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가정에서 나는 소리만 들어도 그 가정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음악가의 가정에서 피아노 소리만 나는 것은 아니다. 군인 가정에서 기합 소리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믿는 가정과 불신 가정은 분명히 소리가 다르다. 30년 전, 사당동 판자촌에서 개척할 때, 교회와 집 사이 거리가 상당했다. 교회에서 집으로 오는 두 가지 옵션이 있는데, 버스가 다니는 큰길과 언덕을 넘는 좁은 길이 있다. 행여 혼자 오는 길이면 조금 빠른 길로 오려고 판자촌이 밀집해 있는 산등성이를 넘게 된다. 지나면서 틀림없이 세 가지 소리 중 하나를 듣는다. 하나는 개 짖는 소리, 둘은 아이들 떠드는 소리, 셋은 술 먹고 다투는 소리이다. 오늘 우리 가정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축복이 되고, 은혜가 되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

찬송 소리이다. 14절에 시인은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다” 찬송 소리는 힘이 된다. 많은 은혜와 감동을 준다. 전에 적은 적이 있었지만, 언젠가 대학원생들 성경공부를 지도할 때 유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하는가? 영화를 본다. 여행을 간다. 테니스나 농구를 한다. 등 많은 말들이 나왔다. 그런데 한 학생이 말했다. “저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찬양을 듣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학생이 동감했다. 나 역시 찬송가 부를 때나 들을 때 가장 편안하고 힘을 얻는다.

기쁜 소리이다. 앞에 판자촌 이야기를 들었지만, 현대인들은 30년 전 판자촌보다는 분명 훨씬 잘살고 있다. 거리에 알코올 중독자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예전보다 삶이 기쁘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15절에 “의인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가 있다”라고 했다. 웃음소리이다. 성도들 가정에는 불평불만보다 기쁜 소리가 들려야 한다.

구원의 소리이다. 역시 15절에서 시인은 의인의 장막에 구원의 소리가 있다고 했다. 복음의 소리이다. 교회에서 복음의 소리를 듣는가? 원로 신학자 한 분은 은퇴 후 교회를 돌아다니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강단에서 복음을 전하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탄했다. 복음이 아니라 유사복음이 활개 치는 강단이 많다. 다시 한번 교회와 성도들 가정에서 복음이 들려져야 한다.

1800년 대 프랑스 가정의 가정예배 모습 ,<family worship>,Jean-Baptiste Greuze (1725&#8211;1805)

감사의 소리이다. 19절에는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라고 외쳤다. 의의 문, 하나님의 성소의 문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고백이다. 정말 성도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간에 감사하다는 말이 많아져야 한다. 믿는 가정들이 왜 불평하고, 짜증 내며, 싸우는 소리를 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서 ‘성경의 식탁 - The Table’을 주제로 공부했다. 가정의 식탁, 즉 가정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의 식탁, 즉 교제와 구역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일터의 식탁, 즉 일터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을 나눌 때 기도의 테이블, 전도의 테이블, 위로와 격려의 테이블로 만들자는 것이다.

제일 먼저는 잃어버린 보물인 가정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대부분 시간이 없다. 인도자가 없다. 가족들끼리 쑥스럽다는 이유로 가정예배를 포기하고 만다. 우리는 365일 말씀 캘린더를 배부하고, 하루에 한 구절씩 읽고 그저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성구를 설명해주고, 대화하면서 기도 제목을 묻고 위해서 기도하면 된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어렵다고 포기할 수 없다. 모든 성도의 가정에 찬송 소리,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 감사의 소리가 들리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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