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최초 해외 파송 순교자이며 애국지사 김영학 목사 93주기 추모예배가 지난 11월 10일(월) 광희문교회(담임목사 차재일)에서 열렸다.
김영학목사기념사업회(회장 최양섭 목사)주최로 열린 추모예배는 김정석 감독회장(기독교대한감리회)과 최종호 목사(기감 중앙연회 전 감독, 광주교회, 감사), 차재일 목사, 유족 대표로 김요엘 선교사(김영학 선교사 손자)와 기념사업회 임원과 광희문 교회 성도들이 참석했다.
특별히 지난 10월 28~30일 개최한 제36회 총회 입법의회 교리와장정 제1장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첫 순교자이자 시베리아 선교사로 파송된 김영학 목사가 소련 공산당의 배교 강요를 거부하고 순교한 사실을 제1편 역사와 교리에 기술하는 개정안이 찬성과 반대 426:10의 표결로 통과된 후 드려지는 추모예배로 의미가 크다.
오근영 목사(원남교회, 아산지방 감리사)의 사회로 진행한 추모예배에서 기도를 맡은 김홍선 목사(안산명성교회)는 “오늘 우리는 100여 년 전에 조선남감리회 시베리아 선교연회 선교사로 교단의 파송을 받아 연해주에서 선교하시다가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처럼 한국감리교회 선교사로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신 김영학 목사님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였습니다. 하나님은 100여 년 전 동토의 땅 시베리아 연해주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김영학 목사님을 소련 공산당의 핍박으로 인한 순교의 제물로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 수십 년이 넘도록 감리교회에서는 교단이 파송한 선교사임에도 순교하신 고인을 까맣게 잊고 지내왔으나, 십수 년 전부터 소수의 무리들이 오늘 같은 예배를 통하여 고인을 추도하고 추모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이어 김홍선 목사는 “추모예배가 단순히 고인에 대한 기억과 추모로 그치지 아니하고, '그때 거기에서' 일어난 순교의 신앙을 '지금 여기로' 다시 이어가고자 하는 결단과 각오의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스데반도, 김영학 목사님도 피 흘리는 자기 드림의 순교를 하였듯이 우리들은 자기비움으로 날마다의 순교를 드리게 하여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자 탁현균 목사(응봉교회)가 나와 고 김영학 목사의 약력을 소개했다. 탁현균 목사는 약력을 소개하며, 김영학 목사가 당시 고통받던 이들과 함께한 사실과 소련 공산당의 공갈과 회유, 협박에도 배교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사실 그리고 순교한 과정과 이후 잊혀진 순교의 역사가 복원되기까지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 조선석 목사(양양교회 담임)가 나와 빌립보서 2:5~11을 봉독 후 김정석 감독회장의 설교가 이어졌다.
김정석 감독회장은 “예수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지난 입법총회를 통해 김영학 선교사를 조선감리교회 첫 해외 파송 선교사라는 사실과 그분의 순교를 명시적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귀한 목사님이신데 그간 우리가 너무 소홀했고 무심한 세월을 보내오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영학 목사님의 귀한 순교의 여정을 감리교 목사들이 잘 모른다는 것도 안타까웠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로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다. 김영학 목사님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셔서 고려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복음은 가장 어려울 때 증거되고, 복음을 통해 소망을 갖게 한다. 김영학 목사님은 고려인들이 이주한 블러디보스토크와 연해주의 고려인들에게 복음의 역사와 소망을 주었다.”라고 전했다.
계속해 김정석 감독회장은 “고려인들이 그 지역을 떠날 때 김영학 목사님은 ‘한 사람이라도 여기 있으면 나는 그들과 함께 남겠다’라고 하며 떠나지 못한 그들 곁을 지켰다. 이렇게 남겨진 자들 곁을 지켰던 김영학 목사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것을 나는 ‘예수의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성경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은 첫째, 자기를 비우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비워 우리와 같이 되셨다. 스스로 포기했다. 김영학 선교사님은 고향을 떠나 연해주에 있는 고려인들을 위해 그곳으로 갔다. 목사님은 예수님처럼 자기 비움의 삶을 살았다. 둘째,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다. 자기를 낮추는 마음은 철저히 자기 비하를 말한다. 1920~30년대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자리로 내려갔다. 자기를 낮출 때 주의 뜻을 안다. 낮추는 자가 진리를 알 수 있다. 셋째,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복종은 ‘아래서 듣는다’라는 의미가 있다.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저들의 아랫자리에서 귀담아듣고 순종하고 반응하여 행위로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광희문교회에 조신일 목사님이 계시던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분을 뵀다. 오늘 광희문교회를 찾아 김영학 목사님이 광희문교회에서 목회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김영학 목사님은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라고 전했다. 김정석 감독회장은 “우리도 그분을 추모하며 그분의 생애와 삶의 길을 돌아보며 그분에게 예수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설교를 마치고 김요엘 선교사(고 김영학 목사 손자)가 나와 유족 인사를 했다. 김요엘 선교사는 “김요엘 선교사는 먼저 김정석 감독회장과 오늘 이 자리를 내준 광희문교회와 차재일 목사, 김영학 목사 기념사업회에 감사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나는 할머니를 통해 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체포되던 당시 아버지는 5살이었고 큰아버지는 7살이었는데 큰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일 주일만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가족은 많은 고생을 했다. 7남매 중 제 아버지만 살아남았다. 아버지가 군의관을 했기에 지방으로 많이 돌아다니셨다. 그래서 할머니와 서울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년 무렵 할머니가 상을 놓고 작은 노트에 무엇인가 기록하는 모습을 봤다. 그때 할머니는 ‘이것을 내가 남기지 않으면 아무도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거야’라고 하셨고, 나중에 할머니의 노트를 통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요엘 선교사는 “거의 80년 동안 김영학 목사님이 잊혀졌지만, 귀한 분들의 노고를 통해 마치 채굴하듯이 순교의 정신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을 감사드린다. 특별히 지난 36회 기감 총회를 통해 교리와 장정에 29년 만에 재등재 된 것도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내빈인사 순서에서 최종호 감독(중앙연회 전 감독, 광주교회 담임)은 “오늘 광희문교회에 와서 로비의 역사 현판을 보면서 광희문교회에서 추모예배를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전하며 “설교를 한 김정석 감독회장님이 바쁜 일정을 조정해 오셔서 감사드린다. 비록 빛나는 장소는 아니지만 이렇게 찾아줌을 고맙게 여기며 또한 지난 총회를 통해 김영학 목사님의 역사를 재등재하도록 힘써 주심에 감사드린다”라고 인사했다. 이어 “김영학 선교사님의 손자 김요엘 선교사님이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해 영광스럽다. 무엇보다 감추어진 역사를 찾아 발굴해 오늘처럼 감리교회의 자랑인 김영학 목사님을 빛나게 한 최양섭 목사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2부 최양섭 목사가 나와 교리와 장정 사업 건 보고와 이후 김영학 목사 기념전시관 관련 계획을 보고한 후 기념 촬영과 광희문교회에서 제공한 오찬을 나누며 모든 일정을 마쳤다.
