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유 원장 - 연세이원유치과의원원장, 전 연세대 교수, 교정전문의, 워싱턴주립대 교정과 초빙교수, 켄터키대학 구강안면통증센터 초빙교수, 세계치과교정학회, 미국치과교정학회, 구강안면통증학회, 아시아 임플란트학회 회원, 아시아 두개안면장애학회 회원, 대한치과교정학회 정회원, 대한치과이식임플란트학회 회원

입춘(立春)을 지나 우수(雨水)에 이르니 눈이 온다. 우수(雨水)는 예로부터 농경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입춘 15일 후에 날씨는 풀리고, 봄비에 새싹이 난다고 하며, 우수·경칩에 대동강이 풀린다는 말이 있다. 오늘 하늘은 온통 하얗고, 세상은 흰 눈으로 뒤덮였다. 오랜만에 대설(大雪)이다. 한 달여 동안 우한 코로나바이러스로 곤두서 있는 마음을 위로해 주는 푸근한 눈이다. 오는 봄이 조금 늦어지면 어쩌랴, 조금 추워지면 어쩌랴. 훨훨 한껏 내리면 억눌린 답답한 마음도 씻겨 지리라.

정지용 시인은 ‘춘설(春雪)’에서 첫 시구(詩句)를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이라고 표현했다. 문 열고 나가자 이마에 찬 바람을 맞은 것 같이 흰 눈 세상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얼마나 실감 나는 시구(詩句)인가.

흔히 봄에 눈이 온다면 농사가 잘될 거라, 풍년이 올 거라고 한다. 봄을 기다리는 이른 계절에 눈이야말로 반가운 손님이다. 겨우내 휑하니 비어 있던 나뭇가지에 새싹이 움틀 것이다. 휑한 나뭇가지만큼 을씨년스런 모습은 없다. 무성했던 잎들은 간 곳 없고 추운 바람 홀로 맞자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른 봄, 바싹 말라가는 대지(大地)를 향해 내리는 함박눈은 신의 축복이다. ‘그래그래 수고했어.’ 겨우내 훌쩍 야위어 버린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다독이고 다독이듯 내리는 봄눈. 다독이는 것도 모자라 솜이불로 덮고 있으니 말이다.

춘설(春雪), 봄눈은 어떤 외로움도, 어떤 슬픔도 녹이는 대지(大地)의 어머니처럼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대지의 생명력은 어머니를 닮았다. 하늘도 감동하여 대지를 향해 눈을 내리는지.

봄눈은 생명을 잉태하는 봄의 노래이다. 아주 오래된 생명의 찬가이다. 아마 우리 인류가 시작된 이래 소녀들이, 아낙네들이 불렀을 봄의 노래이다. 겨우내 고단하고 답답한 마음을 날리는 노래이며, 얹힌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원한 어머니 약손이다. 우수(雨水)에 온 대지를 다독이며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며 ‘올해 농사는 잘 될 거야’ 소망해본다.

시샘 바람이 매섭지만 봄은 멀지 않다. 겨우내 빈 가지마다 새잎들이 돋아날 것이다. ‘역시 올 농사는 잘 될 거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수(憂愁)를 떨치는 봄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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