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건 목사(빛교회 담임목사, 조직신학 교수, Ph. D.)

서울대 영문과 졸,  장신대 신대원 졸 (M.Div.)   Princeton Seminary (Th.M.)   Drew University (조직신학 Ph.D.)  뉴저지 빛교회 담임목사  (현)뉴저지 신학대학(학장),  뉴욕장신 조직신학 교수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 덧붙였던 탄식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 8)”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믿음으로 사는 일의 어려움을 미리 보고 하신 말씀이다. 어느 시대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보다는 보이는 형상을 믿는 일이 더 쉽다. 그런 연고로 타 종교에서는 그들이 숭배하는 신들을 형상화한다. 인간의 감각을 통해 믿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장차 믿음으로 사는 일이 더 어려울 것임을 내다 보신 것은 우리가 어떤 세대를 살게 될지를 미리 보시는 예언적인 의미를 갖는다. 과연 우리는 역사의 변천 속에서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일이 옛날보다 더욱더 어려운 세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의 현상이 어떤 변천 과정을 통해 오게 되었는지를 개관하고,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삶의 자세를 찾아보고자 한다.

소위 근대 시대의 시작은 르네상스 시대에서 찾는다.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는 여러 면에서 구별된다. 중세 시대가 국가, 교회, 길드, 대학 등 공동체 중심의 삶을 살았다면, 르네상스 시대는 개인의 가치를 찾고, 개개인의 가능성을 성취하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했다. 중세 시대는 현세의 삶을 천국을 향한 나그네의 삶으로 인식하고 내세 중심의 삶을 살았다면, 르네상스 시대는 현실 중심이요,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의식의 변환이 있었고, 사람은 자신의 삶를 개척하고 창조하는 주체로 인식하게 되었다.[1] 중세 시대는 교회와 수도원이 중심이 된 삶이었다면, 르네상스 시대는 세상과 인간의 지혜와 힘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였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몰락으로 서구로 피신해온 학자들은 많은 고대 기독교의 자료를 서구로 가져왔고, 고전 연구의 붐을 가져왔다. 성경과 초대 기독교부들의 연구를 통해 중세 교회가 얼마나 미신과 교회 권력의 횡포로 유지돼왔는지, 비판의 안목을 갖게 되었다. 종교 개혁은 르네상스 시대의 필연적 열매라 할 수 있다. 과거 일부 선각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던 교회 개혁은 실패로 끝났지만, 르네상스 시대는 건전한 이성과 비판의 안목을 서구 사회에 유포시켰기 때문에 16세기 종교 개혁에 동조하는 세력을 얻을 수 있었고, 루터, 즈빙글리, 칼빈에 의한 종교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다.[2]

종교 개혁은 성경과 초대 교부들의 신앙과 신학을 되찾는 데서 시작되었다. 전통과 성경을 동일시했던 중세 교회와 구별되어 오직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의 권위를 찾았고(sola scriptura), 중세 교회의 행위의 공로를 배제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쳤다(sola gracia, sola fide). 중세 교회의 일곱 가지 성례 대신 세례와 성찬을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으로 확정하였다. 성경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신앙의 규범을 성경 안에서 찾고, 성경을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으로 이해했다. “말씀 오직 말씀만이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다(Das Wort und das Wort ist das Mittel der Gnade Gottes)”는 종교 개혁자 루터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세속의 권력까지를 손에 쥐고 간섭했던 교황은 역사 속에 들어난 많은 죄와 부패를 생산했다. 거룩한 교회가 세상과 연합할 때, 더욱이 세상 권력과 야합할 때, 교회는 필연적으로 어둠의 열매를 맺었다. 성경과 교부들의 신학 속에서 비판의 눈을 갖게된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중세 교회와 교황 제도는 척결해야 할 어둠의 세력으로 보였다. 그 당시 교황이 바로 적그리스도라는 견해는 개혁자들에게 공통된 인식이었다.  중세 교회는 성경보다도 교회 또는 교황의 권위 위에 세워진 집이었다.

개혁자들은 교회를 성경의 권위 아래 두었다. 당연한 판단이었지만, 문제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눈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중세 교회는 교황의 권위로 성경 해석의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난 개혁 교회는 일관된 성경 해석의 틀을 유지할 수 없었다. 사실, 성경은 읽고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 분분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 결과 종교 개혁 당시에 벌써 성경 해석의 문제로 논쟁이 시작되었다. 루터와 즈빙글리는 개혁 교회의 통합을 위해 회동했다가 결국 성찬논쟁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또 다른 예로, 극단적 개혁 사상을 소유하였던 토마스 뮌처는 루터의 종교 개혁을 미온적이라, 특히 사회적 개혁을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신자들에게 성령의 내적 조명, 또는 직접 계시를 주장하고, 혁명을 정당시 했다. 뮌처에게 루터는 “성경에 대해 전혀 무식한 사람”이었다.[3] 루터는 군주의 편에 서서 무자비한 탄압에 동조했다. 이런 비극적인 역사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의 다양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누구나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한편 반가운 일이다.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믿음과 구원에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쉽고도 어려운 책이다. 성경은 올바른 식견과 신학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고 가르쳐질 때 그 바른 의미를 터득할 수 있다. 인쇄술의 발명으로 성경이 각 나라 말로 번역이 되고 각인의 손에 들어 갔을 때, 거기 명암이 드러났다. 모든 사람이 손 안에 성경을 읽고 배움으로 신앙 생활에 유익을 삼을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 성경이 임의로 해석되고, 집단에 따라 다른 해석, 또는 엉뚱한 해석을 낳았기 때문에 충돌이 불가피했다. 개혁교회가 활발했던 지역에 재침례교도들이 받았던 핍박은 동정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은 교회 속의 소수 약자로 그들의 교리로 인하여 무수히 투옥되고 강물에 수장되었다.[4] 핍박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구현하기 위해서였고, 핍박을 당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딱한 현상을 성경을 해석하는 일의 차이와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했던 그 시대의 비극적 산물이었다.

성경이 모든 사람들의 손 안에 들어 갔을 때, 따르는 불행한 현상은 사람들이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 보다는 자기 귀에 좋은 소리를 듣는 인용의 책으로 삼게 된 것이다. 성경은 열려진 마음, 배움의 마음과 기도 속에서 비로서 듣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에게 성경은 자기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듣는 인용의 책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영국의 시인 John Dryden은 성경이 보급되면서 따르는 폐단을 짧막한 시로 표현했다.

The Book thus put in every vulgar hand,
Which each presumed he best could understand.
The Common rule was made the common prey,
And at the mercy of the rabble lay.
성경이 세속의 모든 사람들의 손 안에 쥐어졌고,
각 사람은 자신이 성경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주제넘게 생각했다.
공통의 규율이 공통의 희생물이 되었고,
어중이 떠중이들의 처분에 맡겨지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와 함께 시작된 이성의 비판 능력은 마치 길들이기 쉽지 않은 동물과 같아서 신앙 생활의 근간까지 공격하게 되었다. 신앙 생활이란 초월적인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와 권위에 그 기초를 삼는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사람은 이성의 눈으로 하나님과 성경을 비판하게 되었고, 모든 판단의 근거를 이성과 경험의 한계 안에 두게 되었다. 성경의 계시를 존중하기 보다는 인간의 이성이 기준이 된 해석이 유행하였다. 그 시대 사람들은 이런 비판을 통해 새로운 세대가 열리리라는 낙관론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지난 세기 수 십년을 싸워왔던 신,구교간의 종교 전쟁(1618-1648)의 여파이기도 했다.

성경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시작된 교리 논쟁은 교회간, 국가간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전쟁의 결과 남는 것은 피폐해진 인간의 삶과 사회였다. 그런 전쟁을 끝없이 해야 할 것인가? 합리적인 판단은 이제 공존의 논리를 따르자는 것이었다. 신앙 보다는 이성과 합리성을 따르자는 의식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 결과 인간 삶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교회나 계시가 아니라, 현실과 이성이었다. 모든 사물과 삶을 이성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자는 새로운 시대가 출현했고, 우리는 그 시대를 계몽주의라 부른다.

이성과 계시의 관계, 현실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정치와 교회의 관계는 신앙생활의 기초를 삼는 일에 반드시 대두되는 화제이다. 17세기 이후, 서구 역사는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신앙 생활에서 퇴보하게 되었다. 개인의 삶에서나 역사의 변천 과정은 궁극적인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추구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신앙 중심, 계시 중심의 삶이든, 이성과 현실 중심의 삶이든 문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의 가치를 제고하고 삶의 만족과 성취를 얻게 되는가?의 질문으로 환산된다.

적어도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을 통해 그 대안을 찾는 시대라 할 수 있고,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시도는 얼마 가지 않아서 그 한계에 도달하였다. 원래 삶의 가치와 의미는 초월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물질로만 구성되지 않고, 하나님의 입김으로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기사(창2:7)는 인간의 존재나 삶의 의미나 가치와 관련하여 심원한 의미를 제공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김, 초월적인 하나님의 존재와 간섭을 떠나서는 삶의 의미도 가치도 잃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증거이다. 이성 중심의 삶의 체계는 그 추구하던 것을 얻지 못하였다. 합리성과 이성은 자연과 세계 속에 필요한 삶의 한 부분이지만, 사람은 그것을 초월한 또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됨에서 시작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람은 존재의 시작과 유지에 있어서 부단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근거를 찾는다는 말이다. 어떤 시대, 어떤 시도이든 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주변으로 몰리는 곳에 인간의 궁극적인 의미는 항상 저락하게 된다. 우리 믿는 사람은 그 대안을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는 삶 속에서 대안을 찾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성주의 시대를 이어 생겨난 것이 낭만주의이다.

낭만주의 시대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까지 서구 사회에 유행했던 사조를 가리킨다. 이성주의 시대가 이성과 질서 속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했던 것과 달리, 낭만 주의 시대에는 인간의 감성과 자연 속에서 삶의 생동력을 찾으려 했다. 이는 이성의 한계를 체득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시대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 과거와 상상 속에서 생명의 풍요한 기운을 찾고자 했다. 예를 들면, 그들에게 중세 시대는 척결해야 할 미신의 시대가 아니라, 사랑과 낭만의 원천이 되었다.

이 시대 중세 기사들의 삶이 미화되어 표현된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자연 또한 삶의 풍요한 원천으로 발견되었다. 인간 삶의 본질에 있어 감성의 가치를 찾았다는 것은 낭만주의 시대의 공헌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이성과 합리성으로만 가지고 살 수 없고, 감성과 상상력에 의해 삶의 깊이와 넓이를 갖게 된다. 이 시대의 글과 시와 음악은 오늘도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 시대 대표적인 시인 Willam Wordsworth의 시에는 자연을 예찬하는 찬사가 들어 있다.

The Table Turned
 
Books! ‘tis a dull and endless strife:
Come, hear the woodland linnet,
How sweet his music! On my life,
There’s more of widsom in it.
 
And hark! How blithe the throstle sings!
He, too, is no mean preacher:
Come forth into the light of things,
Let Nature be your Teacher…
 
One impulse from a vernal wood
May teach you more of man,
Of moral evil and of good,
Than all the sages can….
 
Enough of Science and of Art;
Close up those barren leaves;
Come forth and bring with you a heart
That watches and receives.
 
책들! 그것은 메마르고 끝없는 투쟁이다:
와서 숲속의 홍방울 새의 지저귐을 들으라,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인가!
그 안에는 내 삶에 주는 더 큰 지혜가 들어 있다.
 
들으라! 저 개똥지바귀의 즐거운 노래를!
그도 결코 부족함 없는 전도자이다:
만물의 빛 안으로 나아오라,
자연으로 그대의 스승을 삼으라…
 
봄날의 숲 속의 맥박 하나가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고,
모든 현자들이 가르치는 것보다
도덕적 선악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기술과 예술은 이제 더 필요 없다;
저 메마른 책장들을 덮어 버리라.
이제 나아 오시라,
지켜 보고 수용하는 가슴을 가지고.

 

이성의 시대에 이성과 질서 속에서 대안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은 감성과 자연 속에서 대안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또 한 번의 부질없는 시도가 되고 말았다. 감성과 자연과 상상의 세계는 삶에 의미를 주는 작은 한 부분일 수 있어도,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제공하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궁극적인 대답을 찾기 때문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된 생명의 원천을 밝혀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이 전통적인 기독교의 대안이다. 그 원천을 떠난 인간의 추구는 결국 허무한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20세기 들어와서 서구 사회는 두 차례 대전을 겪는다. 기독교 사회 안에 기독교 국가들끼리 세계의 패권과 자원을 위해 싸운 대전은 서구 국가들의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고, 그들이 지켜 왔던 전통과 기초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서구 사회의 자기비판의 결과는 전통적인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가져왔고, 세계를 기독교적인 체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서구 역사의 흐름에 있어 또 다른 대안적인 사조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흐름의 특징은 진리의 객관성을 부인하고, 지식은 불확실한 것이 되었다. 모든 진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으며, 역사의 진보를 믿었던 신념이 허물어졌다. 개인주의 대신 집단과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가 머리를 들고, 진리는 이성보다 직관의 산물로 이해했다.[5] 20세기 초만 해도 신학계에서 조직신학이 유행했다. 그러나 세계와 사물을 조직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퇴조하게 되었다. 그 대신 사물의 개체적 가치를 현상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강해졌다.

다원주의 시대, 다원화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일괄되게 말하는 것이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믿게 되었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인 가치일 뿐 어느 것 하나를 택해서 절대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은 이 시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 속에도 가능하다는 다원주의 종교관이 유행하게 되었다.

신앙생활의 목적도 변질되었다. 진리를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행복이란 올바른 삶이 빚어내는 열매라는 전통적인 입장을 떠나, 행복 자체를 우상처럼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신을 변화시키고 개발하기 보다는 외적 생활에 관심을 더 갖게 되었다. 바른 지식과 신앙보다는 심리적 만족과 효율성을 더 숭상하게 되었다. 교회 생활은 경건 생활의 훈련과 예배의 장이라기 보다는 기분좋은 감정(Feeling good)을 추구하는 종교 생활로 전락되었다. 결론하여, 신앙 생활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생활로, 내면의 깊이를 추구하는 생활에서 감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삶으로 변질되었다. 그렇게 하면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성취를 얻을 수 있을까?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요1:38) 하나님의 질문은 오늘 우리들의 종교생활, 신앙생활에 도전과 자성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시대의 배경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첫째는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성경과 신학의 내용을 바르게 배우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성경은 모든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른 배움과 깨달음을 통해 오늘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와 경륜을 배우게 된다. 어느 시대에나 교회 안의 혼란스러운 삶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결여에서 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체계적인 배움은 이 시대의 혼란을 대처하는 증거의 능력을 제공한다. 교회 또는 신자는 체계화된 진리를 세상 속에 증거 할 준비를 해야 한다(벧전3:15).

둘째, 초대 교회도 사실 다종교, 다문화의 시대에서 복음이 전파되었고, 교회가 세워졌다. 문제는 우리가 믿는 교리와 신앙에 전인격적인 헌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에 있다. 절대적인 하나님과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신앙은 전적인 헌신의 삶을 요구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진리에 드려질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어느 시대에나 교회 또는 신자가 듣는 책망은 전인격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뜨뜻 미지근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계3:15-16). 신자의 삶은 실천과 헌신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전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된다. 이 시대에는 더욱 더 믿음과 실천의 삶을 요구받고 있다.

셋째, 우리가 믿는 진리는 무엇보다도 도덕적 순결과 실천의 삶을 통해 증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찾는 것은 말이 아니라, 삶이요, 실천이요, 능력이다. 신자들이 세상 속에 드러내는 증거는 삶과 행위를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우리가 믿는 진리는 우리의 구별된 삶을 통해 입증된다. 교회가 교회로서 위상을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결해야 한다. 물질 우상을 추구하거나 세상의 가치관과 야합할 때, 교회는 증거의 능력을 잃게 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레11:44, 벧전1:16)”는 명령은 오늘날 교회에 주어진 최우선적인 명령이다. 교회는 그 순결을 통해서 세상 속에 그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기도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거룩한 삶을 사는 일에 각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rickson, Millard J. Postmodernizing the Faith. Grand Rapids: Baker Books. 1998.
Hauerwas, Stanley M. Wilderness Wanderings. Boulder, CO: Westview Press. 1997.
Veith, Jr.,Gene Edward. Postmodern Times. Wheaton: Crossway Books. 1994.
Wells, David F. God in the Wasteland.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4.
Williams, Oscar. ed. Immortal Poems of the English Language. New York: Washington
Square Press Publication. 1952.
 각주
[1] Bard Thomson, Humanists and Reformers (Grand Rapids,,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6), p. 3.
[2]그러나 종교 개혁은 순전히 개혁자들에 의해 성취되었다기 보다는 개혁 사상에 동조하는 정치 세력의 협조 내지 비호 속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개혁의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이후 교회와 국가 권력 사이의 긴장은 또 다른 과제가 되었다. 일례로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은 국가와 교회를 나란히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로 인정하였다. 그 결과 Hitler와 같은 정치 권력의 횡포에 대해서 교회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3] B. Thomson, Humanists and Reformers, p. 406.
[4] Anabaptist(재침례교도)로 불리우는 이들은 기성 교회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자신들만이 성경의 올바른 교훈을 따른다고 믿었다. 신앙의 결단은 성인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기에 유아 세례를 거부하고, 세속 권력이나 정치는 악한 것이기에 그런 제도나 조직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이들이 본이 된 것은, 제자의 삶을 실천하는 일에 노력하여 교회의 순결과 실천을 강조했다는데 있다. 유아 세례와 정치 제도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인해 기성 교회의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되었다.
[5] Millard J. Erickson, Postmodernizing the Faith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8), pp.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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