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어느 KBS 기자가 값싼 '요양병원'의 서비스 질 저하에 대해서 비판의 기사를 썼기에, 이 기회에 '요양원'에 대해서 나의 소견을 피력하고자 함이다.

"힘없고 가난한 자의 최후" 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에는 우리도 언젠간 다 늙지않느냐며, '요양병원'에서는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고 싶지 않은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만 했다. 화장실 가는 것만큼은 마지막 자존심이었기에 혼자서 힘겹게 해결해보려 했다. 그렇게 넘어지길 수차례…. 몸은 망가져 갔지만 내가 넘어졌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썼다.

이 것은 노인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그래서 의료진도 간병인도 환자들에게 관심조차 없는 저가 요양병원에서 있었던 할머니들의 증언이다. 요양병원 비용은 한 달 기준으로 지방은 60만 원대도 있고, 서울·수도권은 120~200만 원대, 쾌적하고 살뜰히 관리해주는 곳은 3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병원별로 비용이 차이가 큰 주된 이유는 바로 간병인 비용에 있다. 입원했는데 거동과 기본생활이 힘들 경우 간병해 줄 가족이 꼭 한 명씩 함께 있듯, 장기간 입원해 있는 노인 환자의 경우 간병인은 필수이다. 하지만 간병인은 의료인이 아니어서 간병비는 건강보험도 되지 않는다. 때문에 환자 6명당 1명의 간병인을 고용하는 곳과 10명 당 1명의 간병인을 쓰는 곳, 병원 각 층에 1~2명의 간병인이 있는 곳에 따라 병원비가 달라 진다.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간병인 비용을 할인하는 함정은 정부 관리의 문제이다. 낮은 가격으로 환자를 유치하는 저가 요양병원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간병인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밤이 되면 최소한의 야근자만 병원에 남는다.(그러나 간병인은 하루 24시간 근무다.)

"낙상 위험이 있는 환자를 기저귀 채워 침대에 묶어 놓는 게 다반사이고, 수시로 흘러내리는 가래를 제대로 빼주지 않아, 환자는 숨 쉬는데 고통을 느끼며 힘겨워 한다. 통증을 호소하면 수면제를 처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일부 요양병원의 문제에 대해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요양병원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있어서 생긴 문제다. 세부적으로는 요양병원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잘 관리되지 않고 있다. 또 이용자 입장에선 '요양보호대상자'가되면 응당 요양원에 입소할 수있는데 아직 '요양보호대상자' 자격이 안되는데 가족이 모시기 힘들어서 요양병원에 입원을 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요인들이 겹쳐서 결국은 환자의 가족은 요양병원을 남용하고, 병원은 낮은 질의 서비스로 상업화된 문제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진단 했다.

취재기자는 이어서, "인지능력도 언어능력도 떨어지는 노인 환자들이 이런 고통을 제대로 자식들에게 표현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그렇다고 싼 병원에 부모를 모신 자식들만을 탓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 거동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돈이 없다는 이유로, 기저귀를 차고 침대에 묶여 죽음을 기다려서야 되겠는가? 요양병원 공급 과잉으로 의료서비스 질 저하는 국민건강의 악화로 이어 지고, 결국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할 것이다"라고 썼다.

위 기자의 기사에 대해 일응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일리(一理)가 구리(九理)를 압도할수는 없다. 앞서 기자의 기사에서 피력한 서울대의대 김윤교수가 지적한대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분들 대부분이, 요양보호대상자 신청에서, 비교적 독립생활이 가능하다고 국가가 판단해서 제외된 분들이다. 이러한 분들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게 답이다. 문제의 대부분은 가족에게 있다. 나라에서 요양보호대상자 예비자들까지 부담 할 수는 없기때문이다. 이러한 예비자들은 보건소나, 돌봄센터 복지관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여러가지 돌봄 역할을 하고 있다. 요양보호대상자 등급을 받을 때까지 모시고 기다렸다가, 후에 건강이 더 나빠져서 등급을 받게되면, 그때 요양원으로 입소케 하시면 된다.

그리고 노인분들 대부분은, 불편하더라도 자기가 몸담고 있었던 손때묻은  집이나 고향에서 살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자녀나 가족들 성화에 못이겨 요양병원에 처음 들어 오게 되면 건물도, 사람도, 환경 등 모두가 낯설고 생경해서, 전에 없던 치매증상까지 나타날 만 큼 심각한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노인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 안정이고, 현재의 건강상태를 유지시켜 드리는 일이다.

효도나 최선의 케어는, 정서와 재활치료다. 부모나 어르신을 가만히 모셔 두고, 내가 하나에서 열까지 다 돌봐주는게 최선의 케어나 효도가 아니라는 거다. 독립생활(홀로생활)이 가능하도록 웬만한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케어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효도의 개념이, 무조건 부모의 몸을 편안하게 잘 모시는 것을 최선의 효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재활병원에서 재활운동은 환자 본인이 하여야 한다. 요양원에서도 원칙상 본인이 움직여야 한다. 왜냐하면 혼자의 힘으로 독립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데에 케어의 방점이 있고, 바로 이 것이 요양보호사가 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식사 케어도 와상환자가 아닌 한 본인이 스스로 식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일상생활 모든 서비스가 '자활'에 있기 때문이다. 두 발로 걷지 못하면 두 팔을 이용해서 기어서라도 다닐수 있도록 하는 것은 스스로 독립생활이 가능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고려대, 총신대학원 졸업, 광운대 정보복지대학원 졸업, 서울 용산소망교회 경남 하동교회 부산 영도교회 시무. 현재, 행복이 가득한 교회(예장합동) 행복이 가득한 집(요양원) 시무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차이. 

대부분 노인분들이 그 대상자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요양병원의 고객 대부분이 등외 노인이므로  '요양'자만 들어 있을 뿐, 그외 모든 것은 일반병원과 똑 같다. 그러므로 일반병원이 이익을 추구한 것처럼, 요양병원의 태생 또한 이익추구에 있다. 그리고 등외환자 즉 나라에서 비교적 독립생활이 아직은 가능하다고 보고있는 '일반 노인환자'는 물론 요양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요양병원에는 입원환자 수발을 요양보호사가 아닌 간병인이 한다. 요양원에는 보험공단에서 요양등급을 받은, '요양보호대상자'만 입소할 수 있기 때문에, 요양보호사는 요양원에만 있다. 비단 요양병원에만 저가 요양병원이 있는게 아니고, 일반 병원도 환자 수발은 간병인이 하는 것은 요양병원과 똑같고, 환자를 간병하는 간병인의 비율 또한 1대1에서 부터 1대10 까지 다양하다.

요즘 가족공동체 개념이 점차 자기 편의 위주로 바뀌어져 가고 있다. 독신세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나서 가족공동체 자체가 와해되거나 희박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노인문제가 가족에게서 사회공동체의 문제로 전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노인문제가 이제 국가의 문제로 전환되어 가족과 사회가 공동으로 해 온지도 어언 12년이 되었다.  초고령사회로의 속도가 급속도로 진행 되어, 노인요양대상자의 수도 계속 늘어나 면서, 과부하(過負荷)로 인한 의료 서비스 의 질이 저하될 수 있는 요인을 항상 안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과도기를 거치면서, 일반 병원처럼 소위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저가 요양병원도 혹 있을 것이다. 이는 쌀 뒤주가 크다 보면 그 안엔 돌도 있고, 뉘도있게 마련이다. 요양보호대상자를 위한 목적, 즉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요양원제도 또한, 이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해야 한다.  

요양원의 존재가치는 오로지 노인복지라는 공익목적에 있기때문에, 모든 재정은 한달을 주기로하여, 수입과 지출의 '제로썸'에 있다. 여기에 투명한 사명감 외에 어떤한 사리사욕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는, 특히 요양보호사들의 근무 시간도 반드시 재검토 되어야 할 문제다. 하루 8시간 근무에 한주간 대부분 5일 일하고 2일 쉰다. 그리고 년차 휴무가 있다. 그러다 보면 일주일 중 대개 나흘 근무하고 사흘 쉰다고 보아도 된다. 이렇게 되니 일의 연속성이 끊어져, 성실성 즉 써비스의 질이 떨어 진다. 건의하고 싶은 것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 5일 근무로 하고, 년차 휴무는 특별수당으로 지급하면 어떨까 싶다.

노인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나고 있는데, 가족은 해체 되고, 젊은이들은 해마다 줄어 들고 있는 것도, 일손 수급에 결정적 영향을 입히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요양보호사의 일할 손이 모자라서, 동남아시아인들의 손을 들여 온지 오래다.

실버의 백세시대! 무지개 빛갈처럼 빛갈은 곱지만, 103세된 할머니 큰 아들이 80고령이 되었는데, 어찌 그 아들이 수발을 해드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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