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으로 일어난 성경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사경회”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그동안 성경학교와 신학교,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해오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크리스천 가이드> <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30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야기대화식 성경연구>와 <30분성경교재 시리즈>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 “유대인의 파르데스공부법“ 등 다수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교육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한국의 사경회는 1890년에 언더우드 목사가 7명의 교인을 대상으로 사랑방 성경공부를 시작한 것이 효시였다. 이듬해에 선교회 본부가 성경공부의 원칙을 제정하면서 사경회는 선교지구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1904년도의 선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 무렵의 한국기독교인 가운데에서 60%에 이르는 교인들이 사경회에 참석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사경회는 한국교회의 전통이 되어 일본 점령기에도 계속되었다. 1910년 이후 1929년까지 약 20년 동안에 129만2000명이 사경회에 참석했다.

사경회는 흔히 선교 거점지역의 교회나 학교에서 2,3주일 동안의 단기과정으로 개최되었다. 주로 농한기나 겨울철에 열렸는데, 참가비용은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이 때문에 멀리서 참가하는 사람들은 쌀이나 돈과 함께 자취할 도구를 준비해 와서 합숙을 하거나 친지들의 집에 묵기도 했다. 사경회에서는 주기도문, 네 복음서, 예수의 생애, 교리문답, 십계명, 사도신경 등 신앙을 위한 기초학습과 함께 천문지리학, 농사법, 아동교육, 건강위생법, 새생활운동 등 일반상식과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도 가르쳤다. 하루의 일과는 새벽기도, 오전 성경공부, 오후 일반상식 과목을 공부했으며, 그 다음에는 개인전도 방법을 익히게 하여 호별방문 전도와 길거리 전도를 실시했고, 저녁에는 전도 강연 중심의 집회를 열었다.

특히 평양의 사경회 열기는 다른 지방의 열기를 압도했다. 「조선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평양은 관서지방의 기독교인들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다녀오기를 동경하는 곳이었다. 평양은 1893년에 장로교 선교가 시작된 뒤로 교세가 급속하게 늘어나 한국 최대의 기독교 도시로 성장했다. 1899∼1900년의 통계에 따르면, 평양의 장로교 교인은 2230명으로서 전국 교인 3690명의 60.4%를 차지했으며, 예배당 수도 1901년의 경우 185개 처로서 전체 237개 처의 78.1%나 되었다. 평양의 어느 예배당이나 금강산 어느 기도원에서 사경회가 있다고 하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02년 1월에 개최된 한 사경회에는 400여 명이 모였는데, 이들은 평안남북도와 황해도에서뿐만 아니라와 서울과 멀리 전라남도 무안과 목포에서까지 먹을 양식을 짊어지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1930년 안동의 여자사경회 (출처:프린스턴 신학교 도서관)

감리교에서 발간한 「대한크리스도인 회보」는 金龜가 참석하기 이태 전에 평양에서 열린 한 사경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우리 교회에 유익한 것은 성경을 공부 함이라. 이럼으로 지난 해 음력 십이월 이십일 위시하여 사경회를 실시하였는데, 각처 교우들과 본교회 형제자매 중 공부를 힘쓰는 사람 사십여 인이 목사 집에 모여 제제히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아침 아홉 시로 열한 시까지는 「로마인서」를 공부하고, 오후 두 시로 네 시까지는 「요한」 일이삼서와 「디도서」와 「아가서」를 공부하여, 한 달 동안에 하나님의 묵우(默祐:말없이 도움)하신 은혜와 목사의 성실히 가르침으로 형제와 자매들이 마음이 더욱 굳건케 하였사오니 감사하옵니다〉

사경회에 한번 다녀오면 성경지식은 말할 나위도 없고 교회에 대한 일반상식을 얻고 신앙이 성장했기 때문에 어느 교회에서 사경회가 열리게 되면 너나할 것 없이 참가하여 일종의 유행처럼 되었다. (참고: 월간조선, 손세일, "김구 이승만 인물 평전" 2002년 10월호의 부분 자료 인용)

평양사경회 인파(1934년)

이런 성경 공부의 기초는 단순히 교회의 부흥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와 조국의 미래까지 책임지는 일로 자연스럽게 번져 나갔다. 결국 이런 특별한 말씀의 현장은 조국을 책임지는 민족의 지도자를 길러내는 모판과 같은 역할을 했고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들이 성경 공부와 사경회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배출되었다.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조선을 사랑하며 꺼져가는 불길을 살린 민족 지도자들은 대부분 성경을 통해 양육된 제자들이었다. 비록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그들은 당시 교회와 기독교를 대표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그 결과는 기독교의 이미지가 좋아졌고 그 영향으로 조선교회는 부흥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조차도 무너지는 조선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야소교에 있다고 말한 것은 당시 교회의 영향력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교회는 습관처럼 모이는 마당 밟는 무리의 숫자가 전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수라 할지라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더 큰 전도를 하며 영향력을 미친다, 제자는 말씀 깊게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수동적으로 설교만 듣는 선데이 그리스도인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

평양서북지방 사경회 부인반

지금이라도 사경회와 성경공부를 통한 제자훈련이 전 교회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목회자가 여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맡겨진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자 삼는 일에 집중하는 교회 문화가 필요하다. 성경을 통한 깊은 통찰과 자기를 낮추는 겸손과 덕을 세우는 인격을 겸비한 지도자들이 교회를 통해 배출되어야 한다. 지금도 우리는 어려운 시대 속에 살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인애를 실천할 정치 지도자를 국민은 모두 갈망하고 있다. 수많은 크리스천 정치가들이 있지만 대부분 겨우 주일예배 한번 드리는 수준이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집중적으로 시간을 바쳐 성경 각권을 깊게 공부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크리스천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법을 다루는 모세오경과 그것을 정치에 실천하는 역사서를 통달하는 것은 기본이다. 사울과 같은 지도자가 아닌 다윗 같은 지도자가 되려면 사무엘서 연구는 필수다. 적어도 정치의 시대적 동선을 읽으려면 줄과 인맥을 다지는 일보다 우선은 열왕들의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열왕기서와 역대기서 성경공부는 필수과목이다. 느헤미야와 에스더와 다니엘서 같은 성경공부는 정치 리더쉽을 발휘하는데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각 교회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훈련되어야 하는데 과연 이런 지도자들이 얼마나 될까? 이것은 정치 뿐 아니라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원리다. 이것이 교회가 할 일이고 이것에 매진하는 것이 진정한 목회가 아닐까?

지금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해답은 성경 속에 이미 다 들어 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 하지만 이것을 알고 있는 크리스천이 얼마나 될까? 조선에 성경을 주신 것은 축복이다. 그것으로 오늘 한국이 기적을 이루었다면 앞으로도 여기에 길이 있다. 적어도 한 주간씩 집중적으로 시간을 할애하여 성경을 각권으로 깊게 공부하는 사경회식 말씀 집회가 한국교회에 다시 일어나길 소망한다. 지금이라도 각 교회가 말씀을 깊게 공부하고 성경자체에 푹 빠지는 리쉬마(성경자체)의 부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가 사도행전 교회처럼 말씀이 흥왕하는 역사가 재현 될 수 있다. 어떤 교회 성장 프로그램보다도 더 강력한 힘은 원자료인 말씀 자체를 살리는 일이다, 그것이 지금 다시 한국교회를 살리며 대한민국을 치유하고 하나 되게 하며 새롭게 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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