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한 진정한 에큐메니컬

시대와의 불화

더 핑크는 미국, 호주, 영국 남부에 이어 영국 북부의 한 작은 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전 세계 여러 나라, 여러 교파의 사람들과 만나 직, 간접적인 소통을 나누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감으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에 대한 그의 전적인 헌신과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인해 핑크는 알미니안주의와 자유주의 신학 사상이 팽배하던 그 시대와의 필연적인 불화를 겪어야만 했다.

핑크는 분명, 모든 사람이나 교단이 진리를 전부 소유할 수는 없으며 성령은 획일적인 방식으로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따라서 교파의 다양성 또한 우리가 '찬송해야 할 주제'라는 점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어떤 교단에도 소속되기를 거부한 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그것이 바로 [성경연구] 는 잡지의 편집이었다.

진리를 열정적으로 선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그가 이 간행물을 편집하면서 늘 염두해 두었던 것은 모든 교파를 아우르는 '핵심 진리'에 집중하는 것과 그 진리를 각각의 결에 따라 다루는 '균형'이었다. 그것이 아마 어둠과 혼돈 속에 있던 당시 교회에 대한 아더 핑크식 대안이었을 것이다. 균형 잡힌 메시지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인간의 책임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말하는 것의 열 배나 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글을 쓰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을 훨씬 더 영광스럽게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의 할 일은 믿음을 열심히 옹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 진리를 성경에서 제시하는 대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명백히 부인하는 것보다 그릇되게 설명하고 왜곡하는 것이 훨씬 더 잘못이 큽니다.”

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한 진정한 ‘에큐메니컬’

핑크의 전기를 읽으면서 핑크야말로 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한 진정한 ‘에큐메니컬’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가 걸어간 외곬수의 삶만이 꼭 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유일한 길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소명과 그에 대한 확신이다. 그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을 알았고, 그분이 주신 소명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줄 아는 복된 사람이었다.

그의 생애 막바지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묘사하는 챕터에 이르러서는 나도 모르게 흐느껴 울고 말았다. 그의 진가를 몰라보았던 그 시대가 원망스러워서가 아니라, 세상을 부인하고 올곧게 자신만의 부르심의 경주를 이제 막 끝낸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를 다 이해 못했을지라도, 주님은 그를 알아주시리라.

더 핑크, 주님을 향한 그의 순전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충성됨은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또 하나의 별이 되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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