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욱중목사 칼럼] 어느 장례식장의 풍경

  • 입력 2021.09.23 12:41
  • 수정 2021.09.2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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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종말

얼마전 어느 유명 목회자의 장례식이 있었다. 영정 주변을 장식한 다소 과장된 국화꽃 제단은 한국교회장이라 부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을 만큼 화려했다. 그런데 한국교회장이라.. 한국교회 역사 가운데 한국교회라는 통일된 명칭의 행사가 있었던가? ‘한국교회총연합회가 장례를 주관하였으니 한국교회총연합회장이 정확한 명칭일 것이며, 이것이 소수지만 이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교단에 대한 예의이리라.

제단 위에 장식된 검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000천국환송식

못된 짓하다가 십자가에 달린 우편 강도도 마지막 순간 회개하니 갈 수 있는 천국이 아닌가? “세계최대의 단일교회를 이룩한 고인이니 천국의 아랫목은 따논 당상이겠지...”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떠오르는 예수의 말씀-“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19:24). 하늘나라의 문은 강도에게까지 활짝 열린 문이지만, 유독 부자에게는 좁은 문이라는 뜻이리라. 함부로 부자되세요라고 말 할 것은 아니리라.

예수는 왜 부자에게 혹독하셨을까? ‘는 유한한 자산이다. 소수가 필요 이상의 과다한 부를 누리는 것은 다수가 가난으로 괴로움의 자리에 내몰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소수의 과다한 부의 축적과정은 그들이 쏟아 부은 노력에 비교가 안되는, 자본으로 인한 불로소득(잉여이익)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리라. 그 결과 부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절도죄-노력에 비해 과잉된 잉여이익-, 횡령죄-필요 이상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은 죄-를 불특정 다수의 가난한 자들에게 범하기에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 하지 않았을까?

고인은 어떠한가? 그의 소득은 정당한 것이고 정의로왔는가? 고인은 부자였을까? 그의 재산이 공개된 적이 없으니 알 수는 없으리라. 다만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생전에 유일하게 공개된 그의 소득, 곧 퇴직금으로 받았다는 200억원! 퇴직금의 산정 방법은 퇴직하는 당해 연도의 월평균 급여에 근속년수를 곱한 것이리라. 고인의 근속년수를 40년으로 잡으면 그의 월평균 급여는 5억원이란 뜻이리라. 고인의 퇴직금 규모로 볼 때 그는 부자인가? 연봉 1억을 꿈의 직장이라 부르는데, 연봉 5억이 아니라 월평균 급여가 5억이라면 그는 부자일까? 아닐까? 변변한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기에 그의 퇴직금 규모가 도드라지게 보일 수 밖에 없으리라.

전해오는 장례식장의 소문 가운데 고인의 추모행렬을 여러 해 전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열기와 은근히 비교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인간이니 비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왕 비교할거라면 추모행렬이 아닌 부의 잣대로 신앙의 거인들과 고인을 비교해 보자.

 

#김수환

87세에 고인이 된 그는 47년을 사제로 봉직하였다. 퇴직금을 받았다는 얘기는 없고, 은퇴후 다른 은퇴사제와 똑같이 월 100만원이 안되는 연금을 받아가며 살았다. 그가 남긴 것은 잔액이 거의 소진된 빈 통장뿐, 말년에 그는 가난한 이들을 좀더 보듬고 그들과 더 많이 나누지 못한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하였다고 한다.

 

#성철

 

81세에 고인이 된 그는 57년을 승려로 살았다. 한 벌 옷을 누더기가 될 정도로 수 십년간 기워 입은 일화가 유명하다. 제자들에게 신도들로부터 일체의 금품이나 선물을 받지 못하게 하였는데, 어느 날 제자 하나가 고가의 시계를 몰래 선물 받은 것을 알고 그 즉시 바윗돌로 시계를 박살을 내기도 하였다. ‘금품이나 선물을 독()’처럼 여기라고 일갈하면서...

 

#주기철

 

신부나 승려는 독신이니 대처(帶妻)해야 하는 개신교 목회자와의 수평 비교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면 개신교 목사인 주기철은 어떤가? 1944421일 주기철이 순교하자 그의 가족들은 극한 가난으로 내몰리다 해방을 맞이 하였다. 해방후 어느날 산정현 교회 당회원들이 주기철 가정에 찾아와 과수원 땅을 포함한 많은 금품을 전하려 하였다-산정현 교회 당회원 중에는 평양의 손꼽히는 갑부도 있었다. 오정모 사모는 뜻은 고맙지만, 남편이 돈 때문에 순교한 것이라고 오해 받을 수 있기에 받을 수 없다고 사양 하였다. 1947년 어느 날 이번에는 김일성이 사람들을 보냈다.-큰 궤짝 안에 가득 현금 다발과 땅 문서를 담아서.. 오정모는 당회원들에게 말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사양하였다. 월남한 주기철의 아들들은 그후 혹독한 가난과 싸워야 했다.

저들의 공통점은 가난한 종말에 있다. 자신의 공적을 앞세웠다면 퇴직금 200정도는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대한 힘은 어디서 왔을까? 성 프란시스가 가난의 영성을 강조하며 자주 들려주었던 짧은 이야기가 있다. “프란시스 형제여, 당신은 어떻게 항상 즐겁습니까?-방금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누구와 결혼했기에 그리 행복하신지요?- ,‘가난이라는 귀부인과 했지요.”

아시스 성자 프란시스
아시스 성자 프란시스

 

성 프란시스가 결혼한 가난이란 귀부인은 가난을 타자화(他者化)’해서는 결코 만날 수 없으며 가난과 동일화(同一化)’해야 맞이할 수 있는 귀부인이다. 우리들 주변에는 타자화를 통한 가난의 모방을 추구하는 이들은 많아도 동일화를 통한 자발적 가난을 누리는 이들은 많지 않은듯 싶다. 고인은 가난의 타자화를 넘어 동일화에 이른 생전의 삶이었을까?

고인의 종말도 저들과 같은 가난한 종말이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누구도 천국을 함부로 말하면 안되리라. 천국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항상 복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야”(2:12) 하리라. 유독 부자에게 천국의 문은 한없이 좁다는 것을 기억하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딤전 6:17-18)가 되길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삼가 고인의 영전에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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