 들은 분봉왕 헤롯은 깜짝 놀랐다. 예수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인 요한이 생각났기 때문이다(9절). 이제 예수의 행적은 헤롯까지 인지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헤롯은 예수가 요한은 아니라고 확정했다. 예수는 헤롯에 대한 비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누구일까?

2. [눅 9:10-17] 오병이어(마 14:13-21; 막 6:30-44; 요 6:1-14). 예수께서 전도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과 함께 벳세다 고을로 이동했다(10절). 무리들이 예수의 이동 경로를 따라왔다.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셨다(11절). 그들은 제자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께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을 고쳤다(11절). 제자들에게 주신 매뉴얼과 동일하게 예수께서 행하셨다(6절, 11절). 자기들에게 온 무리들과 함께 하신 것이다.

날이 저물도록 예수께서 무리에게 가르치셨다. 날이 저물자, 예수께서 그들을 먹이려고 계획하셨다. 그러나 빈들이기 때문에 양식이 없었고, 근처에서 많은 무리를 먹일 음식을 공수할 수도 없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빈들에서 음식을 공궤하도록 명령하셨다. 제자들은 오병이어만 있을 뿐이라고 보고했다(13절). 예수께서 남자가 오천명이 되는 수를 오병이어로 축사하시어 먹이셨다(16절).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았다(17절).

3. [눅 9:18-27] 베드로 사도의 예수 고백(마 16:13-28; 막 8:27-9:1). 예수께서 무리들에게서 떨어져 기도하셨다. 그리고 기도하시던 곳에서 함께 있는 제자들에게 주께서 질문하셨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8절). 제자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답했다(19절). 예수께서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셨다(20절). 베드로 사도가 “하나님의 그리스도(Τὸν Χριστὸν τοῦ Θεοῦ)”라고 대답했다(20절). 예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알리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리고 인자가 고난을 받아 죽을 것과 삼일에 부활할 것을 선언하셨다(22절). 그리고 예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셨다(23절). 자기 십자가는 자기 부인을 말한다. 자기가 죽을 것 같은 수준에서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복음 예수를 따르면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시며, 모든 것을 통치하는 권세자였지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영접함, 구원을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누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겠는가? 사람으로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참고로 마태복음에서는 고백하는 시몬에게 아버지로 받은 지식인 것과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움을 말씀하셨다(마 16:17-18). 요한복음에서는 마르다(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11:27)와 사도 도마(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 요 20:28)가 고백했다.

우리시대에는 예수님을 ‘혁명가’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정치적으로 이해하면서, 정치적 혁명가로 제시하기도 한다. 동일하게 세상이 그렇게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누구라고 말할까? 사도 베드로의 고백을 반복해야 한다.

4. [눅 9:28-36] 예수의 변화(마 17:1-8; 막 9:2-8). 예수께서 제자들과 말씀하신 후 8일쯤 되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28절).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었다. 두 사람이 예수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모세와 엘리야였다(30절). 그들은 예수께서 영광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31절). 베드로는 자다가 깨어 영광스럽게 변한 예수의 모습과 두 사람(모세와 엘리야)을 보면서 초막 셋을 짓고 살자고 제안했다. 베드로는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때에 구름이 덮었고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35절). 소리가 그치자 오직 예수만 보였고 제자들은 평정심을 회복했다.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도록 경고했다(36절).

첫째, 참된 평안은 예수에게 있다. 환상(fantastic)이 평안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을 때나, 구름 속에서 나오는 소리(아버지의 소리)를 들을 때에도 제자들은 평안이 없었다. 비몽사몽(非夢似夢)한 상태에서는 절대 바른 고백을 할 수 없다. 참된 고백은 진리 위해서 가능하다. 두 요소가 사라지고 오직 예수만 보일 때 제자들의 마음은 잠잠하게 되었다. 중보자의 사역은 자기 백성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 베드로의 고백이나, 변화산에서 요청을 모두 거부하셨고, 발설을 금지하셨다.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가 찼을 때에도 전할 것은 주의 이름이다. 주를 전파하는 것은 성령이 임할 때에 가능하다.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를 증언하여 생명을 얻게할 수 있다. 주의 이름을 듣고 믿는 자는 그가 행하신 일(그리스도의 사역)을 묵상하며 믿음을 굳건하게 한다.

5. [눅 9:37-43] 귀신들린 아이를 낫게 하심(마 17:14-18; 막 9:14-27). 예수께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뒤에 아침에 산에서 내려오셨다(37절). 어떤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놓고 제자들에게 간청했었다. 산에서 내려오시는 주님을 보고 달려가, 제자들이 귀신을 쫓지 못함에 불만을 제기했다(38-40절). 예수께서 그 아들을 치료하셨다(41-42절).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예수께서 누구를 꾸짖으셨는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faithless and twisted generation)”를 꾸짖으셨다. 믿음이 없어 고치지 못하는 제자, 제자들이 고치는지 호기심을 가진 무리들, 고치지 못하면 고발하려는 서기관, 믿음이 없어 당황하는 아버지, 귀신에 들린 아이... 모두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이다. 어느 누구도 겸손하게 주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없다. 마태복음은 믿음이 작다고 말씀하셨고(마 17:20), 마가복음에서는 기도가 없다(막 9:29)고 말씀하셨는데, 누가복음에는 생략되었다.

6. [눅 9:44-48] 제자들의 생각(마 17:22-18:1-5; 막 9:30-37). 제자들은 자신들이 귀신을 쫓지 못함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큰 자리에 관심이 있었다(46-48절). 예수는 자신의 죽음의 길을 선언하셨다(44-45절). 제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그 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향상에만 관심을 두었다. 사람은 항상 자기 관점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본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 관점에서 자기 필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구속의 도리를 아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서로 큼을 주장할 때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자, 작은 자가 큰 자라고 정의하셨다(48절). 예수께서 자기를 영접하면 자기를 보내신 이를 영접한다고 말씀하셨다(눅 9:48).

7. [눅 9:49-62] 예수의 제자. 요한 사도는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금지했다고 예수께 보고했다(49절). 예수께서 요한에게 그러한 것을 금하지 않도록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된 것을 알고 사마리아를 여행하셨다(50절). “승천하실 기약”(51절)은 누가의 특이한 기록이다.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 사마리아를 향해서 야고보와 요한이 불을 내려 벌을 내리라고 예수께 요구했다. 예수께서 그들을 꾸짖으시고 인자는 생명을 구하러 오심을 밝히셨다(55절). 그리고 다른 마을로 가시어 전도하셨다(56절).

예수께서 어떤 사람이 나와서 따르겠다고 선언했다(57절). 예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58절).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다(62절). 이 본문을 사역자의 이중직 금지로 적용하기도 한다. 텐트메이커(tent maker)인지 이중직(double job)인지 매우 구분이 어려운 시절(악한 세대)이 되었다. 필자는 전도자에게 복음을 알고 전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에 관점을 둔다. 예수를 따르는 사역자는 복음을 명료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의지와 능력으로 나누는데, 의지를 앞세우지 않고 능력으로 사역한다. 그 능력은 보이는 형식적 능력과 보이지 않은 영적 능력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

예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제자를 위한 자이다(50절). 반대로 제자를 반대하는 것은 예수를 반대하는 것이 된다. 예수를 바르게 따른다고 하면서 교회를 공격하고 조롱하는 것은 정의를 가장한 교묘한 거짓이다. 예수를 따르지 않지만 교회에 도움을 주고 함께하는 사람은 가만히 두어도 된다.

8. 전능하신 하나님, 복음을 영접한 주의 자녀로 주를 하나님의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온전한 고백을 이루게하옵소서. 미혹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의 이름을 온전히 증거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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