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46) 분별(test and approve)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당신은 당신이 먹는 음식이다(What you are is what you eat)”란 말은 유명하다. 매일 먹는 음식이 그 사람의 기질과 건강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레위기 11장을 보면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분류하고 있다. 굽이 있는 동물을 먹을 수 있다. 그만큼 땅에 덜 접촉하고 살았다는 의미다. 되새김질하는 동물은 먹을 수 있다. 땅과 접촉한 것을 가려 먹었다는 뜻이다. 돼지는 굽이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다. 땅에 있는 것을 마구 먹는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 ‘이 돼지는 무엇과 접촉했고 무엇을 먹었을까’ 따져보아야 한다. 어떻게 유통됐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전통과 혈통을 이어받은 유대 그리스도인과 복음화된 이방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빚어진 ‘문화적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공회의 주요 안건은 4가지 중 3가지는 음식문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행 15:20).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상실한’에 해당하는 ‘αδοκιμος’(아도키모스), 즉 ‘합당치 여기지 않는’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셨다고 지적했다(롬 1:28). 이제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는 것은 이런 마음의 상태가 반전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에 해당하는 ‘δοκιμάζω’(도키마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피력한다. 도키마조는 불로써 순전도를 시험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의 ‘בָּחַן’bâchan(바한)의 역어로 가장 자주 사용된다. 시편에서 하나님이 기도하고 있는 자를 시험하실 것이라는 기도는 완전한 신뢰의 표현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의 결과 혹은 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강조는 예레미야 31:31-34과 에스겔 36:26-27의 강조와 유사하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하는 일에 앞서 걱정하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 ‘중용’에서 제안하는 다섯 단계를 제시한다. 첫째는 박학(博學), 둘째는 심문(審問), 셋째는 신사(愼思), 넷째는 명변(明辯)이다. 명백하게 분별(分別)한다. 신사 단계에서 검토하는 선택지 하나하나에 대해 아직 실행하지 않았지만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비교 분석을 하다 보면 우선순위가 분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1.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는 저서 ‘내전기’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고 했다. 뒤집어 얘기하면 리더는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이 봐야 할 것을 보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보고 싶은 것과 자신이 봐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자기의 신념과 일치하는 것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믿고 싶은 정보만 믿는 심리적 성향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인간의 직관적 사고는 잘못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크지만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분별력이 떨어진다.

분별하다는 시험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마친 후에 입증된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즉 시험하고 검토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실천할 목적으로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한 신자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되고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살게 된다. 대부분 소셜미디어의 친구 맺기나 카톡방을 만들 때 ‘편한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 시작된다. 그러면 SNS나 개인화된 인터넷 서비스는 ‘당신 취향에 맞는’ 뉴스와 정보를 보게 된다. 검증의 시간을 생략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fact’다. 넷플릭스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와 지구가 평평한 증거라며 이들이 만들어 올린 유튜브 동영상만 800종이 넘는다. 일명 ‘네모파’는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에 배치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자기 확신을 더욱 강화하는 ‘확증 편향’의 문제는 온라인 소통이 일상화하면서 더욱 심화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것은 이념적 진영에 상관없이 수익 등을 지향적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곳에서 바울은 동일한 동사를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시험하거나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할 때 사용한다(엡 5:10). 도키마조는 어떤 것을 실제로 사용하거나 시험해 봄으로써 그 가치를 찾아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중용’에서는 군자가 제시하는 삼중을 제안한다. “자신에게 뿌리를 두고 서민에게 타당성을 검토해 보고 이상적 군주의 언행에 비춰 봐서 잘못이 없는지 살펴보고 하늘과 대지에 적용해 봐도 어긋나지 않고 귀신에게 문의해 바로잡아 의심이 생기지 않고 백세 이후 성인을 기다려도 문제점이 없다.” 성경은 중용의 삼중과 달리 사람에게 뿌리를 두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두고 있으며 귀신에게 문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5:10에서 동일한 동사를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시험하여 보라’ 또는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할 때 사용한다. 빌립보서 1:10에서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이 지식과 결합된 사랑으로 풍성화게 되어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기를 기도한다. 솔로몬은 꿈에 나타난 하나님에게 사리사욕이 아닌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지혜를 구했다(왕상 3:4-15). 지혜는 곧 “듣는 마음”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왕상 3:9) 능력이다. 저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설렁탕과 곰탕의 구별법은 간단하다. 전자는 사골 등뼈를 곤 국물이다. 후자는 고기 곤 국물이다. 전자에는 허드레 고기가 들어간다. 후자는 정육(精肉)을 사용한다. 전자는 흰색, 유백색이고 후자는 노란 기름기가 동동 뜨는 투명한 국물이다. 전자는 소금 간이 제격이다. 후자는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이것도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점이다.

 

2.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삶이 아름답다

미국 시인이자 수필가, 철학자였던 에머슨은 ‘무엇이 성공인가’ 시에서 아름다움을 식별(識別)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노래했다. 헌신은 분별로 인도되며, 분별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기뻐함으로 인도된다. ‘기뻐하시는’에 해당하는 ‘εὐαρέστως’(유아레스토스)는 헌신의 정신이고, 분별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에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과 스스로 산 제물로 바치는 일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각자의 경우에 ‘기뻐하시는’이란 말이 사용되었다는 사실로서 알 수 있다.

‘사건의 경위’를 말할 때는 ‘경위(經緯)’로 쓰지만, ‘경위가 밝다’ ‘경위가 분명하다’라고 할 때는 ‘경위(涇渭)’로 쓴다. 경위(涇渭)는 ‘사리의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分別)’의 뜻으로 중국의 징수이(涇水)와 웨이수이(渭水)라는 강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경수는 늘 흐리고 위수는 늘 맑은데, 이 두 강물은 시안 근처에서 만나 멀리 흐르는 동안에도 맑고 흐림이 구별된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죄 많은 세상에 의해 이루어진 행동규범을 거부하고 구원받은 자에 합당한 영적인 규범을 스스로 재차 확인하면서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맥으로 보건대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따라서 마음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증강현실 기기는 운전할 때 쓰는 내비게이션이다. 가까운 장래에는 많은 사람이 자동차의 내비게이션과 같은 기능을 하는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게 될 것이다. AR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다. 내비게이션은 운전이라는 상황에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강화해 운전자에게 제공한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은 이 시대가 주는 AR 안경을 끼고 세상을 선택하고 집중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는 AR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부터 우리의 마음은 물론 몸까지 변화시킴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하신다. ‘본받지 말라’와 ‘변화를 받으라’가 주동사이다. 헬라어 구문은 결과가 아니라 목적을 가리킨다. 전치사구가 목적을 가리킨다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므로 하나님의 뜻을 합당히 여길 수 있는데 그 목적이 있다.

예수님께서 날카로운 어조(stem)로 백성들과 그들의 리더들을 책망하시는 원인은(눅 12:49-56; 마 16:2-3) 시대의 징조들을 분별하는 일에 무관심하였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이 새대는 분간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책망을 받은 것이다. ‘이 시대’ 속에 ‘오는 세대’가 이미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리고 그 안에서 도래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침범한 것이다. 이제 최후 심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도래하고 있는 것과 이 시대의 징조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분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성군(聖君)에게는 최상의 덕목이었다. 사서의 하나인 ‘중용’에서 성군이 갖추어야 할 필수요건이 네 가지다. 총명예지(聰明睿知)이다. 첫째, 성군은 아랫사람의 말을 들을 때 참과 거짓을 가려낼 줄 아는 것이 總(총)이다. 둘째, 오랜 경험으로 눈 앞에 벌어지는 일의 잘잘못을 명확하게 가려낼 줄 아는 것이 明(명)이다. 셋째, 어떤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밑그림을 빈틈없이 그려낼 줄 아는 것이 睿(예)Y`이다. 넷째,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숨은 능력을 들여다볼 줄 아는 것이 知(지)다. 한마디로 성군은 통찰력이 뛰어나야 하고 분별력이 탁월해야 한다. 그러나 하늘의 사람은 단지 사람의 뜻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분별하는 데 관심을 두는 자들이다. 이것이 성도들의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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