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우신 제도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정이고, 또 하나는 교회이다.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두 가지를 온전하게 지킬 때 행복이란 선물을 받는다. 가정과 교회를 사랑하고 잘 가꾸고 온전한 천국의 질서로 세우면 큰 기쁨과 은혜를 경험한다. 가정과 교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은 기쁨 중에 가장 큰 기쁨이다.

사단의 최고의 전략은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비전은 가정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소중한 가정과 교회를 원수마귀사탄으로부터 잘 지키라.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이 깃든 곳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피 값으로 사신교회”이기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고 능력으로 함께 하신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등

우리가 교회를 부를때에, 교회를 영적 가족 공동체라고 부른다. 교회의 목표는 영적 가족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주님의 비전이요, 성령님의 꿈인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영적인 가족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령의 새바람이 일어나고 초대교회 공동체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하나됨의 기쁨을 누렸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

가정에서 음식을 서로 기쁨으로 나누었다.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도 칭송을 하였다.

그 결과 구원받는 백성들이 날마다 늘어났다.(행2:43-47)

 

이 모습이 바로 살아있는 영적 가족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라고 할 때 세 단어가 중요하다.

교회는 공동체이다. 공동체라는 말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운명이나 생활, 목적 등을 같이 하는 두 사람 이상의 조직체’를 공동체라고 한다. 교회는 함께 하는 운명 공동체이다.

 

교회는 가족이다. 히브리인들이 가족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 구약적인 개념의 가족은 부모와 자녀들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로까지 적용한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가족이 탄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영적인 가족의 탄생은 예레미아 31장 1절에 새 계약에 기초를 두고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이것은 메시야의 탄생을 통해서 장래에 주어지는 새 계약인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영적인 가족들로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이며,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한 가족이다. 가족이기에 계산하지 않는다. 가족이기에 함께 울고 웃고 가슴아파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 아픔을 경험하고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데도 같이 아파하지 않고 같이 나누지 않는 것은 가족이 아니다. 가족은 계산을 초월하고 삶을 나누는 것이며, 끝까지 참아주고 용납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가족이다.

 

그런데 교회는 한 차원 더 나아가 "영적"인 가족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연결된 영적인 가족이다. 교회가 얼마나 위대한 공동체인가?

본푸른교회 도서관

영적인 한가족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보시는 데로(시각) 가족을 보는 것"이다.

주님은 모든 영혼을 천하보다 존귀한 영혼으로 받아들였다. “너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야누가 이렇게 인정하는가?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에 갔다. 그 이유는 우물가에 물을 뜨러 오는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우물가에 물을 뜨러온 여인에게 물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다섯명의 남자가 있지만 이 사람이 내 남편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가련한 여자이다. 삶에 희망이 전혀 없던 가련한 여인에게 내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자신을 보여주셨다. 여인은 기쁨을 회복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로 가서 외쳤다.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4장).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로 갔다. 가련한 여인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의 눈높이로 찾아가주셨다.

주님이 사람을 보는 관점은 항상 한결같다. 모든 영혼을 똑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타락하였기에 사람들을 등급 메기고, 구분한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의 신분의 차이에 의해서 등급을 메기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동일하게 귀하게 대해주셨다.

주님이 보시는 대로 이웃을 바라보라. 그래야 가족이 보인다. 그래야 이웃이 보인다. 눈높이가 내가 아니라 상대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내가 상대편 높이로 낮아질 때 가족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하늘의 영광과 보좌와 거룩을 버리시고 이 땅에 가장 낮은 자로 내려오셨다. 그리고 섬겼다. 희생했다. 먼저 본을 보였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를 대하시지 않고 우리입장에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와 영적인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서 주님은 모든 것을 버리셨다. 이것이 가족이다.

상대편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영적인 한 가족이 된다. 눈높이를 낮추라. 그러면 대화가 되고, 가슴이 열린다. 신앙의 눈높이를 내가 아니라 상대편에 맞추라 그러면 이해가 된다. 그래야 영적인 한 가족이 될 수 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라. 인정하면 영적인 가족이 될 수 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자랑거리와 특권와 명예와 위치를 내려놓고 십자가 아래에서 철저하게 섬기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가 영적인 한 가족 공동체로서 하나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보시는 시각으로 이웃을 보면 된다. 그래야 교회가 교회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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