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64) - 요나서 (3)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니함) 그 진노를 그치사(샤브)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욘3:9).

요나서는 재앙 대처 매뉴얼을 주는 책인가. 하나님의 재앙이 삼중 처벌(칼과 기근과 전염병)로 나타나지 않고 한 가지로 나타날 수 있을까? 요즘 세계가 창궐(猖獗)하는 코로나 폐렴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언제 그 전염병이 멈출 것인가?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멈출 것인가. 히브리어 원어로는 “하나님이 어찌(혹시) 긍휼하심을 가지시고 그 분노의 맹렬함으로부터 돌이키시지 않으시겠느냐?” (왜 하엘로힘 왜 샤브 메하론 아포)로 새겨진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시고 이 진노의 아수라(阿修羅)장에서 분노를 멈추시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 진노(이라 데이)의 뜻을 돌이키기를 바라는 니느웨 왕의 회개의 순간을 포착하고 요나서 기자는 말하고 있다.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욘3:7-8). 앗시리아 수도 니느웨에서 최고 권력자 왕이 선포하는 말이다. 장례식 의복을 입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이는 단식기도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단호(斷乎)한 마음과 결연(決然)한 회개이다. 이러한 회개의 과정이 과연 오늘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예레미야서 18장 7-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과 주권이 한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결정한다고 보지만 결국 그 나라의 태도와 행동의 결과에 달렸다고 말한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18:7-10). 우리는 우리 민족만 번성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그는 홀로 존재하시며, 하나님 마음과 뜻에서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계신다. 다만 우리는 혹시(올라이), 하나님이 멸하려는 마음과 뜻을 돌이키실까, 하고 다만 추측하고 짐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파선 당할 상태의 선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하나님의 이 재앙의 의미를 묻고 기도하고 왜 그런지, 이 배에 같이 타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사람이든,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도망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은 것이다.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울라이)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욘1:6).

민족 공동체이든 배에 탄 사람들의 운명 공동체이든 지금 맞고 있는 고난과 재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야 한다. 신앙 공동체는 더더구나 현재의 재앙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기도하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당하는 재난은 바로 우리의 행위, 우리가 죄악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상태이다. 이 선장은 바로 자고 있는 사람까지 살피며 그 사람이 어떤 민족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 모르지만, 그 하나님께 구하라고 청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혜로운 사람, 선장이었다. 그 선장은 다신론적 배경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요나의 상황을 몰랐지만 그는 ‘참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론자’에게 지금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 재앙을 멈추어 달라고 너의 신에게 기도하라는 것이다. 혹시, 아마도 그 하나님이 이 재앙의 순간을 멈추고 돌이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생존과 생명의 기회를 찾기 위한 간절한 모색이었다. 결국 요나는 일어나서 고백한다.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욘1:9-10).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불행한 현상은 바로 그 배경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잊은 사명은 무엇인가. 우리가 놓친 공동체의 헤아릴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명을 영적 지도자와 공동체의 지도자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언약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을 벌이며 이 세상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는 아닌가, 반성하며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욘1:11). 요냐의 배, 공동체는 그 파선위기의 배 문제의 원인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행위로 구원을 받게 된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욘1:15). 여기는 요나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한 운명 공동체의 전체 사활(死活)이 건 요동과 환난을 일으켜서 결국 요나가 회개할 길을 주시는 것이다. 바다에 던지라는 말은 냉정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이는 십자가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곧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의 길로 들어서는 길이 되는 것과 같다. 이는 십자가 희생이 결국 부활의 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욘1:16). 그 배 안의 공동체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결과를 가지게 된다. 오늘 우리는 우한 폐렴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의 환난을 맞이하고 있다. 요나의 구원 계획을 보면서 우리도 회개하고 문제 해결의 지혜를 얻기를 바란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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