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62) - 요나서 (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욘2:9).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생각

요나서는 재미있는 동화책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어린이 기독 동화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다. 요나가 고래 뱃속에 들어가서 삼일 동안에 있다가 토함을 받아서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예언 사명을 망각하고 다시스로 놀러갔다가 거기서 풍랑이는 바다위에 배에 타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만 배가 좌초되는 재난을 맞이했다가 제비뽑기에 걸려서 바다 속에 빠지니 바다가 잔잔해서 배가 안전해지고 자신은 고래 뱃속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욘1:11). 이 이야기는 사명을 가진 주의 종들의 소명이야기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 세상일에 욕심을 가지거나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 그만 주의 일을 하지 않을 경우에 당하는 재난을 종종 듣게 된다. 소위 백만장자, 수백억의 재산가가 한 순간에 물질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니 주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한 것이 생각나서 회개하고 주의 종의 길을 가게 되었다. 종을 부르기 위해 하나님은 한 순간 바람을 훗 부는 것처럼 물질을 불어가시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요나서가 이처럼 주의 사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동화와 같지만 사실과 같은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동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진짜와 같은 이야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요나서는 12소선지서 중에 예언서와 같은 않은 형식이다. 다른 예언서는 예언 설화를 모아놓았는데 이 요나서는 예언자에 대한 산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예언서에 넣은 이유는 그가 니느웨성에 말씀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욘3:4,5). 요나의 사명이 강대국 수도, 니느웨 성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적국 앗시리아가 하나님을 믿고 돌아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저 멸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가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것이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욘1:2).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1).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은 차원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박넝쿨을 아끼며 조그만 식물에 마음을 쓰고 우리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에 전부를 거는데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그렇지 않은 것을 본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욘4:10).

Jonah and the Whale (1621) by Pieter Lastman

하나님의 우주적 사랑을 보여주는 요나서

요나서는 예레미야서나 엘리야 이야기처럼 3인칭 화자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문학적으로 욥기나 룻기, 에스더처럼 아이러니(Irony) 기법으로 쓰여진 교훈적 목적을 가진 소설(novella)양식이다. 요나서는 여러 가지 개별적 장면을 가지며 세 장면이 특징적인데 고집 센 요나가 여호와에 저항하는 장면을 이룬다. 먼저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을 저버리고 다시스로 간다(욘1;1-3). 고래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회개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구원와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는 니느웨로 간다(욘1:17-3: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리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2:3). 셋째 니느웨 성이 무너지기를 바라며 박넝쿨 그늘 아래 보고 있는 요나의 모습이다(욘4:1-11). 반면,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 12만 명을 구원하시기 원하고 계신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4:2).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이고 보편적이셔서 구원이 앗시리아 니느웨 백성들에게 미치기를 원하신다. 요나서는 그 보편적 사랑을 나타내는 책으로서 크신 하나님의 우주적 사랑을 잘 보여준다. 요나서는 이방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을 보여주며 하나님이 그러한 보편적 사랑을 현실적으로 가져오는 분임을 나타낸다.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욘3:8). 세상은 재난과 재앙으로 하나님의 분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회개하지 못하고 있다. 터키의 지진이나 필리핀 따가이 따가이, 딸 화산 폭발이나 중국 우한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병 확산 등이 갖는 재앙의 원인을 모르고 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계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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