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눅 11:1-13] 누가복음 주기도문. 예수께서 기도를 마칠 때에,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줄 것을 간청했다(1절).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2-4절).

마태복음에서는 보다 긴 기도 문장인데(마 6:14-15), 누가는 보다 짧지만 마태가 뒤에서 설명한 부분을 뒤에 배치하여 기도에 대해서 길게 부연 설명한다. 내용은 산상수훈의 후반부 설명을 축약한 것과 유사하다(마 7:7-11). 그리고 결정에서 아버지께 구하면 받을 것이 ‘성령’이라고 규정했다(13절).

고경태 박사, 본헤럴드 편집위원

2. [눅 11:14-26] 예수와 바알세블. 예수께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자 무리 중에서 귀신의 왕 바알세블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다(15절). 어떤 사람은 더 큰 표적을 요구했다(16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너희에게 임함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셨다(20절, doubtless the kingdom of God is come unto you).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낸 뒤에 그 심령 안에 무엇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귀신들은 귀신을 쫓아낸 뒤에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돌아와 더 심하게 만든다(26절).

무엇이든지 강한 자가 굴복시키고 점유할 것이다. 간혹 귀신이 나갔지만 갈 곳이 없어서 돌아올 때 주인이 없으면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나중 형편이 더 심하게 될 것이다(26절). 이 말씀에 근거하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쫓아 낸 뒤에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역사를 예로 들 수 있다. 청일전쟁(1894-1895)을 종결하는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조선을 독립국가로 협약했다. 청일전쟁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한 요인이었다. 실효 지배를 할 수 있는 판단과 운행은 매우 중요한 판단력이다. 동학농민운동은 매우 숭고한 운동이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조선은 타의에 의해서 독립국가 지위를 가진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풍전등화에 놓인 상태가 되었다. 그 사태를 누가 이르게 했는가? 정조 사후(1800년) 100여년의 집권 세력(세도정치, 삼정문란)의 국론 분열과 국력 탕진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조선에서 청나라를 몰아냈지만, 일제국주의가 자리잡은 더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열강이 지배하지 않아서 더 괜찮다는 분석은 매우 위험한 역사관이다. 국력을 탕진시키고 국가경영을 부재로 몰아넣은 위정자들의 책임이다. 그 나라를 1919년 국민들이 외쳐 복구하려고 했다. 외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효적 지배와 운영할 수 있는 실력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자기 나라를(Regnum Christi) 세우시고 통치하시고 운영하신다. 참고로 “그리스도의 나라는 곧 교회다(regnum Christi, quod est ecclesia)”는 트렌트 회의 문장이다. 교회는 로마 카톨릭주의의 베드로 성당이다. 2차 바티칸 회의 <교회헌장> 8항 2단락에서 ‘est’는 ‘subsistit in’으로 수정되었다. 교회는 어디에서나 세워질 수 있다는 견해이고, 베드로 성당을 범세계로 전환시킨 것이다. 교회의 범위를 범세계로 전환시켰고, 교회의 수장은 교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서 임할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20절). 범세계를 하나님 나라로 보는 견해는 로마 카톨릭의 교회 이해와 차이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머리와 몸의 관계이지만, 한 교회가 보편 교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교회는 보편교회와 같다. 장로교회 정치원리에서 당회의 결정과 총회의 결정은 권위와 효력에서 차이가 없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쫓아낸 집에 누가 자리를 잡느냐?가 중요하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까지 성공했는데, 다음에 더 강한 귀신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전보다 더 심각한 상태가 될 것이다(26절).

3. [눅 11:27-36] 복, 빛을 보고 수용하는 자. 예수께 한 여자가 나와서 찬양했는데, “당신을 밴 태와 먹인 적이 복되다”고 선언했다(27절). 예수는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다(28절). 하나님 앞에는 어떤 미사여구(美辭麗句)가 필요 없고, 주의 율례를 지켜 준행하는 것이 복이다(계 1:3). 복(福)은 주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하셨다(막 3:33-35).

예수께 표적을 구하는 무리에게,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셨다(29절). 그리고 요나의 표적과 남방 여왕을 말씀하셨다(29-32절).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전한 복음을 듣고 회개했고,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땅끝에서 왔다. 그런데 솔로몬보다 요나보다 더 큰 자가 자기 땅에 오셨는데, 그 백성들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이방인들은 예수보다 못한 요나의 복음을 듣고 회개했고, 예수보다 못한 솔로몬의 복음을 듣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는데, 예루살렘 거민들은 그 복음 들음을 거부하고 있다.

예수께서 등경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등불은 등경 위에 둔다(33절). 예수께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지”를 성찰하라고 말씀하셨다(35절).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도록 하셨다(36절). “어두운 빛”을 상상할 수 없는데, “빛을 내지 못한 빛”은 주인이 등경에 위에 두지 않을 것이다. 맛을 잃은 소금은 밟히며, 빛을 내지 못한 빛은 쓰임 받지 못한다. 주께서 쓰실만한 거룩한 그릇으로 준비하자.

4. [눅 11:37-54] 화(禍), 바리새인과 율법교사.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율법교사에게 저주를 선언하셨다. 바리새인이 예수를 초청하여 잡수실 때에, 손을 씻지 않은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셨다(37-38절). 바리새인은 손을 씻지 않은 모습을 이상하게 여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장 익숙한 것에서 벗어난 행동을 볼 때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자기에게 익숙한 패턴의 오류 가능성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초대한 손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자기 청한 손님을 보호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

예수께서 그들의 안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선언하셨다(39절). 탐욕과 악독과 구제를 연결했다(40-41절). 그들에게 겉으로 구제하지 말고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고 하셨다(41절). 구제로 깨끗하게 된다고 하셨다(41절). 구제는 교회의 존재 기능이다. 교회가 존재하면 구제는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탐욕과 악독을 제거하는 한 수단이다. 칼빈은 구제를 표지로 넣지 않았지만, 구제는 사도의 직분이고 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율법교사에게 화를 선언하셨다(42절). 십일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42절). 화있을진저, 높은 자리를 탐내는 바리새인, 화있을진저, 평토장한 무덤같은 사람(44절)이다.

예수께서 화를 선언하심에 대해서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모욕한다고 하며 부정했다(45절). 예수께서 율법교사를 향해서 화(禍)를 선언했다. 율법교사는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46절),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지만 가르침은 따르지 않는다(47-51절). 지식의 열쇠로 자기가 들어가지 않으며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도 막았다(52절).

그들은 민족의 교사로서 민족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앞잡이가 되었다. 그래서 야고보는 오히려 많이 선생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교사가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지만, 많은 사람을 미혹하며 멸망으로 인도하는 교사는 당대 세상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지만 내세에 가장 심각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의 화(禍) 선언에 대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따지면서, 예수의 책(責)을 잡으려고 노렸다(53-54절).

5. 전능하신 하나님, 무능한 종에게 힘을 주옵소서. 기도로 주의 법을 준행하게 하옵소서. 성령을 주어 기도하여 권능을 갖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 마음에 참빛을 주셨으니 어둠이 없게 하옵소서. 그래서 등경 위에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구제를 실행함으로 안에 있는 탐욕과 악독이 절제되며 제거되게 하옵소서. 거짓 선생의 미혹을 거부하며 거룩의 길에 설 수 있게 하옵소서. 주께 받은 책망을 겸손히 수용하게 하옵시고, 더욱 경책하여 우리 조상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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