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와 죽은자

김에스더 목사 - The Second Life Foundation 대표, 뉴욕퀸즈교회 담임

창세기 3:8-10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 영적으로 죽어있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해서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범죄 하여 회개하지 않은 즉 영적으로 죽은 인간에게도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숨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을 하셨고, 그의 아들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네가 분하여 함은 어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쩜 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과 죽인 후에 하나님께서 가인을 찾아가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따라서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는 이들을 신령하게만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삶의 열매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즉 영적으로 살아서 들은 것인지, 영적으로 죽어서 (한번 더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들은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마치 자신이 신령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통 교만한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으로 인해 더욱 교만해져서 행동은 하지 않고 입만 살아서 사람들을 비난하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만한 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을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저 사람에게 보여주시려고 말씀하셨구나! 그 사람에게 한번 더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신 거구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2)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떠나 숨어버린다.

아이들이 평소에는 엄마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엄마 아빠가 "...야~"라고 부르면 겁이 나서 엄마 아빠에게 가는 것을 꺼립니다. 머뭇거립니다. 제발 자기를 찾아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예 숨어버리기도 합니다. 평소에 제발 좀 떨어졌으면 하던 아이가 이젠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인간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해 아이이건 어른이건 태어날 때부터 죄책감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죄책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죄인임을 고백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지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와 에덴동산에서 아름다운 관계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소와는 달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겁이 나서 숨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들으며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보다 기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하고 나자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와의 말처럼 "죽을지도 모른다"라고 하지 않으셨고, "정말로 죽을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마자 살기 위해 숨어버렸습니다.

인간의 심리는 참 묘합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말하고 벌을 받으면 되는데, 벌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또는 자존심에 금이 갈까 봐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치 못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자존심만 강해져서 자녀나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을 죽기보다도 싫어합니다. 죽기보다 싫어하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담은 죽을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마자 숨어버린 것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에 실족한 사람들이 다른 교회를 찾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교회와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가서 다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게 되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예 교회와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사람의 결국은 죽음입니다. 그들은 더 고통받지 않으려고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다. 즉 자기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삶은 죽은 것입니다. 살았다고는 하지만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기면서 평소에 하던 기도생활이나 찬송을 부르는 것이나 말씀을 묵상하는 일들까지 손을 놓고싶 은 생각이 들면서 그렇게 된다면, 영적인 상태를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미 그런 사람은 영적으로 병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예 교회를 떠나서 하나님마저 믿지 않겠다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은 이미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3)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반갑지 않다.

사람들은 만약 빚쟁이가 전화를 걸어오면 "나 없다고 그래"라고 합니다. 또 멀리에서부터 원수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그가 보기 전에 멀리 돌아서 가거나 피해버립니다.

어떤 사람의 음성은 듣자마자 가슴이 설레며 빨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의 음성은 듣자마자 가슴이 내려앉는 것과 같은 충격을 주기도 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두려움이 엄습해오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렇게 하라고 교육을 받아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좋고 싫은 것이 자동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아담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숨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반갑지 않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반갑지 않고 오히려 겁이 납니다. 그리고 내가 원치않는 것을 하라고 하실 때에 그 음성을 듣는 것이 즐겁지 않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으면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며 찾으시기도 전에 멀리에서 하나님께서 오시는 것을 느끼는 순간 반가워서 뛰어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 한 뒤에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매우 불편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마주 보는 것도 불편하고, 대화하는 것도 껄끄러워서 그저 피하고만 싶어지는 것은 그와의 관계에 골이 생겼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 듣기 싫어하고, 찬송을 부르라고 해도 그렇고,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라고 하면 "당신이나 잘해"라는 식으로 대꾸하며, 예배를 드리자고 하면 더욱 귀찮아한다면, 이런 사람의 영적인 상태는 심하게 병들었거나 죽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즐겁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 대신에 세상의 학문이나 잡지나 인터넷이나 TV나 영화를 찾고, 찬송 대신에 가요를, 기도 대신에 사람들과 전화하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예배보다는 세상의 취미나 오락과 돈을 찾아갑니다. 피곤하면 주일도 아닌데 교회에는 한번 쯤 안 가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함께 하자고 하면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피해 숨는 것들이며, 하나님의 음성이 반갑지 않다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내가 귀를 기울여 듣고 있고, 보고 있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 성경말씀과 기도와 찬송 즉 예배가 내 삶의 우선순위에 있는지, 아니면 내 정욕과 내 꿈과 내 명예가 가장 우선순위에 있는지 정직하게 살펴봅시다.

(4) 회개하지 않으면, 내 잣대로 나를 평가한다.

창세기 2장25절에는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두 사람이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는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사탄이 유혹하는 것에 넘어간 인간의 상태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는 뱀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뱀의 말대로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자 눈이 밝아져서 그들이 알 필요가 없었던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집안에서 벌거벗고 있어도 수치심을 모릅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 엄마의 품에 안겨서 엄마의 젖을 먹고 엄마의 돌봄을 받고 자라기 때문에 엄마 앞에서는 아무 것도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벗었다고 창피하니까 옷을 입혀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선악의 분별이 없이 그저 먹여주면 먹고, 재우면 자고, 씻겨주면 씻고 그렇게 삽니다. 순수함 그 자체입니다. 그런 아이들의 입에서 "죄"와 "죽음"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갓난아기가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목욕을 시켜줄 때, 벗었다고 창피하다며 몸을 가린다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알 필요가 없도록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선과 악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절제하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절제"의 열매를 맺지만,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결코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게 되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갓난아기가 방긋방긋 웃을 때,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쁩니까? 그런데 갓난아기가 창피하다고 몸을 가리며 엄마를 피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이처럼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아상에 큰 문제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존귀하게"여긴다고 말씀을 하셔도 그런 말이 귀에는 들려도 마음까지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볼 필요가 없는 과거의 수치심과 죄책감을 안고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이사람 저 사람의 눈치를 보며 숨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수치심을 건드리기만 하면 더욱 그것을 감추기 위해 깊이 숨어버립니다. 거짓말로 포장해서 결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것이 죄를 회개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나의 수치스러운 죄를 드러내더라도 숨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인정합니다. 그럴 때에야 진정으로 감추고 싶었던 내면의 죄들이 드러나면서 치유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코 아무것도 감추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멀리하면 멀리할 수록 우리는 존귀한 자의 삶을 살지 못하고 부끄러움과 수치심 속에서 매일 매일을 어둡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다 드러내어 벌거벗은 모습으로 나아올 때에 기뻐하십니다. 벌거벗었다고 책망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숨지 말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죄악을 벗어버리고 벌거벗은 모습으로 두손 들고 나아갈 때에 우리의 자존감이 회복되며, 우리의 왜곡되고 상처가 났던 자아상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5) 하나님은 한번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 찾아 오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야,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시며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비록 매일 죄를 짓고 살아갈지라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가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와를 찾지 않으시고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의 대표가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가정에서 남자들은 무엇이 잘못되면 아내에게 그 탓을 묻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과 반대의 방법입니다. 가정에서의 모든 잘못을 하나님은 가장인 남자에게 물으십니다. 아담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그러나 아담은 그 죄의 탓을 하나님과 아내에게 돌립니다. 그 결과 아담은 삶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과 동시에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실수를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 질문을 우리는 깊이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즐기며 살아가는가? 나는 무엇을 피하고 있는가? 무엇을 숨기고 싶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벌과 죽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한번 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벌을 받을까봐 오해하며 도망자의 삶을 살아감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지 말고 즉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더이상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며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생명을 받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고 기쁨으로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기  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항상 저를 찾아주시고, 제 이름을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은 저를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데, 저는 자꾸만 숨으려고만 했습니다. 저 자신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저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찾아오시는데, 저는 자꾸만 뒷걸음질을 했습니다.

저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시인하고 고백하기만 하면 다시 관계를 회복시켜주시려고 하시는 주님을 오해하여 제 방법대로 살 궁리를 찾아 헤메었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고, 저 스스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살았지만 더욱 미궁에 빠져버렸습니다.

아담이 바로 저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하고, 왜 선악과를 따먹어서 우리 인류를 죽게 만들었을까? 라고만 생각해왔습니다. 아담이 온 인류를 대표하며 바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담이 바로 저였으며, 바로 제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숨어 살았음을 알았습니다. 아담이 저였기에 저의 죄와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제가 그 잘못을 하게 된 동기가 "다른 사람이 유혹해서, 화나게 해서, 억지로 시켜서"와같이 핑계를 대며 죄를 전가하기에 바빴습니다.

제가 어디에 간들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한된 지혜로 살면서 제가 똑똑한 줄로 착각한 정말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진정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 뜻대로 살아간다면, 저의 벌거벗은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어도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저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느라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며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주님 앞에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느끼는 순간 제가 먼저 뛰어나가서 "하나님 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라며 하나님과 즐겁게 동행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셔서 그 동안 주님의 형상대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지 못했던 모든 부분들을 고백하고, 이제부터는 주님 안에서 참된 자아상을 갖고 살아가도록 도와주옵소서.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자존감이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님 안에서 치유함을 받기를 원하오니 주여, 저를 고쳐주옵소서. 저를 만져주옵소서. 저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다른 사람을 탓하며, 그들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되었다라고 원망하며 살아왔던 어리석은 과거를 다 날려버리고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제 책임으로 생각하면서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주님의 자녀답게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저를 온전히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저를 찾아오시는 주님과 즐겁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로 인하여 제 주위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며, 저로 인하여 주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기를 원합니다. 저의 모든 회개를 받아주시고, 저의 삶을 받아주시고 저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받아주옵소서. 주님만을 찬양합니다. 저를 통하여 오늘도 주께서 영광을 받아주옵소서. 죄로 죽었던 저를 살리기 위하여 이 세상에 몸소 찾아오셔서 저 대신 죗값을 치르고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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