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선지자 이세벨

 

(6) 자칭 선지자 이세벨(אִיזֶ֔בֶל, Jezebel)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거짓 선지자 이세벨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0-23)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따라서 여자 이세벨은 교회 안에 들어와있는 적그리스도를 말한다. 이를 계시록 17장에서는 '음녀(πόρνης, whore)'라고 표현하고 있다. 4절을 보면,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교회안에 들어와서 빛의 옷을 입고 빛의 사자처럼 가장한 그녀는 표면적으로는 왕비처럼 매우 부유해 보이며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녀가 손에 들고있는 금잔 안에는 음행의 포도주와 쑥물이 들어있어서 그것을 마시는 자는 모두 영적으로 죽게 되며, 그녀가 미혹하는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라가 영적인 간음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2장9-10절에서는 여자들 즉 교회들이 음녀의 화려한 외모를 버리라고 말씀한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음녀는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자주 빛 옷을 입고 있는데, 디모데전서 2장에서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여자라면 그렇게 값진 옷을 입지 말고, 금이나 진주를 걸치지 말라고 말씀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여성들을 보면, 값진 옷을 입고 금이나 진주나 보석을 하나라도 두르지 않고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더 멋지게 보이려고 애쓰는 그런 모습은 이미 음녀의 손에 들려진 금잔 안의 음행의 포도주를 마신 모습이다.

'음행'이 무엇인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의 것을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남편이나 아내가 있으면서 다른 이성을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남편되신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기가 입고싶은 화려한 옷을 입고, 보석을 걸치며 왕비처럼 살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과 바알을 모두 버리지도 한쪽만 선택하지도 못하고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바로 음행이다.

베드로전서 3장3-4절에서도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라고 말씀한다. 결혼한 여자라면, 음녀와 같이 외적인 모습에 신경을 쓰지 말고, 속 사람을 잘 가꾸라고 한다. 그리고 속 사람은 남편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가꾸라고 한다. 남편과 한 몸이 되어야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인 온유한 성품을 가지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음녀는 끊임없이 교회를 미혹하여 내적인 안정과 온유한 마음을 버리고 외적인 면에 신경을 쓰며 다른 복음을 따르라고 음행의 포도주가 담긴 금잔을 코앞에 갖다대며 미혹한다.

그런데 음녀가 꾸미고 있는 금과 보석과 진주는 새 예루살렘성에 있는 보석들이다. 이는 자기를 광명의 천사와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있으나, 실상은 거짓 사도이며 궤휼의 역군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후 11:13-15). 겉은 천국 백성처럼 그럴듯하게 천국의 보석들로 아름답게 꾸미고 있으나 속은 가짜 즉 돼지와 같은 자이다. 하나님께서 부정하므로 먹지말고 그의 주검도 만지지 말라고 하신 돼지가 상징하는 것은, 겉은 굽이 갈라져서 크리스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새김질 즉 말씀 묵상이나 기도와 찬양하는 삶을 살지 않고 행함이 없는 종교인의 모습을 하는 사람 즉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을 말한다.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레 11:7-8)
"스스로 거룩히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swine's flesh)와 가증한 물건(레 11장에 나온 부정한 것들)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66:17)


오늘날 교회 안에서 '다른 복음'이 얼마나 만연한가! 순수한 복음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게 되어있으나, 다른 복음은 남자와 남자가 그리고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복을 차단하고 있다. 그 결과 동성애자들도 목사 안수를 받고, 온갖 종교인들이 기독교 총회나 집회에 참석하여 그들의 신을 부르며 하나님과 바알을 함께 섬기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를 만들어 가면서도 '평화'와 '사랑'이라는 이름만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말씀하실지라도 아가페 사랑의 하나님을 버리고, 육체적 사랑과 마귀가 주는 일시적인 가짜 평화를 선택하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 수많은 교회가 이세벨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 그녀의 금잔에 들어있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서 헐떡거리고 있다. 왜 그럴까?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회개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럼 왜 회개를 안 할까? 그 이유는 육체에 속했기 때문이다. 육체에 속한 이들은 결코 회개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 6장16절을 보면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one flesh)가 된다 하셨나니"라며 육체가 된다고 말씀한다. 그러나 17절을 보면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one spirit)이니라"고 말씀한다. 즉 세상과 합하면 육체가 되고, 주와 합하면 영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육에 속한 사람이 회개할 수 없는 이유는 성령이 없기 때문이며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대적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고전 2:14)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 1:14)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누구에게나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세벨의 영향력을 주의하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듯이 오늘날 이세벨의 영은 교회의 모든 리더들을 공격한다.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와 교사 등 모든 리더들을 컨트롤하려고 한다. 특히 선지자처럼 말씀을 힘있게 선포하며 악의 모든 모양을 교회에서 쫓아내려는 이를 증오하며 공격한다. 그리고 죽이려고 한다.

이세벨의 영향력에 사로잡혀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역하는 이들을 쫓아다니며 죽이겠다고 한다. "내가 이번엔 너를(그를) 반드시 죽이고야 말거야"라고.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역을 못하도록 하며, 그들을 쫓아다니며 그들을 파멸시킬 때까지 거짓말을 만들어서 뿌리느라 잠도 자지않고 사기와 협잡으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불법을 행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은 이세벨처럼 진실된 하나님의 종을 죽이지 못하면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못한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행 23:12)

이세벨은 당대에 가장 영향력이 강한 여인이었다. 그녀 한 사람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는 나라가 되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엘리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어도 그녀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갈멜산에서의 싸움에서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이 내려오게 하였고, 3년6개월간 가물었던 땅에 비가 내리게 하였으나 이세벨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세벨은 하나님의 기사를 보면서 더욱 강퍅해져서 분노가 화산처럼 끓어올랐고, 엘리야를 죽이지 못하면 자기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까지 하며 주의 종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었다. 뿐만아니라 8백50명의 바알과 아스다롯 제사장들을 죽였던 엘리야는, 이세벨의 죽이겠다는 말 한마디에 그 당당하던 기세가 사라지고 도망을 쳤다. 아무리 하나님의 전능하신 역사를 보여주어도 이세벨과 백성들은 하나님과 엘리야를 따르지 않았고 엘리야마저 이세벨을 두려워하여 도망갔던 것이다.

이러한 이세벨의 이름을 가진 여인이 자칭 선지자라며 두아디라 교회에 출현하여 교회들이 세상과 타협하며 타협한 세상에서 주는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계 2:18-23).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통하여 세상과 타협하며 하나님과 바알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이들에게 회개하라고 영적 각성의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이세벨이 권하는 금잔에 들어있는 음행의 포도주를 마신 교회들은 그 음행을 회개하기는 커녕 더욱더 그 금잔 앞에 줄을 서고 있다. 이세벨은 교회에 선지자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그녀를 따르는 모든 교회가 그녀의 영향력 아래에서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있다. 심지어 엘리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까지도 그녀를 두려워한다. 음녀가 자기를 죽일까봐 겁이 나서 기도의 자리를 떠나 깊이 숨어버린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현주소이다.

빌립보 교회를 세웠던 루디아는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였다(행 16:14). 두아디라는 상업도시로 최초의 길드가 조직된 곳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 조직 안에서 왕따가 되면 안되었다. 그런데 그 조직 안에는 기독교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교도들도 있었다. 그래서 자칭 선지자 이세벨은 교회 안에서는 교회의 법을 따르고, 세상에서는 세상법을 따르라는 아주 그럴듯한 이원론적 사상으로 상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그런데 그 해결책은 하나님과 바알을 함께 섬기도록 하는 미혹의 길이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명예와 권세와 물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많은 교회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이세벨의 영향력아래 있기를 원했다. 그것이 자기들의 꿈과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과 긍정의 힘을 갖고 그들은 이세벨의 금잔 앞에 줄줄이 사탕처럼 앞을 다투어 달려오고 있다. 그래서 음녀 이세벨을 섬기는 교회들은 종교다원주의에 취하고 동성애에 넋을 잃고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만 있으면 그것이 무슨 일을 하건 상관없이 하나가 되자고 외치는 이세벨의 영에 끌려가고 있다.

자칭 선지자 이세벨과 그녀를 따르는 자들의 결과

이세벨의 영향력이 아무리 강하게 영향을 미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세벨과 그를 따르는 자들의 결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2-23).

이세벨과 그를 받아들인 교회들에게는 3가지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첫째로 침상에 던져진다고 한다. 침상에 던질 것이라는 말은, 병으로 눕거나 죽어서 침대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이세벨이 예후의 명령에 의해 창밖에 던져져서 개들이 와서 그녀의 시체를 먹는 심판을 당했던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가 이처럼 병에 걸려 침상에 던져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미 셀 수 없는 교회들이 종교다원주의와 동성애라는 병에 걸려 침상에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로 큰 환난 가운데 던져질 것이며 셋째로는 그의 자녀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합가는 예후의 손에 의하여 몰락하였을 뿐만아니라 그를 따르던 자들도 모두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당신 주위를 한번 살펴보라. 이세벨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종을 무시하며 무슨 일이건 자기가 컨트롤하려고 하는 사람, 질투심이 많고 교만하여 남과 잘 다투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막고 못하게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건강상태가 어떠한가? 그리고 그들의 환경은 평탄한가? 그리고 그런 자의 자녀가 그들보다 먼저 죽었거나 병으로 침대에 누워있지는 않는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시다.

이세벨은 때로는 매력적으로, 때로는 두렵게 우리 주위에 다가온다. 가끔 충동적으로 사람들을 부추기는 말을 하며, 무언가 그의 말을 들으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에게 당할까봐 염려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이세벨과 같은 사람이다. 그는 진리에 약간의 물이나 조미료를 타서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때문에 성경을 깊이 모르는 이들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 모르므로 그를 따라간다.

그러나 이세벨의 영향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예후라는 사람을 통해 이세벨과 그 가정을 심판하신다. 열왕기하 9장을 보면, 예후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죽여서 그의 시체를 나봇의 포도원에 던진 뒤 이세벨을 찾아간다. 그리고 "저를 내려던지라"라고 하자, 그녀 주위에 있던 내시들이 이세벨을 창밖으로 던져서 그녀의 피가 담과 말에 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예후가 그 시체를 밟으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후의 행위를 보면 매우 잔인해 보이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아합과 이세벨의 온 가문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들어 쓰신 심판의 도구였다. 하나님께서는 "보수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나님의 종들을 괴롭힌 자들을 향해 심판의 칼을 드시면 잠시도 지체하지 않으시고 긍휼없는 심판을 하신다. 마귀의 종들과 싸울 때에는 예후처럼 결단력과 추진력을 갖고 싸워야 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음녀의 미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종들을 마귀의 종들과 화해시키려고 한다. 무조건 화해하고 평화하면 좋은 줄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귀의 종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이세벨에게 걸려든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이다. 이미 음녀의 금잔(당신이 원하는 그 어떤 것)에 미혹되어 그 안에 음행의 포도주와 쑥물이 들어있어도 개의치 않고 그것을 마시려고 줄을 서고있는 것이다. 아니 이미 마셨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이세벨의 영향력에 걸려들어 있지는 않는가? 즉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무리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회개하면 되기에, 그리고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정죄할 수 없기에 회개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지어내는 그 악한 마귀의 종을 불쌍히 여기며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면서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 있지는 않는가? 마귀의 종에게는 은혜를 베풀며 하나님의 종에게는 그와 손을 잡으라고 고통을 주고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 22:15)


이제 결단하라. 이세벨의 편에 설 것인가,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인가? 적당히 타협하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모든 것을 은혜롭게 하자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하나님의 대적자로 설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한 예후처럼 하나님의 종들을 죽인 악인들에게 긍휼없는 심판을 감행할 것인가?

지금 이 시대에 만연된 "은혜"와 "사랑"과 "평화"라는 말로 미혹하는 이세벨의 영향력에 속아 더이상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여, 부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무시로 깨어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가운데 영적 분별력을 갖고 말씀과 성령의 검을 휘두르며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성령 안에서 승리하라!

결론적으로 데살로니가전서 4장 3-8절을 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세상사람들처럼 색욕을 따라 음란한 말과 행동을 버리고 하나님처럼 거룩해지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없다고 요한1서 2장15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세상에서 광야생활을 하면서 해야할 일은 매일 매순간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이세벨의 영향력과 싸워서 음녀를 물리치며 승리하는 것이다. 적당히 싸우는 것이 아니라 피흘리기까지 싸우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자~ 이제 피흘리며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이미 피를 흘리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몸을 사리며 적당히 타협하고 싶은가?

음행의 포도주가 든 금잔을 들고있는 음녀 앞에 교회들이 앞을 다투어 줄을 서고있는 혼탁한 이 시대 속에서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우리가 만나게 될 이세벨을 잘 분별하여 미혹되지 않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하자. 멋지고 아름답고 품위있고 지적인 모습으로 다가와서 미혹하며 충동질하는 이세벨에게 절대로 흔들리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며 말씀으로 무장하여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씀의 칼로 대적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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